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5일 목요일
12월은 설렘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달이다. 벌써 한 해가 저문다는 게 아쉬움을 주지만, 그보다는 설렘이 아직 더 크다. 12월을 설레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는 딱 하루뿐이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기간이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12월 전체가 크리스마스 같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께서 어떤 선물을 주실까 기대하느라 설렜다. 부모님이 선물을 주신다는 걸, 다시 말해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사실은 유치원 때 알았다. 부모님께서 선물을 몰래 놓아두는 현장을 목격한 건 아니다. 유치원에서 배웠다. 배웠다고 표현한 건 수업 중에 들어서다.
나와 동생은 노틀담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을 다녔다. 내가 6살이었던 해의 겨울, 수녀님께서 선행에 대해 얘기해 주셨다. "특히 겨울은 춥기 때문에 어려운 이웃들이 더 힘들다, 이럴 때일수록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 여러분이 잘 아는 산타클로스는 사실 선행을 베푸는 인물이다, 산타클로스의 유래는 성(聖) 니콜라스라는 사람이다, 여러분도 성인(聖人)의 뜻을 본받아 따뜻함을 나누는 어린이들이 되길 바란다"라는 식으로 설명하셔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겼다. 선물을 주는 사람이 부모님이라는 걸 알게 되니, 부모님 말씀을 더 잘 들으면 크리스마스에 더 좋은 선물을 받을 수 있겠구나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당시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내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고 지난해보다 더 크고 좋은 선물을 받는 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부모님께서 크리스마스에 작은 선물이라도 꼭 주셨다. 그러기 위해서 생일 선물은 포기해야 했지만, 크리스마스에 받는다는 자체만으로 기분이 더 좋았다. 생일 때 받는 것보다 크리스마스에 받는 게 왠지 모르게 더 큰 행복감을 줬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크리스마스 하면 선물이 당연한 것처럼 떠올랐지만, 중학생이 되어서는 크리스마스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선물은 주로 레고를 (큰 상자 아니고 작은 상자 위주로) 받았는데, 중학생부터는 공부에 매진하느라 가지고 놀 시간도 흥미도 없어서 관심이 없어졌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는 그저 하나의 휴일이다 라고 여길 때쯤, 선물에 다시 신경을 쓰게 된 건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였다.
선물이라는 건 받을 때보다 줄 때 더 신경이 쓰이고 동시에 더 설렌다는 걸 이때 알았다. 그리고 산타클로스의 무게는 부모가 되어서야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산타클로스의 무게는 부모로서의 무게였다. 아이들이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었던 작년까지는, 평소에 무엇을 받고 싶어 하는지 아이들이 눈치채지 않게 슬쩍 물어봤다. 한 번 물어봐서는 안 된다. 간격을 두고 여러 번 확인해야 한다. 어제는 이걸 받고 싶어 했다가 오늘은 저걸 원한다는 등 수차례 바뀐 끝에 확정이 되면, 아이들에게 아빠가 산타할아버지에게 전해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는 마음 바뀌면 안 돼, 여기서 바꾸면 올해는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 못 받아"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한 번 더 확답을 받는다. 확답을 받으면 몰래 선물을 준비한다. 준비한 선물은 차 트렁크에 놔둔다. 집에 숨기면 혹시라도 들킬 염려가 있어서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가 오는 걸 보고 싶어서 늦게 자자고 늘 말하지만, 너희들이 자고 있지 않으면 산타할아버지는 못 오신다고 하고 일찍 재운다. 아이들이 깊게 잠든 걸 확인하면, 조용히 차에 가서 선물을 가지고 온다. 여기서부터 중요하다. 매해 선물을 놔두는 위치를 바꾼다. 잠결에 깨서 일찍 선물을 발견하길 바랐을 때 또는 선물의 크기가 크지 않을 때는 침대 머리맡이나 발밑에 뒀다. 로봇 세트나 공주의 화장대처럼 선물이 크거나 할 때는 상자에 장식을 덧대어 거실에 놔둔다.
나와 아내는 아이들이 잠들고 선물을 놔둬야 해서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늘 자정을 넘기고 잠들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면 아이들보다 먼저 눈이 떠진다. 아이들이 선물을 발견했을 때의 그 반응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어제는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선물이 생겨서 눈이 휘둥그레지고 기뻐하는 모습이 나와 아내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아이들의 확답을 얻었음에도 혹시 준비한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쩌나, 열심히 마련한 선물을 미리 들키면 어떻게 하나, 선물을 놓기 전에 아이들이 깨버리면 어쩌지 등 노심초사하던 시간들이 보상받는 기분이다. 아이들이 산타할아버지가 준 것으로 알아서 더 행복해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올해에는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서 (첫째는 9살, 둘째는 7살이다) 산타할아버지가 사실은 엄마 아빠였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돼서, 몰래 준비하는 수고(?)는 덜었다. 가지고 싶어 하는 걸 물어보기도 전에 수시로 명확하게 얘기해 줘서 오히려 편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선물을 받고 기뻐해서 정말 다행이다. 아이들이 두 달 전부터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을 확실하게 말했지만, 마트와 백화점에 하필 해당 물품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려고 해도 크리스마스 이후에 받을 수 있었다. 겨우 준비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줬을 때의 긴장감이란, 마치 선생님 앞에서 숙제를 검사받는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방방 뛰며 기뻐하는 모습을 봤을 때는 합격을 통보받은 오디션 참가자의 마음 같았다.
아이들이 더 이상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지만, 내가 감당할 산타클로스의 무게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아니, 오래 이어가고 싶다. 아이들의 선물을 준비할 때 그 설렘이 좋다. 아빠로서 아이들이 원하는 기대감을 충족시켜 줄 때 그 만족감이 좋다. 아빠에게 아직 바라는 게 있다는 사실이 좋다. 이런 무게감이라면 평생 감당해도 좋다. 산타클로스의 무게는 부모로서의 무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