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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방끈수공업자 Jan 10. 2021

대학 교수의 길

옮기게 되었습니다.

포닥 자리를 구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으로 인해 다른 분들은 시행착오를 덜 겪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연재의 첫 글(포닥으로 살아가기-프롤로그 )의 조회수가 1만회가 넘었다는 알림이 왔습니다. 그 뒤로 포닥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노력을 담은 연재(포닥에서 탈출하기)를 통해 미국 대학 교수가 되는 과정에 대해서 말씀드렸죠. (+ 질문 받습니다 : https://brunch.co.kr/@cnam/80)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은 아니지만 써놓고 보니 이 글이 위 두 연재의 에필로그 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닥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 했던 시간들, 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미국에서 교수 오퍼를 두 개 받고도 고민 끝에 국내 연구소로 와서 즐겁게 연구했던 시간들. 포닥 때부터 이어져온 시간의 흐름이 계속 되는 듯한 느낌으로 지난 몇 년간 연구소 생활을 했는데 이제서야 작은 마침표 하나 찍었습니다. 


이 글이 새로운 이야기를 장식하는 또 하나의 프롤로그가 되길 기대합니다.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신변에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연구소에서 학교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연구소에 있다보니 항상 과제에 대한 압박이 있어왔고 과제를 하면서 연구보다는 일을 한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편하게 얘기하면 이제 그만 남 좋은 일 그만하고 제꺼하고 싶어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위권 대학은 아니지만 중위권 인서울/수도권 공대로 나름 전통이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요즘 어지간한 상위권대 아니면 대학원생 수급이 어렵기 때문에 여전히 열심히 실험하고 글쓰고 1인 다역을 수행해야할 것 같습니다.


학교에 자리 잡은 후에는 이제 “한국에서 교수되기”의 주제로 연재를 해볼까 싶습니다. 하지만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독자와의 상호작용이 쉽지 않은 곳이라 글을 쓰면서도 벽 보고 얘기하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막 신나서 글을 쓰게 되지 않다보니 앞으로 얼마나 진도가 나갈지는 미지수입니다. 본격적인 시작 전에 그동안 임용과정에서 느낀점,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부분에 대해서 몇 가지 꿀팁들을 정리해 봅니다.


- 학교별로 면접 프로세스에 대한 규정이 있고 공개되어 있습니다. 주로 신임교원 채용, 교원채용, 신규임용 등의 키워드로 검색을 하시면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최대 몇 배수로 올리고, 심사위원은 어떻게 정하고, 점수 항목은 무엇이 있는지 잘 나와있습니다. 규정이 있으면 학과나 학교 입장에서는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규정을 따르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거든요.


- 간혹 재임용이나 승진 규정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이것도 다 학교 규정으로 공개가 되어있습니다. 하X브레인 같은 곳에 질문하실 필요 없을 정도로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언제 최종발표가 날지 궁금하신 분들은 이사회 회의록을 검색해보세요. 그럼 작년이나 지난 학기 언제 이사회에서 최종적으로 교원 채용에 대해서 의결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시기를 기준으로 아 늦어도 이때는 나오겠구나 하는 감이 올 수 있습니다. 이사회 전에 최종 결과를 통보하는 학교도 있긴 합니다.


- 대표실적을 정하는 학교들에 지원하실땐 1차 통과를 위해선 JCR 기준으로 제일 %가 높은 논문들을 고르세요. 1차 심사하시는 분들이 해당 분야 분들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정량적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Predatory 저널로 알려진 곳들이라도 JCR이 높으면 높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이런 선정기준이 1차 서류통과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추후 정성평가가 들어가는 2, 3차 과정에서는 독이 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규정을 보시면 어떤 곳들은 서류때 받은 점수가 끝까지 합산 되는 곳들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학교별로 전략을 잘 택하시기 바랍니다.


- 공강에서는 주어진 시간에 따라서 디테일로 갈지 말지를 결정하세요. 발표만 40분 이상 진행한다고 하면 디테일을 빼고는 시간을 채우기 어렵습니다. 다만 디테일도 오버뷰 개념으로 접근하시면 좋습니다. 예를들어 수식을 하나 설명한다고 하면 수식의 변수를 하나하나 설명한다기보다는 수식의 개념, 의미, 역할을 설명한다는 느낌으로 하세요. 20분 이하면 디테일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굵직굵직하게 진행했던 연구 주제들의 모티베이션, 결과물 위주로 설명하시면 좋습니다. 애매하게 30분이면 본인의 무기라고 생각하는 주제는 조금 디테일을 다루고 나머지는 오버뷰만 주시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 공강에서 한 주제만 파서 디테일을 설명하는건 피하는게 좋아보입니다. 어차피 동일한 연구하시는 분들 아니면 다 이해하시기 힘들어요. 저는 모든 공강에서 되도록 제가 한 다양한 연구를 다 보이는데 집중했습니다. 시각적인 자료를 많이 활용하였구요. 텍스트가 들어가더라도 6X6 원칙에 준해서 (한 슬라이드에 텍스트 6줄 이하, 한 줄에 6단어 이하 사용) 작성했습니다.


