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기본 체력 구축전지훈련의 첫 단계는, 매일 하는 것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지내며, 스스로 선택한 날들을 기록합니다. 원하는 삶은 우연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글이 독자에게 생각해왔던 것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일은 저녁 7시 어때?”
“그래, 그때 만나자. 시간 비워둘게.”
“오늘 스트레칭 꼭 하고 자. 내일은 에너지젤을 먹고 오면 도움이 될 거야.”
코치 쿤은 말수가 적었다. 이모티콘도 없었고 느낌표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따스해졌다. 무뚝뚝한 문장 사이에 '나는 네 훈련을 기억하고 있어. 내가 알려주는 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돼.'라는 신호가 분명히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챙김은 무뚝뚝해 보여도 정확했고, 그 정확함이 나를 더 잘 뛰게 만들었다.
수업의 핵심은 인터벌 훈련이었다. 혼자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훈련이다. 200미터를 전력으로 달리고 100미터를 회복하며 걷고 다시 200미터를 전력으로 뛴다. 쿤은 그걸 여덟 번 반복하겠다고 했다. 설명만 들었을 때는 ‘몸이 버텨줄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나?’ 정도였는데, 막상 시작하니 ‘아, 이건 정신력 테스트구나.’ 싶었다.
“지금 1분 17초야. 다음엔 더 빨라야 해.”
“1분 10초 안으로 뛰어봐. 이 기록보다 늦으면 한 번 더 뛸 거야.”
‘한 번 더’라는 말이 왜 이렇게 무서웠는지. 갑자기 다리가 말을 안 듣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내가 얼마나 빠르게 뛰고 있는지도 감이 없었다. 숨은 턱밑까지 차올랐고, 두근두근 심장 박동 소리가 혈관을 따라 여기저기 울렸다. 그래도 달렸다. 쿤은 정말로 ‘한 번 더’를 시킬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신기한 건 반복할수록 몸이 풀린다는 점이다. 처음이 가장 두렵다는 걸 그날 다시 깨달았다. 기준이 없을 때 마음이 먼저 흔들린다는 것도. 한 번, 두 번 뛰고 나니 트랙의 길이가 익숙해졌다. 익숙하니 속도 조절도 가능해지고 호흡도 유지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다. 일단 해보고 그다음엔 조금 더 잘하면 되는 거다.
마지막 여덟 번째,
“이번엔 1분 안으로 들어오는 거야.”
쿤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그의 말은 이렇게 들렸다. '한번 마음껏 뛰어봐.' 나는 남아 있는 힘을 전부 끌어다 썼다. 200미터를 지나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다리가 더 빠르게 나갔다. 결과는 50초. 50초!? 처음보다 27초 단축한 기록이다! 숫자를 보는 순간 웃음이 먼저 나왔다. '와, 이게 되네.'
며칠 후, 쿤이 물었다.
“대회에 나가볼 생각도 있어?”
“응, 나가보고 싶어. 실력이 늘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잠깐만, 체크해볼게. 11월 15일에 치앙마이대학교 안에서 열리는 대회가 있어.”
“아직 속도를 높여서 길게 뛰는 건 무리일 것 같아. 5km에 나가볼게.”
바로 등록을 하고 훈련을 하며 대회를 기다렸다. 대회 전날, 엄마가 한국에서 단기여행을 왔다. 근교에 있는 치앙라이 일일 투어를 가서 종일 걷고 사진 찍고 마사지까지 받았다.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꽉 찬 일정을 소화하느라 눕자마자 잠에 빠져들 기분이었다. '내일 뛸 수 있을까? 못 뛰면 어떡하지? 기록이 안 나오면 어때, 즐기면서 뛰자.' 훈련은 이미 끝났다. 이제 남은 건 그냥 가서 뛰는 일 뿐이다.
새벽 네 시 반, 택시를 불렀다. 아직 어둠이 도시를 붙잡고 있을 시간이었다. 엄마는 내가 혼자 택시를 타는 게 걱정된다고 했다. 걱정은 하면서도 말리지는 않았다. '엄마, 그때 내가 새벽에 마라톤 간다고 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 나중에 물어보니 무슨 말을 했어도 결국 달리러 가지 않았겠냐고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잘 안다.
