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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아뜨리 조 Mar 30. 2016

소금사막의 밤 3

먼저 찾아온 낙엽 같은......

 나는 순간 프랑스 인형처럼 예뻤던 수지의 다섯 살 모습이 떠올랐다.

 "요즘 아이들은 사람을 많이 힘들 게 합니다. 반항하고 무리를 짓고 나쁜 일을 도모하기도 하지요. 그래도 저는 생각한답니다. 우리 애가 내게 반항을 하고 나쁜 짓을 하더라도 다섯 살이 아닌 열두 살이면 어떨까 하고요.  저는 군대를 다녀오고 학교를 막 졸업하고 아이에게 많은 걸 해줄 수 있는 아빠가 아니었죠. 지나치게 젊은 아빠였던 저는 아이가 가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죠. 엄마보다 함께 한 시간이 더 많아서 인지 아이는 저를 더 따랐었죠. 가진 게 많지는 않았지만 나쁘지 않은 날들이었습니다. 아이를 통해 서로를 더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사라지고 나자 서로를 바라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선혜 씨처럼 혼자가 된 이유입니다."

 선혜라고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다. 먹고 있던 감자튀김을 떨어뜨릴 뻔한 나는 허둥대며 남은 잔을 비워냈다.

 "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순간 내게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건 그의 사연 때문이기도 했고 수지를 미워하고 있었던 내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그의 얘기를 듣는 동안 초음파 사진 속의 귀여운 뒷모습에서 막 태어났을 때의 티 없는 눈동자, 그리고 다섯 살 꼬마 공주 같았던 수지의 성장기가 파노라마처럼 내 눈 앞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 그의 손길은 눈빛만큼이나 다정했고 나는 그의 제자가 된 것처럼 내 슬픔을 그에게 보이고 말았다. 우리가 호프집을 나섰을 땐 이미 어둑한 밤이 되어 있었다.

 "조심해서 잘 들어가십시오. 저는 내일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선혜 씨도 여름휴가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는 종각역 계단 앞에서 꾸벅 인사를 하고 뒤돌아 섰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그는 그렇게 떠났고 나는 계단이 아닌 허공에 발을 딛듯 허망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나는 다음날로 짐을 싸서 지리산에 있는 경혜 네로 향했다. 경혜는 구례역으로 차를 몰고 마중 나와 있었다.

 "꼬마 아가씨는 어쩌고?"

 지난봄까지만 해도 수지와 동행을 했기에 경혜는 당연히 내가 수지와 함께 내려온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집에 도착하고 차를 한 잔 마시고 툇마루에 앉아 경혜와 나는 지리산 바람에 말라가는 빨래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기선혜...... 너 누구 생겼구나?"

 "얘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야, 내가 너 중학교 때부터 친구야. 니 연애 스토리는 너 자신보다 더 잘 기억하고 있다고. 그 교회 오빠부터 수지 아빠까지."

 "연애는 무슨"

 "그럼 왜 이루어질 수 없는 비련의 사랑에 빠진 불쌍한 얼굴을 하고 있냐고!"

  나는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기집애 뭐야. 진짜잖아. 주특기 나온다. 누가 맘에 들어오면 눈물부터 질질 짜는 거"

 나는 경혜에게 김영우 선생 얘기를 털어놓고 말았다. 아무런 스토리도 없는 그저 혼자만의 작은 설렘을.

 "지난봄 네가 여기 왔을 때 목련 꽃차 두 병을 주면서 내가 주술을 걸어 놨는데 그 병을 나눠 가진 자 사랑에 빠질 지어다."

 "야! 웃기지 좀 마. 나 오줌 나오겠어."

 그 날 경혜와 나는 지리산 계곡이 울릴 것처럼 신나게 웃어댔다. 지리산을 떠나 올 때 오누이처럼 닮은 경혜네 부부는 겨우 한 사람이 더 있을 뿐인데 혼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그림으로 나를 배웅했다. 여태 비어있는 줄도 몰랐던 옆자리를 느끼며 그곳을 떠나왔고 더운 여름 동안 가끔 불어오는 산들바람처럼 그를 떠올리곤 했다.

  가을이 막 시작될 무렵, 먼저 찾아온 낙엽같은 문자가 그에게서 날아왔다. 긴급하게 상담을 요청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난 다시 교실을 찾았고 소금사막에서 찍은 그의 사진을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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