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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즐기고 있는 가을야구. 이 또한 선물이다.

2025년 10월 14일 화요일

by 지우진

나의 아버지는 축구보다는 야구를 좋아하셨다. 삼성 라이온즈의 원년 팬이셨기에 나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하고 삼성을 응원하게 되었다. 주말이 되면 오후에 항상 삼성 경기를 보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 당시 삼성은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던 걸로 안다. 규칙도 복잡해 보였고 박진감을 느끼지 못해서 야구는 좀 지루하구나 생각했다. 아버지께서 나와 동생에게 글러브와 알루미늄 배트를 사주시고 학교 운동장에서 종종 야구를 같이 해주셨기 때문에 야구에 대한 흥미는 잃지 않았다.


야구를 본격적으로 즐기게 된 건 2012년 무렵이다. 그 해 삼성 라이온즈가 2년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2005년과 2006년에도 삼성은 정규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하는 통합 우승을 달성했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고등학생 때라 야구 경기를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2011년은 삼성이 5년 만에 통합 우승을 차지했고 왕조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해였지만, 편입공부에 매진하고 있을 때여서 역시 즐기지 못했다. 다음 해인 2012년은 리그 시작부터 아버지께서 열심히 경기를 보셨다. 평일 저녁 우리집 TV에서는 항상 삼성 경기가 틀어져 있었고 덕분에 나도 경기를 제대로 보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팀이 경기를 이기니 다음날도 기대가 되었고, 보다보니 야구의 재미에 빠져들게 되었다. 당시 살을 빼기 위해 매일 러닝을 했는데 운동 후 개운하게 샤워하고 야구보는 건 루틴으로 자리잡았다. 그렇게 2015년까지 야구 시청은 나의 취미였다.


2015년 삼성은 5년 연속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며 리그를 호령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게 패하며 5년 연속 통합 우승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후 2023년까지 삼성은 부침을 겪었다. 이 기간동안 프로야구 10개 팀 중 9위 두 번, 8위를 세 번하며 왕조를 세웠던 명성은 점점 빛을 잃어갔다. 세대교체를 실패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자주 들렸다. 그럼에도 삼성을 계속 응원했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건 힘들었다. 그리고 나도 그동안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느긋하게 야구를 시청하는 건 꿈도 못꿨다. 가끔 기사로 삼성 소식을 확인하는 것 뿐이었다. 첫째인 아들이 4살 즈음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같이 공을 차며 놀았다. 그때만해도 아들이 야구에 관심을 가질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아들은 축구에만 관심을 가졌고, 나도 집에서 야구 경기를 틀어놓지 않았을 뿐더러 설령 잠시 틀어놓더라도 축구를 보여달라고 했기에 더욱 그랬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2024년, 삼성은 2021년 이후 오랜만에 정규시즌을 2위로 마쳤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LG를 꺾고 무려 9년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는 소식에 나는 오랜만에 야구 경기를 틀었다. 아내는 야구를 비롯한 구기종목에 관심이 적었지만, 내가 야구를 좋아힌디는 건 알고 있었다. 내가 야구를 보고 있자 아들은 이건 무슨 경기냐고 물었다. 간단히 야구에 대해서 설명을 했더니 복잡하다고 느꼈는지 더이상 듣지 않았다. 마침 안타를 치고 선수가 질주하며 2루까지 출루하자 관중들이 크게 환호하고 박수치는 장면이 나왔다. 아들은 왜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의 설명을 듣고는 그제서야 관심있게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지금 누구를 응원하냐고 물어서 파란색 옷 입은 팀을 응원하는데 팀 이름은 삼성 라이온즈라고 답했다. 아들은 자기도 파란색이 좋다며 같이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날 경기는 삼성의 승리로 끝났고, 아들은 나보다 더 크게 기뻐하며 환호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경기가 삼성의 한국시리즈 첫 승이자 마지막 승리였고 2024년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1승 4패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아들과 다시 야구 경기를 보게 된 건 올해 4월 쯤 부터였다. 학교 친구들 중에서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생겨서인지 나에게 야구 관련 책도 사달라고 했다. 야구 경기를 틈틈이 챙겨보고 유튜브로 하이라이트 영상도 보면서 야구에 스며들었다. 야구 글러브를 사달라고 해서 사주었고 주말이면 같이 캐치볼을 했다. 야구 배트도 사달라고 해서 나무 배트를 선물했더니 손이 미끄러우면 안되니까 장갑도 필요하다고 했다. 나도 야구 장갑을 껴 본 적이 없었는데 아들 덕분에 처음 실물을 봤다. 혼자 스윙도 연습하고 야구공의 그립도 쥐어보고는 나에게 이건 커브야 라고 가르쳐주기도 했다. 나보다 선수들에 대해서 더 많이 꿰고 있었고, 삼성 선수들의 응원가들도 아들 덕분에 배웠다. 등교 때문에 전날 야구 경기를 끝까지 보지 못하면 다음날 눈뜨자마자 경기 결과부터 찾아보고는 출근한 나에게 전화해서 결과를 알려주었다.


삼성이 올해 전반기에 8위까지 떨어졌을 때도 아들은 야구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고 이후 시즌을 4위로 마감하는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며 야구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와일드카드전과 어제(10월 14일) 삼성의 승리로 끝난 준플레이오프까지 빠짐없이 봤다. 특히 어제 경기는 아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삼성이 7회까지 2 대 0으로 앞서고 있다가 8회초에 동점을 허용당해서 실망한 채로 잠에 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8회말에 디아즈의 극적인 결승 투런포와 뒤이어 이재현의 솔로홈런으로 쐐기를 박자 아들은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다. 동점으로 끝나는 줄 알았던 경기를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선수가 홈런으로 역전해서 이기게 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있을까. 경기가 끝나고 자려고 누웠을 때 아들이 나에게 "오늘은 정말 행복한 하루야." 라고 말했다.

아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아빠는 너와 함께 야구보는 이 순간들이 다 행복이야. 왜냐하면 아빠가 좋아하는 걸 네가 아빠보다 더 많이 좋아하고 진심으로 즐기니까.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아빠에게는 행복이고 선물이야."


20251014_삼성준PO승리.jpg 어제(10월14일) 삼성 승리 후 아들과 찍은 사진. 삼성의 가을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와 아들의 가을야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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