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차리는 것이 정말 중요해!
지구 오필리아를 운영한 지 햇수로 3년 차이고, 이제 어느 정도 영향력도 생기고 본격 환경교육도 들으며 소소하지만 작게 강의도 한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아직 낯설고 익숙지 않지만 분명한 건 많은 사람들에게 환경의 심각성을 전달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나누고 싶다.
나는 환경활동을 하면서 인스타를 많이 한다. 환경 관련 관심 있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내 피드에 있다 보니 여러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분들이 나보다 큰 영향력으로 이곳 #환경 분야에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올바른 분리배출, 환경 관련 상식 등 나보다 훨씬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남들보다 더 잘해야지! 더 열심히! 이런 생각이 올라온다. 언뜻 보면 열심히 한다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이 깔려있다는 것!
나를 기준으로 위아래로 나누는 비교의식이 현재의 나를 가둬둔다. 지구 오필리아로써 눈에 보이는 결과를 가져오니 더 열심히 하게 되고 '나는 계속 잘해야 해!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해! 뒤로 가지 말아야 해!'라는 마음을 낸다. 이는 나 자신을 볼 때 내가 굉장히 특별한 사람,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로 인식한다. 즉 남보다 특별하지 않을 때, 남들보다 못할 때 내 마음은 흔들린다.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 나 자신이 소중해 보인다가 정확하다.
그리고 최근 명상에 관심을 가지며 빌려온 책에 한 구절을 읽고 현재 내가 나를 놓지 못하고 집착하고 있었구나를 알았다.
#1일 1 명상 1 평온 P.185 중에서
만약 무리 중에 내가 똑똑하다는 걸 인정받으면 즐거울 거예요. 그러나 다른 데 갔을 때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있으면 상처 받겠지요. '내가 남보다 똑똑하다'라는 마음 때문에 나는 언제나 똑똑함에 관해서 매우 취약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나를 중심에 놓고 내세우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 사람을 그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나보다 똑똑한가 아닌가, 나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 내가 보기에 좋은가 싫은가라는 창으로 편집해 한껏 왜곡해서 보는 겁니다.
#1일 1 명상 1 평온 P.187 중에서
'나야 나'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나부터 가벼워져서 좋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사람을 만나면 자존심 상할 일도 적고, 일할 때 열중하기 좋아요.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본다, 내가 손해 봤다, 내가 더 잘났다, 내가 제일 잘 안다, 나는 못하다, 왜 이렇게 못할까' 같은 쓸데없는 감정적 소모가 줄어드니까요.
대화하면서도 계속 '나'에 집착하는 상태인 거지요. 그러면 자신도 상처 받고 남도 상처주기 쉬워요.
'나야 나'라고 하고 있을 때, '내가 나를 붙잡고 있구나'하면서 그 마음을 알아보고 내려놓았다면, 무척 잘한 겁니다. 자신에게 손뼉을 힘껏 쳐주셔도 좋아요. '나'를 내려놓으면 내가 존중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존재감이 미미해지진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과 달리 오히려 더 괜찮고 편안한 나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아니면 '도저히 이런 건 못 참겠어, 싫어!'라고 거부할 수도 있어요. 둘 다 괜찮아요.
나에게 훨씬 솔직해야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나에게 이런 마음이 있지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싫다는 거부감이 올라오면, 정확하게 '그렇구나'하고 알아채야 해요. 그걸 고치려고 하는데 왜 안되나 하고 바라보지 마세요. 그저 그 마음을 눈 감지 않고, 억누르지 않고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진보예요. 완벽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완벽하지 않은 존재인지 아는 것, 그걸 알 아단 가면 잘하고 있는 거예요.
'나'를 내려놓아도 나는 나이며, 나는 소중합니다. 그 사실엔 변함이 없어요.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며 그 생각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을 붙들고 있었다. 조현병 엄마의 안 좋은 목소리에 내 마음도 덜컹, 우울한 감정이 들면서 끝없이 마음이 추락한다. 분명 늘 아픈 엄마인데도 그것을 바라볼 때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그런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리고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다른 엄마, 어려운 가정형편, 시험성적 늘 하위였던 나는 남들보다 열등감이 높은 편이다. 자존감 자체가 없고 남을 의식하는 게 많았다. 특히 어릴 적에는 엄마, 아빠 나이가 많았고 아픈 엄마가 있다 보니 '우리 엄마를 보고 아픈 것을 알아차리면 어쩌지? 나이 많은 부모님이 창피해'라는 조금은 철없는 생각들이 있었다. 어릴 적 환경이 그렇다 보니 남을 의식하는 일이 많아졌다.
7살 무렵 부모님이 이혼하고 할머니 집에서 오냐오냐 커서 어릴 적에는 자신감도 많았고 당당했다. 그러나 그 당당함도 오래가지 못했다. 곧 입시교육에 따른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성적표는 수우 미양 가중에서 가를 받았고, 내가 남들보다 못하는구나! 를 알았을 때의 상실감도 나름 컸었다.
나 기억으론 그때부터 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고, 아버지가 IMF 때 사업을 한다고 방앗간을 차렸다가 점점 가난의 길로 들어섰었다. 환경적으로 보면 어두웠지만 겉으론 밝게 잘 지냈다. 그러나 내 내면에서는 부모님의 정서적인 빈자리가 컸다. (칭찬을 거의 들어본 적 없이 자라왔음)
어릴 적 감정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되었고, 전공을 나왔어도 취업을 했어도 만족하지 못했다. 가령 대학교 때 상위권을 유지하며 시험성적 전국 2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나름 열심히 했는데, 취업 후 내가 공부 함께 하자고 다독이며 공부 못하던 그 친구가 취직을 잘해서 나보다 월급도 많이 받았다. 그렇게 타인의 잘 되는 것에 배 아파했다. 결혼을 하니 주변 내 친구들은 다 시집 잘 가서 잘 사는 친구들 보며 '두고 봐! 10년 뒤 너희들보다 내가 더 잘될 거야!'라는 생각도 했다. 나는 남들과 다르며 특별하다는 생각 하나로 그런 나를 놓아두지 못한 채 살아왔다. 어릴 적 느꼈던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은 성인이 되어도 이러한 형태로 나 스스로를 집착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결과 나는 늘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남들 놀 때 자격증 따고, 남들 놀 때 책을 읽고, 무엇인가를 배우며 움직였다. 그렇게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해야 내 마음이 놓이곤 했다.
과거, 미래는 실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내 생각에 하나일 뿐이고 나는 오로지 지금 현재를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타자를 치고 있는 나를, 손가락을 움직이는 나를, 화면을 보고 있는 나를,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알아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