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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필리아 May 19. 2021

삶의 무게감 (feat.아버지)

조현병아내와 함께 한다는 건

삶의 무게감. (feat.아버지)     



나보다 먼저 삶을 살아온 아버지를 이제야 온전히 이해한다.

아버지의 삶의 무게감은 정말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웠겠지?     


일하러 가기 싫은 날도, 회사에서 다쳐온 날에도, 엄마가 여전히 아픈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감수하며 묵묵히 지난 세월 30년 넘게 가족을 지켜준 아버지에게 감사하다.


학창시절 저녁 무렵부터 엄마가 불안했다.

수업을 마치고 오는데 불도 다 꺼진 어두운 방안에 엄마는 손을 벌벌 떨며 일어나지도 앉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몸을 만져보니 파키슨 병처럼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질 않았다.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피부는 창백해지고 동공은 힘이 풀려있었고 그런 엄마를 안방으로 데려가 겨우 눕혔다.     

어두운 방에 불을 키고 엄마를 주물러주었다. 혈액순환이 되게끔 주물러 주는 게 최선의 조치였다. 조현병 환자에게 의외로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다는 것을 이 순간 깨닫는다.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따뜻한 밥은 고사하고 ‘우리 엄마 괜찮을까?’ 라는 걱정이 앞섰던 그때, 나는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좋았다.    

 

집에 있으면 엄마가 괜찮은지 눈치를 보았고, 그런 상황은 일상이었다.     


아버지 역시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출근하고 돌아와서 쉬고 싶고 아내가 해주는 맛난 밥을 먹고 싶었을 텐데, 제대로 된 반찬가지 수 없이 식사를 하곤 했다.


기억에 나는 장면은 마른멸치와 고추장, 밥과 함께 먹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께서 회사에서 점심은 제공되지 않아 도시락을 싸가야 했던 적이 있는데, 반찬가게에서 몇 개의 반찬을 사오거나 멸치볶음과 밥으로 도시락을 들고 간적도 있다. 그 당시에는 그러는가보다 했는데 혼자 도시락을 싸가고 했을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짠한 장면이다.     


34살, 이 나이가 되어 자식을 낳고 부모를 보니 부모심정을 알겠다.


30년을 넘게 다르게 살아온 부부가 만나 삶을 산다는 것. 

굉장히 많은 것을 인내하고 맞춰나가고 이해하고 양보하는 삶의 반복이다.

그런 맞춤 속에 아픈 엄마와 함께 지난 세월을 살아낸 건 정말 기적같다.     


너는 언제 크냐며 “니가 대학생만 되면 이혼할거다.” “결혼하면 이혼할거다.”라는 말을 했었지만 사실 엄마와 아빠는 이미 한 번의 이혼을 거쳤다.     


부모님이 결혼 후 엄마의 병을 알고 아버지는 힘든 나날을 보내셨고 굿도 해보고 입원도 시켜보고 여러 시도를 했지만 호전되지 않은 정신병증상으로 결국 둘은 이혼했다. 그러나 이혼 2년이라는 시간의 공백과 그 사이 나라는 자식이 있어 다시 둘은 만났다.


사랑이 있어서라기보다 오로지 자식이 끈이었음을,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다시 만나 살지 않았다면 나는 할머니 밑에서 자라 시골촌뜨기가 따로 없었을 것이다. 대신 아버지의 인생은 지금보다 더 빛났겠지?      


솔직히 나는 하루라도 엄마가 아픈걸 보면 마음이 불안하고 이 집을 떠나고 싶었다.


희망과 꿈을 꾸고 앞을 나가는 나에게 엄마란 존재는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애써 외면했던 적도 많았고, 집에 와서도 내 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허나 외면하지 못했던 아빠는 엄마의 조현병증상과 마주해야했고, 괜찮아 지기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결혼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엄마의 증상을 마주하고 계신 아빠다.     

70살 아빠의 양쪽어깨에 얼마나 많은 삶의 무게가 들어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아버지 스스로 본인의 존재 자체에 집중했던 삶은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를 보면서 진짜 희생이 뭔지를 깨닫는다.      


지금이라도 훌훌 털어드리고 싶은 마음에 나의 책임감은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하다.

이제는 아버지와 그 짐을 함께 짊어지고 싶다.          



당신의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 되는지 쉽게 판단할 수 없어요.

그 어떤 말로도 아버지를 쉽게 위로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아요.

당신의 손을, 당신의 무게를 이제는 나누고 싶어요.

하나뿐인 내 편, 하나뿐인 딸에게 기대세요.

당신의 무게를 나누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함을 가지세요.

당신의 마음이, 당신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질 수 있게!


#아버지 #조현병 #조현병부인 #정신병부인 #정신병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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