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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Dec 20. 2023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겸손 떠는 건, 이제 그만

겸손이 미덕이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살아온 사람은, 자기 검열이 심하다. 주변에서 칭찬이라도 들을라치면,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며 손사래부터 친다. 게다가 무엇을 하든지 한 수 접고 들어간다. “저는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어요. 그건 제 전공이 아니라서요. 제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그러세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사람이 꼴불견이라면, 칭찬과 인정을 과하게 거부하는 사람 더 나아가 자기를 깎아내리는 사람은 꼴값 떠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겸손한 것과 겸손을 떠는 건 엄연히 다르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속으로는 쾌재를 부른다? 더 나은 칭찬을 기대한다? 그건 겸손한 게 아니라 겸손을 떤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대부분 겸손을 떨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닙니다.”라고 하면서, 그렇게 말해주는 걸 은근히 기다리니 말이다. 간혹 마음을 듬뿍 담아 칭찬했는데 돌아온 대답이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라고 딱 잘라 말한다고 생각해 보라. 정말 사람 무안해진다. 다음에 칭찬할 일이 있어도, 이전에 보인 반응 때문에 쉬쉬하며 그만둔다. 주위를 보면 충분히 그 일을 맡을 자질과 능력이 충분한데도, 한사코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에 비하면 자기는 별 볼 일 없다고 자기 비하도 서슴지 않으면서 말이다. “저는 그만한 감이 아닙니다. 에이, 사람 잘못 보셨어요.”


이런 모습은 지난날 내 모습이기도 했다. 칭찬을 받는 일이 적었던 탓인지, 칭찬을 들으면 그대로 받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얼버무리거나 손사래 치면서 뒷걸음치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칭찬을 하는 사람이나 그걸 받는 나 사이에 정적이 흘렀고, 잠시 어색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물론 속으로는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아휴,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게 겸손한 사람이 갖춰야 할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았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겸손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을. 한번은 칭찬을 고마운 마음으로 흔쾌히 받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꺼이 칭찬받았건만, 결코 재수 없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건방 떠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상대의 마음을 받아낼 줄 아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나 기회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 많던 기회가 어쩌면 겸손을 떨어서 멀리 달아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그동안 기회를 날려버리고 내던져버린 일만 해도 한 트럭쯤 될 듯싶다. “아, 아까워!”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하면 발끈한다. 반면 정작 자기가 자신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자기가 자기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제는 “아휴,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에서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대답한다. 상대의 진심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겸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배운다. 또 그게 진짜 미덕이라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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