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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방끈수공업자 Jan 01. 2020

2019년. 개미, 그리고 베짱이로 살기.

개미 vs. 베짱이

가족과 함께 2019년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모두 잠든 새벽, 식탁에 홀로 앉아 지난 1년을 되돌아 봅니다.


항상 개미처럼 살아온 인생이었습니다. 


해야할 일을 마치지 못하면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잘 하지 못하더라도 포기해버리는 일은 없는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복이 많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열 마리 개미들이 모이면 그 중 일하는 개미는 한 마리다. 그 일하는 개미들을 다시 열 마리 모아도 그 중에 한 마리만 일한다. 너는 그 한 마리 같은 녀석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온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정부출연연구소에서 1년의 사이클을 모두 겪어 보았습니다. 여러 타입의 사람들을 겪었습니다. 크게 나눠보면 저와 같은 개미 파와 그 반대의 베짱이 파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열심히 일하시는 개미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정출연은 베짱이로 살아도 크게 문제없는 그런 곳 입니다. 정부 수탁과제 따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고 출연금으로 만들어지는 내부과제 적당히 하면서 적당한 곳에 논문 내고 적당하게 특허 출원만 하면서 인사고과 따고 변두리 연구자로 살아도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일과 자신의 인생을 분리해서 일은 돈 버는 수단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개인의 인생에는 가장 좋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에 베짱이들을 비난할 생각은 1도 없습니다. 그들이 다른 개미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요. 


지난 몇 년간 개미.. 아니 바퀴벌레처럼 살면서 번 아웃이 찾아왔기에 2019년에는 베짱이의 삶을 오마주하는 개미로 살아가고자 하는 다짐을 했습니다. 논문 제출이 있던 봄까지 조금 바쁘게 보내고 초여름까지 두어달의 시간을 여유롭게 보냈습니다. 물론 각종 회의와 연구미팅 같은 일정이야 쉼없이 있었습니다만 정신적으로 여유있었다는 말 입니다.


그렇게 베짱이의 시간을 보내다보니 좀이 쑤시더라구요. 그래서 여름부터 연말까지는 다시 개미로 돌아와서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베짱이의 삶이 다시 그리워질때쯤, 연말이 찾아왔고 지난 2주간 편안하게 쉬며 보내며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종합해보면, 저는 평생 개미로 살아야할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것을 이뤄내고자 하는 욕심도 있고 연구로 주목 좀 받고 싶은 관종끼도 좀 있구요. 이걸 다 맞추려면 개미로 살아야합니다. 다만 제 안의 베짱이를 잊지 않으면서 가끔 꺼내볼 수 있는, 일의 성패가 제 인생의 성패와 꼭 같지는 않다는 것을 되새겨 볼 여유가 있는 그런 2020년을 보내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새해에도 건승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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