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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필리아 Jun 19. 2021

정신병 엄마와의 거리두기

마음에서 엄마와의 거리가 내겐 필요해!

우리 엄마가 조현병을 진단받은지도 39년이다. 내년이면 40년이 된다.

아직 내 나이가 40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엄마를 바라보면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채 살아갔을 엄마의 인생이 요즘따라 더 불쌍하게 느껴진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 곁에 왔고 그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의 삶은 많이 변했다.

지난 10년간 믿고 의지하며 다니던 교회도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엄마는  곳이 없어졌다. 그나마 사람을 만나고 위로를 받던 공간조차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몸이 아파서 종합병원이라고  정도로 병원만 줄기차게 다녔다. 물론  병원도 혼자 가지 못해 아버지가 매번 같이 갔다.

아버지도 벌써 7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자기 몸도 이제는 힘들 때인데, 엄마까지 챙기니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다.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래


나는 결혼을 하고 그나마 엄마와의 거리두기가 가능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엄마의 아픈 모습을 매번 목격하지 않아도 된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아픈 목소리를 며칠에 한 번씩 들을 뿐이다. 엄마가 아프다는 건 굳이 엄마와의 통화를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의 통화를 통해서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아빠의 목소리톤에 따라 엄마가 괜찮은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한편으로는 너무 미안하다. 내 인생을 위해 나도 나의 행복을 찾기 위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아빠 혼자에게 짐을 떠넘긴 것 같다.


아빠와 나는 엄마의 증상이 정말 심할 때에는 정신병원에 한두 달 입원시키곤 했다. 그렇게 퇴원 후 돌아오면 엄마가 이전보다 좀 괜찮아지고 진정되었기 때문에 정신병원에 가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병원비에 대한 부담으로 오랜 시간 입원시키지는 못했다.


아가씨 때만 해도 이런 엄마를 외면했다. 어차피 아프고 방법이 없다면 차라리 나도 내 인생을 즐기자!라는 생각으로 가족보다 주변관계를 더 소중히 여길 때가 있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난 뒤 나도 엄마가 되었다.


엄마라는 위치와 역할이 주어지니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겠다. 그제야 엄마는 엄마대로 최선을 다해 우리 가족을 대해왔고, 나름 조현병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는 노력을 했을 거라 생각된다.


우리 엄마는 똑같은 엄마인데 엄마의 오락가락 조현병 증상이 우리 가족을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게 만든다. 예전에 조현병 증상이 나타났을 때와는 다르게 엄마의 증상이 더 고약해졌다. 치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기 생각 속에 자기를 가둬두고 그것이 사실인 양 혼자 말을 정말 많이 한다.


"옷이 빨간색 입어서 그런 거 아니가?"
"니 왜 회색옷 입니? 스님 색이다. 싫다"
"아빠가 오늘 나가서 내가 아프다"


나중에 엄마의 모습이 그리울때가 있겠지


사실 이 정도는 약한 정도의 증상인데 남 탓을 많이 하거나 또는 옷, 색, 인종 등 다양한 상황이 엄마를 순간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 그냥 넘길 수 있는 일도 엄마에겐 그냥 넘기지 못하는 일이 되다 보니 내가 임신했을 때도, 결혼했을 때도 모든 순간이 조심스럽고 말을 하는 게 힘이 든다.


출산 후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에는 너무 벅차고 이 기쁜 사실을 말하고 싶은데 이 소식조차 말을 했다가는 엄마가 온갖 망상에 시달릴까 봐 바로 말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기쁜 소식도, 슬픈 소식도 엄마에게는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엄마와의 일정한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아빠는 엄마와 있으면 뉴스를 절대 보지 않고, 나 역시도 평범한 일상 밥 먹었는지 아이와 무엇을 했는지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면 딱히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게 엄마를 위한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이것이 정답인지는 모르지만 엄마에게 오는 자극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조현병이라는 단어가 적응될 법도 한데 사실 온전히 내 가족이 조현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싫다. 내 마음에서 늘 평범한 가족, 그냥 보통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어떤 바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글을 쓰다보니 엄마를 나는 사랑하는걸까?


본의 아니게 우리 엄마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니 남들과 비교하게 되고 내 자존감 역시도 바닥이 되었다. 가족에서 주는 평안함이 없다 보니 집은 어느새 휴식이 아닌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초가집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내가 가족을 이루면 아이에게 내가 받지 못했던 평안함을 주고 싶었다. 우리 엄마에게서 받지 못했던 그런 따뜻한 감정과 공감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엄마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 중이다.


내가 외동이라서 엄마가 더 아프면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내 삶에 지금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내 마음을 더 단련하고 스스로를 이겨내고 싶다. 지금의 마음공부들은 이후 늙고 아픈 엄마를 받아들일 충분한 마음의 그릇을 넓히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만 아마도 엄마와의 거리두기는 계속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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