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종아리는 파업, 마음은 입사

PART 1. 기본 체력 구축전지훈련의 첫 단계는, 매일 하는 것

by 수련의기록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지내며, 스스로 선택한 날들을 기록합니다. 원하는 삶은 우연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글이 독자에게 생각해왔던 것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도대체 빨리 달리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치앙마이 트랙을 달리며 혼자 한탄했다. 나는 왜 자꾸 느려지는 건지, 왜 조금만 속도를 올리면 숨이 턱까지 차서 헉헉거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SNS를 보면 나만 빼고 다 잘 달리는 것 같다. 다들 10km를 40분 안에 들어오고, 풀마라톤을 3시간 안에 완주하는 서브3 혹은 4시간 안에 들어오는 서브4를 달성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올린다. 나는 1km를 7~8분대로 달리는 상태다. 10km 기록은 1시간 18분. 여기서 20분을 줄여야 1시간 안에 들어오는데 이게 가능한 숫자인가 싶었다. 다들 도대체 어떻게 빨라진 걸까. 트랙을 도는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그날은 뛰지 못하고 걷고 있었다. 치앙마이에 올 때 러닝화를 두 켤레 챙겨왔는데 새로 사온 운동화가 발에 맞지 않았다. 신발 바닥에 볼록 솟은 부분이 있었는데 이게 발바닥을 계속 압박했다. 1km 를 아픈채로 달리다가 이러다간 내일도 못 뛰겠다 싶어 걸었다. 눈처럼 새하얀 신발이었다. 출시된지 얼마 안된 모델이었고 매장에서 내가 원하는 사이즈는 모든 색상 완판이었다. 마침 다른 사람이 신어보고 구매를 하지 않았던 흰색이 있어 '이건 인연이다' 싶어 바로 구매했었다. 인연은 가끔 이렇게 배신을 한다. 발에 맞지 않아 슬펐다. 그래서 신발도 당근을 하는구나. 누군가에게 잘 맞는 브랜드가 내 발에까지 잘 맞을거란 보장은 없는 거였다.




치앙마이대학교 스테디움에 있는 러닝 트랙과 나와 인연이 아니게 된 하얀 운동화. 그리고 방금 달리기 수업을 마친 아이들




“요이, 땅!”
"타다다다다다다—!"


멀리서 아이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옆에는 5~6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스무 명 가까이 모여 다음 순서를 정하고 있었다. 단거리 선수들이 쓰는 스타팅 블록까지 보였다. 제대로 훈련을 하는 모양이었다. 출발 신호가 울리기 전, 아이들은 블록에 발을 올리고 숨을 고른다. 온 신경이 달리는 것에만 쏠려 있다. 신호가 떨어지자 팔을 크게 흔들며 힘껏 튀어나간다. “끝까지 달려!”라는 코치의 외침에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이건 달리기 수업이었다. 대학교에 있는 트랙이니 학교에서 운영하는 러닝 프로그램일까? 아이들처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반은 없을까, 있다면 어떻게 신청하는 걸까. 갑자기 희망이 생겼다. 무겁던 다리가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아이들 수업이 끝날 때까지 트랙을 천천히 돌며 생각했다. '코치님께 직접 물어보자. 내가? 말이 안통하면 어떡하지?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면 되지. 말을 걸어도 될까? 프로그램이 있는지만 물어보는 건데 괜찮을거야.' 기대를 안고 나이가 있는 코치님께 다가갔다.


“실례지만… 혹시 어른들을 위한 수업도 있을까요?”

나는 구글 번역기를 켜서 한국어 질문을 태국어로 바꾼 뒤 화면을 내밀었다.


“아, 아쉽지만 우리는 아이들 수업만 해요.”

그가 번역기에 대고 태국어로 답했다.


“그렇군요… 달리기를 꼭 배우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저는 어렵고요. 다른 코치에게 한 번 물어볼게요.”


그때 쿤이 나타났다. 잘 웃지 않는, 시크한 얼굴의 20대로 보이는 남자 코치였다. 축구 선수가 입을 듯한 유니폼 상의와 하의를 입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진지하고 매서웠다.


태국어로 쿤과 나이가 많은 코치님과의 짧은 대화가 오갔고, 쿤이 나를 보며 말을 걸었다.


“러닝은 얼마나 했어요?”
“8월부터요.”
“기록은 있어요?”
“10km 1시간 18분이요.”
“목표는요?”
“10km를 1시간 안에 뛰고 싶어요.”
“그래요. 메신저 알려줘요. 시간 맞춰봐요.”