- 심사위원의 시각은 이 사람이 와서 우리 학과에 도움이 될까? 우리 학교에 도움이 될까? 입니다. 내 연구가 끝내줘!라는 자세로 임하시면 핀트가 안 맞습니다. 학과/학교에서 원하는 것들은 다 다릅니다. 그걸 면접 전에 얼마나 파악하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생 학과는 커리큘럼을 다듬고 학과 일을 잘 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상위권 대학의 자리잡힌 학과에서는 대형 사업수주나 평가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논문을 잘 쓰거나 돈을 잘 따오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BK에 도전을 할만한 학교는 우수논문 숫자가 중요합니다. 대형 사업을 이미 들고 있는 학과는 행정일 열심히 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의대가 없고 등록금에 의존도가 높은 학교는 간접비 많이 넘겨줄, 과제 많이 따오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우리 잘 알고 있는 표현이 있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교수 임용에도 해당합니다. 이렇게 파악한 내용을 지원서류와 공강 내용에 잘 담으세요. 앞에 연구내용을 발표하지만 뒤에 몇 분 정도는 학과에 어필할 수 있는 이야기를 꼭 하시구요.


- 앞서 말씀드린 기준에서 티칭은 다른 부분에 비해서 중요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등록금이 비싸기로 유명한 학교들은 학생들이 수업의 질에 예민할 수 있기에 신경을 좀 쓸테지만 대부분 은퇴, 이직 등으로 인해 비는 과목들 펑크만 안나게 잘 해주면 좋겠다는 정도입니다. 새로 과목을 제안하겠다는 내용은 임용과정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기 위한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거기에 집중한 학교들은 신생학과 외에는 없었습니다. 대부분 어떤 과목 잘 가르칠 수 있겠느냐? 정도를 확인하는 느낌이었습니다.


- 필요하면 하X브레인 같은 곳에 질문하시지 말고 학과나 교무팀에 문의하세요. 행정 직원들 귀찮게 한다고 점수나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의에 응대하는 것이 그 분들의 업무이기도 하구요. 학과장님이나 인사위원회 등에 연락을 드리는 것은 쉽지 않으니 직원들에게 문의하세요.


- 위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본인을 어떻게 selling할지 생각을 많이 하시라는 말입니다. 도때기 시장에 물건을 팔러 나왔고 비슷비슷해보이는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 와중에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내 물건이 저 물건보다 뭐가 어떻게 좋은지 설명하고 팔 수 있어야합니다. 그러려면 그 구매자의 행색이나 걸음걸이 등을 바탕으로 이 사람이 필요로 하는 물건이 뭔지를 파악해서 그 포인트를 기반으로 설명을 하셔야 잘 파시겠죠. 임용도 똑같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한다기 보다는 상대방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시면 자리를 잡으실 때까지 걸리는 기간을 많이 줄이실 수 있을 것 입니다.


- 이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실적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실적이 애매할때 경험상 한번 지원해볼 요량으로는 시작하지 마세요. 나의 실적이 해당 학과 최근 임용된 조교수가 임용될 시점에 들고 있던 실적과 비슷하면 그때부턴 해볼만 합니다. 저는 그 기준으로 지원해서 대부분 공개강의 이상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 다 경험해본 것은 아니지만 요즘 왠만하면 내정자는 없다고 느낍니다. 다만 학과에서는 자신들이 올린 사람이 본부에서 짤리면 안되기 때문에 학과에서 뽑기로 결정을 했으면 그때부터 신경을 써줄 수는 있습니다. 당장 올해 교원 안 뽑으면 과목도 펑크나고 행정일도 시니어들이 다 해야하는 판인데 어정쩡한 사람 올려서 본부에서 통과를 안시켜주면 그 학기는 기존 교수들이 고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공개강의 합격 이후에는 관심있게 바라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보면 학과에서 지원을 권하는 경험을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최대한 풀을 늘리려는 전략일 뿐입니다. 제가 초반에 권유받아 지원하고 탈락한 경험이 있었는데 저도 처음엔 김칫국을 많이 마셨습니다. 연줄과 개인적 선호를 기반으로 정하는 내정자는 이제 없다고 봅니다 (예외는 항상 있겠습니다만). 학과들이 통폐합되고 대학이 문을 닫는 시대에 진짜로 능력이 있는 분들 뽑지 않으면 자신들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정자 걱정은 하실 필요 없고 그 시간에 논문을 더 쓰시길 권합니다.


- 적당한 나이라는 것은 학과마다 다 다른것 같습니다. 보통 30대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범위가 넓습니다. 매년 중요한 대학평가다 사업신청이다 있다보니 와서 시행착오를 몇 년 거칠 분들이 아닌 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분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경력이 있으면 30대 후반이라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학과는 오히려 중심잡고 일을 할 수 있는 40대 이상 경력있는 분들을 선호하기도 하더랍니다.


좋은 선생이 되고 싶은데 어느 순간 교수가 아닌 괴수가 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네요. 항상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같이 고민하는 선생이 되고 싶습니다. 이 첫 마음 변치않도록 노력하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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