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칭찬 받을만한 '예쁨'을 잃어버린 때부터 공부했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쁘다는 말만으로는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할 때부터였다. 그 시절 나이에 ‘예쁨’ 대신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공부 잘한다’였으니까. 솔직히 초등학교때까지는 공부를 한 기억이 없다. 수업시간에 선생님한테 이뻐보일라고 맨 앞줄에 앉았고 안 졸고 눈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칭찬 받으니까. 그러다보니 반에서 2~3등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가 되니 달랐다. 중1에 친 첫 중간고사는 생전 처음보는 등수였고(아마 반에서 중간쯤으로 기억한다.) 매우 충격이었다. 그 등수로는 아무에게도 칭찬받을 수 없다는 걸, 단번에 알았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예쁨’은 노력으로 유지되지 않지만 ‘공부’는 노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나는 칭찬을 잃는 게 무서웠고, 그 빈자리를 공부로 채워 넣었다. 반에서 1등한 친구가 우연히 옆 아파트였다. 하교길에 그친구에게 물어보니 매일 도서관에가서 복습을 한다더라. 나도 따라갔다. 그때부터였다. 그 친구랑 매일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가서 자든, 딴짓을 하든, 일단 도서관이 다녀오면 엄마아빠가 잘했다고 해주니까 그게 좋아서였다. 시험기간에는 도서관 문 여는 시간에 맞춰서 자리 잡으러도 갔다. (아빠나 엄마가 몰래 자리 잡아 준 적도 많다.) 그렇게 해서 가장 잘 나온 등수가 중학교때 전교 3등이었다.(민주야 고마워) 뿌듯했고 칭찬은 당연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칭찬을 잃지 않기 위해’ 공부했다. 고1 봄, 전국모의고사를 치르기 전이었다. 고2의 양아치? 언니들이 와서 이쁜애들을 데려갔고 나도 몇번 끌려갔으나 나는 공부한다 했다. 3월 전국 모의고사를 치고 등수가 나오자 날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냥 공부하는 애였다. 고 3때는 오로지 수학 만했다. 다른과목 성적이 안좋아도 수학만했다. 이유는 수학만큼은 전교 1등인 친구보다도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전교 1등 과 난 한 반이었고 수학 시간마다 수학 선생님은 나와 전교1등을 비교했다. 아마 그 친구를 자극해서 더 공부하기 위함이었겠지만 난 그게 내 칭찬인줄 알았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공부를 좋아했던 게 아니다. 그저 칭찬을 잃지 않으려는 법을 배워왔던 것 같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 연료였고, 박수가 멈추면 나는 설 자리를 잃었다.
그렇게 나는 ‘주목받는 방법’만 계속 바꿔가며 같은 자리에서 서 있던 아이였다.
그때의 나는 세상의 중심에 서 있던 게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