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입원이 답은 아니었다.
저번 주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입원한 엄마가 공중전화로 종종 안부전화가 온다. 그 번호를 외웠기에 엄마일 거라고 생각하고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는 엄마 목소리가 아닌 같은 병실 쓴다는 옆에 계신 아주머니였다.
이유인 즉, 엄마가 여기 와서 더 불안해하고 안 좋아지신 것 같다!
요양보호사도 이곳에는 없으니 밥도 잘 안 먹고 하는데, 차라리 보호사 있는 요양병원에 가는 게 안 났겠냐는 의견이었다.
사실 그러려니 했다. 아버지와 나의 결정도 너무 안 좋아져서 정신병원에 보낸 것이기에 엄마의 상태를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정신병원에서 정말 낫는다는 기대보다는 공격성이나 너무 많은 말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만 이라도 줄어들길 바랬다. 그런데 그곳에서 느끼는 불안이나 그 정도는 엄마가 늘 평소에도 가끔씩 심할 때 보이던 양상이라서 좋아지겠지 생각했다.
정신병원에서는 약물관리가 엄마의 상태에 따라 계속 들어가기 때문에 불안함이 진정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다음 주가 되어 또 그 아주머니가 전화가 왔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했는데 현재 엄마는 판단력이 흐리고 불안함이 많이 높으신 편이란다. 여기에 괴이한 생각들을 하고 해서 추가적인 임상심리검사도 진행했단다. 대부분 호전되거나 유지되는 편인데 엄마가 좀 특수한 케이스라고 안 좋을 때 퇴원하는 것보다 좀 더 입원해서 약물을 쓰고 있으니 지켜보자고 하신다.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안되니 엄마의 상태가 쉽게 파악되지 않지만 엄마랑 같은 병실 쓴다는 그 아주머니가 벌써 몇 번이나 나와 아빠에게 엄마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아주머니도 우울증이 있어 병원에 입원한 환자인데 그 사람 말을 100% 신뢰할 수는 없지만 퇴원시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아서 힘이 없는데, 밥을 누군가 먹이는 사람도 없고 불안함 호소하면 약물만 늘어나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자식이나 손자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엄마에게 오히려 답답함과 힘듬이 가중되었을 거다. 아빠와 내가 너무 힘들어서 엄마를 정신병원으로 보냈지만 진짜 우리는 매일매일 마음이 힘들었다. 안타깝고 짠하고 눈물이 났다.
하필 우리 엄마에게 이런 정신병이라니... 젠장
약 2달 가까이 정신병원 입원 후 퇴원한 엄마를 마주 했는데 한 10년은 늙어지셨다. 기존에 알약 3알 정도 되던 게 10알은 넘게 처방되어 있었고, 머리는 그새 하얗게 변했다. 허리는 제대로 피지 못해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고, 목소리는 기운이 하나도 없어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 었다.
이렇게 돼버린 엄마를 보니 엄마를 정신병원에 보내려 했던 것이 죄송한 마음이 등과 동시에 자식이 나 혼자인데 더 나이가 먹었을 때 이런 엄마를 요양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날 짓눌렀다.
그냥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내 삶의 패턴이 추후 부양할 엄마로 인해 바뀔 생각을 하니 내 걱정이 든다는 것에 내가 이기적인 것 같다. 진짜 엄마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걱정하는데서 오는 힘듬이었으니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엄마에게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몰입하고 하루를 주어진대로 열심히 살았을 때의 성취감과 코로나 시대에 그저 오늘 하루 아무 일 없음에 행복함을 느낀다.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온전히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근데 나는 엄마를 온전히 안아줄 포용력, 그릇은 아직 부족하다.
부모가 살아있음에 감사하라고 이야기하는데, 진짜 맨날 죽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기이한 사고로 걱정하는 엄마 볼 때 정말 이해가 안 되고 짐처럼 느껴진다.
코로나가 일상생활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그나마 다니시던 운동, 교회마저도 쉽지 않게 돼버렸다. 대화 상대가 끊기고 온전히 가족 외에 사람들과의 소통이 단절되니 엄마는 더 심해졌다.
더 심해져도 괜찮아. 나이가 들었잖아. 연세가 있으시고 오래 병을 앓았잖아?
라는 마음으로 엄마를 바라보면 내 마음이 편할까?
일상에서 너무나 열심히 살고 있는 나지만 그러는 데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픈 엄마의 유전을 그대로 물려받을 것 만 같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매일을 잘 보내려고 한다.
정신병원은 잠시 엄마를 맡기는 수준, 우리에겐 잠시의 휴식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