‘이 시간에 내가 뭐 하는 거지…’
창밖을 봤다.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가로등이 희미해진다.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새들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아침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길이 잔디로 막혀있어서 기사님과 나는 당황했다. 다시 차를 돌려 주변을 배회하다가 겨우 마라톤 출발선이 보이는 곳을 찾았다. 길을 잃으면 연락할 곳도 없었다. 잘 데려다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한 후, 등록하는 곳에 가서 번호표를 받았다. 밝게 웃으며 안내해 주는 스텝들이 있었다. 걱정했던 마음이 사그라들었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10분간 조깅을 하며 몸을 풀었다. 훈련할 때와 다를 게 없었다.
출발선은 조용했다. 많은 인원이 몰려있는데도 한국처럼 카운트다운을 외치거나 응원의 말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대신 양옆에서 귀가 찢어질 듯한 팡파레 소리가 울렸다.
“준비, 출발!”
"빠아아아아앙~~!!"
처음 달려보는 코스였다. 동도 트지 않은 새벽, 앞사람을 놓치면 길을 잃을 것 같은 도로. 출발할 때는 속도 조절을 잘 해야한다. 옆사람들을 따라가다가 오버페이스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킬로당 몇 분 페이스로 달리고 있지? 5분 대였다. 조금 빠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언덕이 나왔다. '코스에 언덕이 있었나?' 모르는 동네이고 다른 나라에서 뛰는 것이다 보니 대비도 못했다. 트랙은 전부 평지였기에 언덕이 나오자 다리가 금방 무거워졌다. 속도가 7분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하나둘 나를 앞질러 갔다.
‘망했다, 처음에 너무 빠르게 뛰었네. 그냥 천천히 완주만 할까?’
그때 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지금 잘하고 있어. 포기하지마, 힘내!' 언덕을 천천히 올라가자 내리막길이 나왔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나온다. 다시 속도를 조절했다. 내려오는 구간에서 리듬을 되찾았고 나머지 구간을 6분 30초로 달렸다. 6분대로 뛸 수 있을까? 했는데 뛰어졌다. 한국에서는 7분이 넘는 속도로만 뛰었었다. 마지막 800미터에서는 인터벌 훈련을 생각하며 온 힘을 다해 달렸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해냈다!라는 기쁨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축하드려요! 5km 여자 5등이에요.”
"네? 제가요?"
"네, 순위표를 가지고 계세요. 시상식을 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팻말에 적힌 숫자 5를 보며 몇 초간 멍해졌다. 내가? 정말? 5등이라고? 마라톤에서? 이온음료를 벌컥벌컥 마시며 생각했다.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대회이니 학생들이 많이 참가했을거다. 그러니 전체적으로 평균 속도도 낮았을거고. 운이 좋게 나까지 입상의 기회가 온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도 기뻤다. 평균 속도가 예전보다 빨라진 게 확실히 눈에 보였으니까. 이래서 사람들이 러닝을 계속하는거구나. 달리기는 몸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신뢰 같은 거라고 느꼈다. 더 뛸 수 있다고, 나는 생각보다 강하다고 말해주는 몸의 언어라고 말이다.
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5등 했어! 너무 기뻐. 네 덕분이야’
‘축하해. 기분이 어때?’
‘더 잘 뛸 수 있을 것 같아.’
그때부터였다. 달릴 때마다 쿤이 떠오르기 시작한 건. 조금 더 빠르게, 더 멀리까지 뛸 수 있다고 어디선가 “SUSU! (태국어로 화이팅!)” 하고 외쳐주는 것 같았다. 이제는 옆에 코치가 없어도 안다. 언제 힘을 아껴야 하고 언제 밀어붙여야 하는지. 혼자서도 훈련하며 계속 달릴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치앙마이에서 지냈던 한 달 동안 나는 모든 면에서 성장했다. 다녀오기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원하는 것을 선택했고 선택한 일은 포기하지 않고 발전시켰던 하루하루였다. 여느 때보다 꽉 찬 스케줄표를 관리했지만, 그 시간들이 내가 바랬던 모든 것을 레벨업 시켜줬다. 바로 이번 마라톤처럼.
그리고 나의 마라톤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