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영화 관람은 몇 안되는 취미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극장에 자주 갔다. 특히 액션 스릴러와 SF 장르의 신작이 나오면 무조건 조조 영화로 관람했다. 부모님과 살던 집 근처에 마침 극장이 있었다. 동네가 큰 편은 아니어서 주말 오후가 아니면 사람이 북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른 오전에 첫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가면 극장 안에 나 혼자만 있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영화관 전체를 나만을 위해 대관한 것 같았다. 오직 영화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아내와 연애할 때는 극장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아내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만큼 즐기지도 않았다. 데이트 할 때 내가 먼저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아내도 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2시간 가량은 아내와 마주 보고 대화하는 대신 스크린을 봐야 하는데 그 시간조차 아까웠다. 아내와 이야기하고 놀기도 바빠서 영화를 보러 가고 싶지 않았다.
결혼 후 우리는 처음 극장에서 같이 영화를 봤다. 2017년 6월 개봉한 톰 크루즈가 주연인 "미이라(2017)"였다. 1999년 브렌든 프레이저와 레이첼 와이즈 주연의 "미이라"와는 전혀 다른 영화다. 참고로 아내는 SF와 판타지, 액션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학창 시절 학교에서 보러 간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봤다고 한다. 마법이나 괴생명체에 관심이 없다. "007" 시리즈나 "제이슨 본" 시리즈도 결혼 후 TV에서 할 때마다 내가 시청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 알게 되었다. "분노의 질주" 처럼 차량으로 말도 안되는 액션을 선보이는 걸 보면 희열을 느끼는 게 아니라 헛웃음을 친다. 다만 공포나 미스터리 분위기가 나는 영화는 가끔 관심을 가진다. 미이라(2017)의 예고편을 본 아내가 이 영화는 한번 보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곧바로 예매했다. 아내의 취향을 알고 있는 나에게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았다. "미이라(2017)"은 내가 좋아하는 요소는 가득했지만, 아내가 좋아할 만한 부분은 예고편에서 보여 준 분위기 말고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보러 가자고 한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러 가서 혹시나 예고편과 다른 느낌으로 전개되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다행히 아내도 재미있게 봤다. 둘이 같이 본 첫 영화라서 더 재미있었다고 한다.
"미아라(2017)"을 관람한 지 두 달 후 "애나벨: 인형의 주인"이 개봉했다. OTT로 "컨저링1"과 "컨저링2", "애나벨(2014)"를 재미있게 봤던 우리는 이번 애나벨도 한번 보자고 했다. 그런데 극장에서 공포영화를 보는 건 둘다 처음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보러 갈 생각조차 안했을 거라고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도 내가 같이 있으니 본다고 했다. 예매를 하면서도 우리가 과연 극장에서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도전하는 마음으로 보기로 했다. 입구에서 티켓을 보여주고 좌석을 찾는데 좌석 모양이 평소와 좀 달랐다. 보통은 의자가 바닥에 붙어 있는데 이 의자는 바닥과 조금 떨어져 있으면서 발판이 따로 있었다. 아차 싶어 티켓을 다시 확인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상영 시간만 맟춘다고 4D관인지 아닌지 확인하지 못한 채 예매한 것이었다. 어쩐지 티켓값이 다른 때보다 비싸다 싶었다. 공포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본다는 사실에 설렌 나머지, 평소와 가격이 다르다는 점에는 전혀 신경쓰지 못했다. 곧바로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약간 당황한 듯 했지만 이미 예매했고 본인은 4D관이 처음이라 더 새로울 것 같다고 답했다. 이윽고 영화가 시작됐다. 극장에서 처음 본 공포영화를 그것도 4D관에서 본 우리에게 "애나벨: 인형의 주인"은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이후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극장에서 영화보는 건 어려웠다. 대신 저녁에 아이들을 재우고 둘이서 맥주 한 잔 하며 TV로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생겼다. 나도 그렇지만 아내도 결혼 전에는 드라마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아내는 나보다 더 없었다. 우리가 연애할 때 한창 "도깨비"가 방영 중이었다. 어머니가 "도깨비"를 엄청 재미있게 보셔서 나도 옆에서 가끔 봤다. 볼수록 재미있었다. "도깨비"에서 롱코트를 입고 나오는 걸 보고 주제넘게 나도 하나 사서 입었다. 그전까지는 롱코트에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아내는 내가 말해주기 전까지 "도깨비"의 존재와 인기를 실감하지 못했다. 결혼 후 우연히 "도깨비"가 재방송되는 걸 보고서야 아내는 "도깨비"에 완전히 빠졌다. 그리고 드라마의 재미도 알게 되었다.
아내는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나 영화를 잘 보지 않았지만, 보게 되면 멜로물이나 로맨틱코미디를 봤다고 했다. 나를 만나면서 공포나 미스터리 분위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그동안은 혼자서는 볼 수 없었지만 나와 함께 보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한다. 나는 반대로 혼자서는 멜로물이나 로맨틱코미디 장르는 절대로 보지 않았다. 뭔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걸 혼자 본다고 생각하니 낯간지럽기도 했고 흥미도 없었다.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어느새 드라마의 재미에 빠진 아내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옆에서 같이 보고 있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면서 아내와 같이 보게 된 멜로드라마는 미혼일 때와 다르게 다가온다. 이전에는 두 주인공의 사랑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면, 지금은 주인공들의 부모의 시점에서 보게 된다. 아내는 주인공들의 풋풋한 사랑에 몰입하며 본인의 20대 시절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엄마의 마음으로 둘을 본다. 아내는 드라마를 보고 나면 언제나 나에게 전개 상황을 알려준다. 같이 보자고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내가 같이 보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내가 설명해주는 내용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긴다. 왜 그렇게 재미있게 보는지 궁금해진다. 아내가 보고 있을 때 스리슬쩍 옆에서 본다. 중간부터 봐도 아내가 설명해 준 내용들이 떠올라서 금방 흐름을 따라간다. 곧이어 인물 간의 관계나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진행 상황을 내가 더 관심있게 본다. 대사 하나라도 놓치면 그 맛이 살지 않아 아내보다 더 집중해서 본다. 그리고는 어느새 아내보다 더 다음화를 기다리게 된다.
예전에는 혼자서 보는 걸 즐겼다면 지금은 아내없이 보는 모든 영화나 드라마는 재미가 없다. 좋아했던 SF나 액션 스릴러 장르는 혼자 천국의계단이나 런닝머신을 탈 때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본다. 운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아내와 함께 본다. 그래야 재미있다. 아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가 가장 재미있고 내용도 더 와닿는다. 아내의 취향이 이제 나의 취향이다. 지금 아내와 재미있게 보고 있는 금토드라마가 보고 싶어서 금요일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