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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가득 담긴 가을소풍으로 기억해줘서 고맙다 아들아

2025년 10월 15일 수요일

by 지우진

아들이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초등학교 입학 후 두번째로 맞이한 소풍이었다. 1학년 때는 모든 걸 낯설어했는데 이번 소풍은 이틀 전부터 설렌다고 계속 말했다. 학교에 다시 와서 급식을 먹는 게 아니었기에 점심 도시락을 꼭 챙겨와야 한다는 담임선생님의 당부를 엄마에게 계속 얘기하며 본인이 먹고 싶어하는 걸 얘기했다. 내가 들은 메뉴만 6가지가 넘는데 모두다 점심 도시락으로는 힘든 메뉴였다. 치킨, 마라샹궈, 짜장면 등 다양하게도 말했다.

김밥은 어떠냐고 내가 슬쩍 물었다. 곧바로 김밥은 싫다고 했다. 아빠 어렸을 때는 소풍 도시락으로 김밥이 최고였다고 말하니,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며 라면없이 먹는 김밥은 맛없다고 했다. 우리 아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은 라면이고, 집에서 김밥을 먹을 때면 라면 반 개라도 꼭 함께 먹었다. 그래서 도시락으로 김밥만 싸서 먹는 건 본인에게는 상상이 가지 않는 것 같았다.


아내는 아들이 먹기 편하면서도 뒷정리도 간단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고민했다. 더불어 아침에 준비하기 수월해야 했다. 나와 아내는 상의 끝에 비엔나소시지 구이와 계란볶음밥으로 결정했다. 평소에 계란볶음밥을 해주면 두그릇도 가뿐하게 먹는다. 그리고 아들이 처음에 말했던 메뉴 중에 휴게소에서 꼬치에 끼워져 파는 소시지 같은 걸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아들은 소시지 크기에 아쉬워했지만, 아내가 챙겨준다는 소시지의 양을 듣더니 친구들과 나눠먹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알겠다고 답했다.


출근 후 거래처로 가는 길에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준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결정했던 메뉴대로 잘 챙겨줬다고 한다. 낮에 먹더라도 온기가 있으면서 가방에 넣고 다녀도 무겁지 않은 보온 도시락 통에 계란볶음밥을 담았고, 비엔나소시지는 가벼운 밀폐용기에 12개를 싸줬다고 했다. 아들은 친구들과 나눠 먹더라도 나도 많이 먹을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전해줬다. 아내가 한창 도시락 준비를 하는데 아들이 갑자기 아내에게 씩 웃으며 "엄마, 이번에도 도시락 통에 지난번처럼 편지 쓴 건 아니지?" 라고 말했단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작년 아들의 첫 번째 소풍 때도 도시락을 쌌었다. 나도 아내도 아들의 첫 소풍에 설렘과 동시에 걱정이 앞섰다. 아내는 아들이 도시락을 꺼냈을 때 조금이라도 기분이 더 좋고 또 항상 엄마가 옆에 있음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 몰래 쪽지를 썼었다. 그날 소풍을 다녀 온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엄마! 쪽지 쓴 거 뭐야? 나 너무 기분좋았잖아. 친구들에게도 자랑했어!" 라고 신이 나서 말했다.


이번 소풍 도시락 메뉴를 정하면서도 쪽지 얘기는 전혀 꺼내지 않길래 아들이 잊고 있는 줄 알았다. 아내는 이번에도 쓰려고 했지만 이제 1학년도 아니고 첫 소풍도 아닌데 혹시 너무 과하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쓰지 않기로 했다. 아들의 말을 들은 아내는 이번에는 엄마가 준비하지 못했다며 그래도 도시락 맛있게 잘먹고 오라고 말했다. 혹시 아들이 실망하면 어쩌나 싶어 표정을 살폈는데 다행히 아무렇지 않게 알겠다고 답했단다. 하지만 아내는 아들이 물어봤을 때부터 이번에도 써야겠다고 이미 생각하고 몰래 준비해서 붙여놓았다.


소풍을 마치고 태권도를 끝내고 온 아들은 오자마자 "엄마! 쪽지 뭐야? 이번에는 안썼다고 했는데 또 있었네!" 라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소풍 진짜 재미있었다며 친구들과 소시지도 잘 나눠먹고 간식도 서로 바꿔 먹고 신나게 체험도 하고 놀이도 했다고 한참 얘기해줬다. 쪽지를 친구들에게 보여줬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나와 아내도 그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아내가 아들을 씻기는 동안 가방을 정리하는데 아들의 파일철에 오늘 아내가 써준 쪽지가 얌전히 붙어있었다. 아들이 이번 소풍도 행복해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작년보다 키가 훌쩍 컸지만 아기같은 순수함은 그대로여서 또한 다행이다.


20251016_아내의쪽지.jpg 이번에 아내가 써준 쪽지. 엄마의 사랑을 가득 느낀 소풍이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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