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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필리아 Jul 31. 2021

남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은 왜 일어날까?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 정말 중요해!

지구 오필리아를 운영한 지 햇수로 3년 차이고, 이제 어느 정도 영향력도 생기고 본격 환경교육도 들으며 소소하지만 작게 강의도 한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아직 낯설고 익숙지 않지만 분명한 건 많은 사람들에게 환경의 심각성을 전달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나누고 싶다.


나는 환경활동을 하면서 인스타를 많이 한다. 환경 관련 관심 있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내 피드에 있다 보니 여러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분들이 나보다 큰 영향력으로 이곳 #환경 분야에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올바른 분리배출, 환경 관련 상식 등 나보다 훨씬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남들보다 더 잘해야지! 더 열심히! 이런 생각이 올라온다. 언뜻 보면 열심히 한다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이 깔려있다는 것!


나를 기준으로 위아래로 나누는 비교의식이 현재의 나를 가둬둔다. 지구 오필리아로써 눈에 보이는 결과를 가져오니 더 열심히 하게 되고 '나는 계속 잘해야 해!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해! 뒤로 가지 말아야 해!'라는 마음을 낸다. 이는 나 자신을 볼 때 내가 굉장히 특별한 사람,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로 인식한다. 즉 남보다 특별하지 않을 때, 남들보다 못할 때 내 마음은 흔들린다.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 나 자신이 소중해 보인다가 정확하다.


그리고 최근 명상에 관심을 가지며 빌려온 책에 한 구절을 읽고 현재 내가 나를 놓지 못하고 집착하고 있었구나를 알았다.

이 책은 진짜 도움이 많이 되어요



#1일 1 명상 1 평온 P.185 중에서

만약 무리 중에 내가 똑똑하다는 걸 인정받으면 즐거울 거예요. 그러나 다른 데 갔을 때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있으면 상처 받겠지요. '내가 남보다 똑똑하다'라는 마음 때문에 나는 언제나 똑똑함에 관해서 매우 취약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나를 중심에 놓고 내세우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 사람을 그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나보다 똑똑한가 아닌가, 나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 내가 보기에 좋은가 싫은가라는 창으로 편집해 한껏 왜곡해서 보는 겁니다.


#1일 1 명상 1 평온 P.187 중에서

'나야 나'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나부터 가벼워져서 좋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사람을 만나면 자존심 상할 일도 적고, 일할 때 열중하기 좋아요.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본다, 내가 손해 봤다, 내가 더 잘났다, 내가 제일 잘 안다, 나는 못하다, 왜 이렇게 못할까' 같은 쓸데없는 감정적 소모가 줄어드니까요.


대화하면서도 계속 '나'에 집착하는 상태인 거지요. 그러면 자신도 상처 받고 남도 상처주기 쉬워요.

'나야 나'라고 하고 있을 때, '내가 나를 붙잡고 있구나'하면서 그 마음을 알아보고 내려놓았다면, 무척 잘한 겁니다. 자신에게 손뼉을 힘껏 쳐주셔도 좋아요. '나'를 내려놓으면 내가 존중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존재감이 미미해지진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과 달리 오히려 더 괜찮고 편안한 나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아니면 '도저히 이런 건 못 참겠어, 싫어!'라고 거부할 수도 있어요. 둘 다 괜찮아요.


나에게 훨씬 솔직해야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나에게 이런 마음이 있지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싫다는 거부감이 올라오면, 정확하게 '그렇구나'하고 알아채야 해요. 그걸 고치려고 하는데 왜 안되나 하고 바라보지 마세요. 그저 그 마음을 눈 감지 않고, 억누르지 않고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진보예요. 완벽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완벽하지 않은 존재인지 아는 것, 그걸 알 아단 가면 잘하고 있는 거예요.


'나'를 내려놓아도 나는 나이며, 나는 소중합니다. 그 사실엔 변함이 없어요.


나는 왜 이토록 나를 붙잡고 있었을까?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며 그 생각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을 붙들고 있었다. 조현병 엄마의 안 좋은 목소리에 내 마음도 덜컹, 우울한 감정이 들면서 끝없이 마음이 추락한다. 분명 늘 아픈 엄마인데도 그것을 바라볼 때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그런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리고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다른 엄마, 어려운 가정형편, 시험성적 늘 하위였던 나는 남들보다 열등감이 높은 편이다. 자존감 자체가 없고 남을 의식하는 게 많았다. 특히 어릴 적에는 엄마, 아빠 나이가 많았고 아픈 엄마가 있다 보니 '우리 엄마를 보고 아픈 것을 알아차리면 어쩌지? 나이 많은 부모님이 창피해'라는 조금은 철없는 생각들이 있었다. 어릴 적 환경이 그렇다 보니 남을 의식하는 일이 많아졌다.


7살 무렵 부모님이 이혼하고 할머니 집에서 오냐오냐 커서 어릴 적에는 자신감도 많았고 당당했다. 그러나 그 당당함도 오래가지 못했다. 곧 입시교육에 따른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성적표는 수우 미양 가중에서 가를 받았고, 내가 남들보다 못하는구나! 를 알았을 때의 상실감도 나름 컸었다.


나 기억으론 그때부터 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고, 아버지가 IMF 때 사업을 한다고 방앗간을 차렸다가 점점 가난의 길로 들어섰었다. 환경적으로 보면 어두웠지만 겉으론 밝게 잘 지냈다. 그러나 내 내면에서는 부모님의 정서적인 빈자리가 컸다. (칭찬을 거의 들어본 적 없이 자라왔음)


어릴 적 감정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되었고, 전공을 나왔어도 취업을 했어도 만족하지 못했다. 가령 대학교 때 상위권을 유지하며 시험성적 전국 2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나름 열심히 했는데, 취업 후 내가 공부 함께 하자고 다독이며 공부 못하던 그 친구가 취직을 잘해서 나보다 월급도 많이 받았다. 그렇게 타인의 잘 되는 것에 배 아파했다. 결혼을 하니 주변 내 친구들은 다 시집 잘 가서 잘 사는 친구들 보며 '두고 봐! 10년 뒤 너희들보다 내가 더 잘될 거야!'라는 생각도 했다. 나는 남들과 다르며 특별하다는 생각 하나로 그런 나를 놓아두지 못한 채 살아왔다. 어릴 적 느꼈던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은 성인이 되어도 이러한 형태로 나 스스로를 집착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결과 나는 늘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남들 놀 때 자격증 따고, 남들 놀 때 책을 읽고, 무엇인가를 배우며 움직였다. 그렇게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해야 내 마음이 놓이곤 했다.


집착하고 붙잡고 있던 나를 이제는 놓으려고 한다. 그동안 나는  감정을 부둥켜안은  마치 가슴속 한이  맺힌 사람처럼 살아왔다. 마음공부 유튜브 채널을 보고, 명상을 실천하면서 내가 사는 지금  순간순간 깨어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과거, 미래는 실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내 생각에 하나일 뿐이고 나는 오로지 지금 현재를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타자를 치고 있는 나를, 손가락을 움직이는 나를, 화면을 보고 있는 나를,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알아차린다.


집착 없이 흐르는 대로, 지금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살고 싶다.

조금은 내려놓으며 주어진대로 이 순간을 흘려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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