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지리산이 가장 아름답고 좋다.(1)

2026년 1월 14일 수요일

by 지우진

지리산을 주제로 다섯 편의 글을 발행했다. 《같은 곳을 여행가도 늘 설레는 이유가 있다》를 시작으로 《사계절을 모두 즐기고 싶은 곳, 지리산》이라는 제목으로 네 편의 글을 썼다. 지리산에 다녀와서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을 잊지 않으려고 썼다. 봄의 끝자락에서, 여름의 한가운데서, 가을 단풍 속에서 즐겼던 지리산을 떠올리며 글로 옮겼다. 글을 쓰면서 눈이 내린 겨울 지리산도 꼭 볼 수 있기를 소망했다. 간절히 소망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겨울 지리산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눈이 내린 겨울 지리산을 간절히 소망한 이유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눈을 본 적이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부산에 오기 전까지는 눈을 자주 봤다. 인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때, 강원도 고성에서 군 생활을 했을 때(이때 본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로 다가와서 좋은 기억은 아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편입과 공무원 준비를 할 때 종종 봤다.


눈은 비가 올 때 느끼는 감성과 다른 자극을 준다.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울적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눈이 오는 걸 보면 괜스레 가슴이 울렁거리고 설렌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거리를 보면 포근함과 동시에 정화되는 기분도 든다. 누구의 발자국도 보이지 않는 눈 위를 내가 처음으로 밟을 때 들리는 뽀드득 소리는 웬만한 ASMR 못지않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또한 눈은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눈이 오면 아이처럼 놀고 싶다. 어렸을 때 눈이 발목까지 쌓여서 신발이 다 젖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놀았던 기억이 있다. 눈싸움은 기본이고 눈사람도 여럿 만들었다. 모래성을 쌓듯 눈으로 성을 쌓기도 했다.


내가 눈을 보고 느꼈던 감정을 우리 아이들과 아내와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산에 와서 아내와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눈이 오는 걸 본 적이 없다. 부산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눈이 잠깐 흩날리기만 해도 폭설이라고 할 정도로 눈이 정말 오지 않는다. 그래도 2000년대 초반에는 가끔이라도 왔었다. 하지만 2017년에 결혼해서 첫째와 둘째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부산에서 눈을 본 적이 없다. 부산의 지리적 특성상 눈이 오지 않는 게 다행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살짝 아쉽다. 아이들에게 눈을 보여주고 싶어서 눈썰매장을 간 적이 한 번 있었지만, 그곳에서 본 것은 눈이라기보다는 얼음에 가까웠다. 날씨마저 맑았었기 때문에 투명하게 반사되기까지 했다. 아이들과 나와 아내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강원도까지 갈까 생각도 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3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는 아직 힘들었다. 눈만 볼 마음으로 아무 곳이나 찾아서 가기에는 무모했다.




지리산에서 눈을 보기로 마음먹은 건 2025년 11월 14일부터 16일까지 2박 3일로 가을 지리산을 즐기러 갔을 때다. 지리산에 가면 늘 머무는 펜션이 있다. 자주 가서 사장님네 부부와 친해졌다. 우리가 지리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에 사장님네 부부도 한몫했다. 사장님네의 친절함과 세심함 덕분에 이곳에 머물 때마다 매우 만족하고 온다. 무엇보다 대화도 잘 통한다. 대화를 하다 보면 지리산에 대한 사장님의 애정이 물씬 느껴져서, 덩달아 우리도 지리산의 매력에 더욱 빠져든다.


그날도 단풍으로 물든 지리산을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지리산은 가을이었지만 바람은 제법 쌀쌀했다. "겨울이면 지금과 비교도 안되게 훨씬 더 춥겠죠?"라고 내가 물었다. 사장님께서는 추위도 추위지만 눈도 어마어마하게 온다고 답하셨다. 솔깃했다. 매년 눈이 오냐고 다시 물으니, 그렇다고 하셨다. 속으로 '됐다' 싶었다. 동시에 가장 중요한 걸 여쭤봤다. 제설 여부였다. 여기 펜션은 지리산 안쪽에 위치해있다. 그래서 이곳까지 오는 길이 꽤 구불구불하다. 따라서 제설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온다면, 현지인이 아닌 이상 스노체인을 하더라도 상당히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제설은 즉각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곳으로 오는 길이 여기 하나뿐이라서 시에서 최우선적으로 제설 차량을 보내 작업을 한다고 알려주셨다. 그 길에서 펜션으로 이어지는 골목은 사장님과 더불어 주변에 있는 다른 펜션 사장님들이 넉가래 등 제설삽으로 직접 치우신다고 덧붙이셨다.




제설 여부까지 확인하고, 나와 아내는 곧바로 겨울 지리산 여행을 계획했다. 눈이 내린 지리산을 보기 위해서는 여러 상황이 들어맞아야 했다. 고려 사항은 나와 아내의 휴무일, 우리 아이들의 학교 및 유치원 일정 그리고 그때의 기상 상황이었다. 날씨가 가장 중요했다. 우리들의 쉬는 날이 맞춰지더라도 그날 눈이 온다는 예보가 없으면 도로아미타불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한 달이 넘도록 우리는 틈틈이 날씨를 확인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산의 날씨보다 지리산의 날씨를 먼저 살필 정도였다. 하지만 지리산의 날씨는 늘 맑음이었다. 눈은 고사하고 흐린 날조차 드물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를 포함해서 24일부터 27일까지 드디어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그러나 그 기간에는 아내와 첫째가 일과 학교를 빠질 수 없어서 아쉽게도 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와 아내는 포기하지 않았다. 왠지 이번 겨울에 보지 못하면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았다. 1년을 다시 기다리기에는 너무 길었다. 새해가 되어서도 우리는 계속 살폈다. 우리가 원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1월 둘째 주 안에 눈이 오는 것이었다. 무리해서 쉬는 날을 빼거나 하지 않으려면 첫째가 다니는 학교와 둘째가 다니는 유치원의 방학이 겹치는 시기여야 하는데, 마지노선이 그때였다. 나와 아내는 그 기간 안에 휴무일을 확보해 놓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맑음이 지속되는 일기예보뿐이었다. 이대로라면 눈이 내리는 지리산은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지극히 정성을 다하면 하늘에 닿는다고 했던가. 우리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2026년 1월 2일 금요일 주간 예보에 그다음 주인 9일부터 11일 일요일 사이에 눈이 온다는 예보가 나왔다! 예보는 바뀔 수 있었지만, 우리는 이날에 맞춰 방을 예약하고 계획을 세웠다. 예보가 바뀌면 수수료를 내더라도 취소하고 다시 준비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8일 목요일에도 예보는 그대로였다. 우리는 절반의 안도와 절반의 불안함을 간직한 채 9일 아침에 지리산으로 출발했다.

20260109_150154.jpg 9일에 도착했을 때 지리산의 날씨. 계곡은 얼었지만 햇빛은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이렇게 맑은데 과연 다음날 눈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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