세상에. 방금 내가 러닝 코치를 섭외한 건가. 그것도 1:1으로. 알고보니 그는 800미터 육상 선수였고, 지금은 아버지와 함께 초등학생들의 러닝 코치로 일하고 있었다.(가족 사업이라고 했다) 무에타이 강사이기도 했는데 예전에 가수 2AM의 정진운에게 무에타이를 가르친 적도 있다고 했다.(자랑이었다) 그는 메신저로 내 목표를 더 자세히 물었다. 최근 기록도 캡쳐해달라는 세심함도 보였다. 10km를 1시간 안에 들어오려면 지금의 7분 페이스를 5분대로 줄여야 한단다. 숫자로 들으니 갑자기 일이 커진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의욕이 났다. 그날 저녁 6시 반부터 바로 수업을 하자고 했다. 오전엔 걷기만 했으니 괜찮겠지. 바나나 한개를 먹고 다시 트랙으로 향했다.


“오늘은 러닝 드릴을 배울 거예요. 달리기에 좋은 기본 자세죠.”

“이걸 하면 빠르게 뛰는데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빨라질 수밖에 없죠.”


트랙은 밤이 되자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명이 켜진 트랙 위로 선선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사람들도 이런 날씨가 야외 활동을 하기에 딱 좋다고 느꼈는지 산책하러 온 가족, 뛰러온 젊은이들로 가득 했다. '여기서 훈련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쿤을 따라갔다. 우리는 축구 골대 옆 빈 공간으로 갔다. 스트레칭을 시작하자 갑자기 비가 내리는게 아닌가. 정말 이런 날에. 아쉬운 눈빛의 나를 보며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괜찮아요, 이쪽으로 오세요.” 그렇게 나의 첫 러닝 수업은 트랙 옆 짐 보관소에서 시작됐다.


쿤은 자세를 세밀하게 확인했다. 발이 닿는 순서, 팔의 각도, 보폭, 발소리까지. 빠르게 뛰는 사람들은 뒷꿈치를 땅에 닿지 않고 뛴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팔은 90도로 고정하고 어깨를 축으로 앞뒤로만 움직인다고 말했다. 내 발소리가 크다며 소리가 나지 않게 쿠션감 있게 점프하면서 달리라고도 했다. 평소 혼자 뛰면서 궁금했던 질문들이 하나씩 정리됐다. 답답했던 마음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러닝 전에 하는 훈련인 드릴도 배웠다. A스텝, B스텝, C스텝, 숏피치, 롱피치까지. 고관절과 엉덩이를 쓰는 훈련이라고 했다. 이걸 왜 해야하는지 물어보니, 달리기는 앞으로 나아가기위해 고관절로 당기고 엉덩이로 밀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작은 원을 계속 그리는 동작이라는 말에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1시간 수업은 순식간에 끝났다. 따라가지 못한 동작도 많았고 빗줄기는 점점 더 강해졌다. 집에 어떻게 가야할지 막막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마음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비를 피하고 있는 사람들, 엉거주춤하게 뛰는 나와 시범을 보이는 코치 쿤





다음 날 아침, 종아리가 터질 것 같았다. 뒷꿈치를 안 닿게 뛰겠다고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쓴 탓이었다. 두껍게 부은 종아리를 문지르며 속으로 말했다. 조금만 참아줘. 오늘도 달리러 가야 하거든. 역시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 몸에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웃음이 났다. 종아리는 그만 달리라고 반쯤 파업 중인데 마음은 이상하게 출근 도장을 찍은 느낌이었다. 어제의 나는 빠르지 않았고, 가볍지도 않았지만 새롭게 시작했다. 잘 달리는 사람은 아니어도 배우고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대로 한다고 기록을 넘어설 수 있을지 모르겠고 종아리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코치 쿤과 트랙은 오늘도 내일도 거기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옆에서 또 뛰게 되겠지.



훈련이란 게 원래, 그렇게 슬쩍 삶에 들러앉는 거니까.















CMU Main Stadium


- 운영시간 : 오전/저녁만 이용 가능 (아침 9시 이전까지, 저녁 시간 확인 필요 - 6시 이후로는 개방되어있었음)

- 무료 개방

- 드넓은 트랙과 잔디밭이 있는 곳. 아침에도 저녁에도 운동하기 정말 좋은 곳.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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