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순간 살아가는 법을 배우다.
20대까지는 행복을 좇기 위해 살아왔는지 모른다.
행복을 정확히 무엇이다 정의하지 않았지만, 예전부터 '나는 언제 행복한가?'를 물어보면 난 바로 대답할 수 있다.
'가족이 함께 하하 호호 웃을 때'
'가족과 무언가를 함께 같이 할 때'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에 행복을 느꼈다. 가족과 같이 보내는 게 당연한 것 같지만, 내 어릴 적엔 그랬다.
엄마가 정신적으로 아프다 보니 일단 기본 아빠가 퇴근하고 오면 우울했고,
내가 나갔다 오면 우울했다.
집이 휴식처가 돼야 하는데 집이 불안하다.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집에 남아있는 음식을 혼자 먹었다.
멸치볶음에 밥을 먹고 있노라면 괜히 초라하게 느껴진다.
아무 이유 없이 슬퍼진다. 남들처럼 반찬탓 할 것도 없다.
가족이 같이 먹는 일이 드물다.
그러다 가끔 엄마가 괜찮으면 같이 밥을 먹거나 나로 인해 분위기가 유하게 풀릴 때가 있다.
그럼 그게 참 행복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결혼해서도 그런 행복을 소중하게 여겼다. 누군가 행복의 정의를 내렸을 때 와닿은 게 결국 행복은 행복의 크기가 아니라 행복의 빈도라고!
매일 이 행복을 느끼는 빈도가 많은 사람이 진짜 행복한 거라고,
나는 지금의 행복을 너무 지키고 싶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아이에게 내가 느끼지 못한 가족의 편안함과 엄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주고 싶었다.
처음 이혼을 결심했을 때는 이 정도까지 아니었는데, 막상 서류마저 정리되니 속이 시원함과 동시에 아이에게 굉장히 미안했다. 건강한 가족의 울타리를 지키지 못한 것 같아서.
그냥 내가 참고, 내가 마음을 내려놓고 살면 되는데 그게 참 싫었다.
몇 년간 불안하게 살아왔던 지난 시간을 지혜롭게 잘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오늘을 살아서다.
하루 글을 쓴다고 인생이 달라질 거 같아?
상품 한 개 더 올린다고 수익이 늘 것 같아?
인스타에 피드 하나 올린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정말 하루에 뭔가 하나 하는 건 인생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하루이다.
하지만 그게 쌓여서 하루, 한 달, 1년이 되니 내 인생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블로그강의를 할 수 있었고, 전혀 매출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상품에서 뜨문뜨문 주문이 들어왔다. 인스타는 팔로우수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여기서 오는 성취감과 행복도 나름 컸다.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꾸준히 한 번이라도 길게 해 봤냐?"
"그것도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 의지로 해봤냐?"
처음으로 나 스스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인데,
그것에 대한 힘이 커졌다는 건 내가 앞으로 살아나가는 힘이 커졌다는 걸 의미한다.
아이에게 늘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 있다. 근데, 지금 이 마음으로 내가 살아가면 그래도 아이가 잘 클 수 있을 것 같다. 엄마가 하는 걸 아이도 보고 자라니까!
아침에 눈뜨면 컴퓨터로 일하고, 아이들이 잠들면 컴퓨터로 일하고,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면 다시 일하고
물론 그중에 노는 날도 잠깐 쉼도 많지만 아이가 보는 나의 모습은 주로 일을 하는 엄마다.
집안에 풍경도 그간 많이 바뀌었다.
집에 오면 나 역시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 사람을 위해 밥을 차리는 시간은 없다.
그냥 내가 배부르니까, 점심때 많이 먹었으니까
내 아이들 밥만 신경 쓰면 된다.
가끔 유독 피곤하게 퇴근하고 돌아온 날도
'아, 신랑 오면 재활용시켜야겠다'
'남편 언제 오지? 빨리 와서 애들 씻기는 거라도 맡겨야 하는데..'
라는 괜한 기대감이 없어 좋다. 이전에는 늦게까지 일하는 신랑을 뭐 하나라도 더 시키려고, 뭐 하나라도 더 육아 같이 하려고 기다렸다. 근제 지금은 내가 안 하면 아무도 할 사람이 없다.
처음엔 모든 것들을 다 해내려니 정말 힘들었다.
괜히 벅차고 괜히 울컥하고 괜히 눈물이 났다.
특히 아이가 "아빠는 언제 와?"라는 아빠에 대한 언급을 할 때면 더욱 서글프게 느껴졌다.
내 마음이 왜 그렇게 서글펐나 생각해 보니 지금 이 모든 현실을 만든 건 내가 아니라 상대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다. 시간은 계속 간다.
하루하루 6살, 11개월 아이를 돌보다 보니 이제는 패턴이라는 게 생기고 이 하루에 적응이 된다.
에너지를 분배하며 하루를 보낸다. 나에게 있는 에너지는 한정적인데 그 에너지를 어떻게 써야 하루 길게 보낼 수 있을지 안다.
그래서 오히려 어린이집에 둘을 보내고 난 뒤에 몇 시간은 그냥 쉼이다.
그게 내가 충전이고, 그 시간에 오는 행복이 있거든.
하루를 꽉 꽉 채워 보내고 아이들까지 재우고 나면 하루에 감사하다.
'오늘도, 수고했어! 나 자신....... 오늘도 무사히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누울 수 있어 감사합니다.'
매일 듣는 유튜브채널이 있다.
"채환의 귓전명상, 하와이 대저택"
아침에는 하루의 잠재의식, 첫 시작을 잘해보기 위해 하와이대저택님을 듣고
저녁에는 마무리, 나의 무의식이 더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들으며 잔다.
이걸 매일 듣는 이유는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하고, 잘살아보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우는 거다.
내가 이전에 블로그에 매일 글을 적었듯이 귓전명상채널과 하와이대저택님의 영상을 매일 들으면
내 귀는 듣고 있지 않아도, 내 눈은 보고 있지 않아도 내 뇌는 듣고, 볼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을 때 내 잠재의식은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로워져 있고
지금 보다 더 안정되기를.
인생 살면서 느낀 것
"이혼했다고 큰일 안 난다" 생각보다 잘 살아진다.
"매일감사하다고 하면"감사할 일 정말 생긴다.(결국 습관이다)
"행복이란 기준을 정하지 말자"그럼 행복해야 해!라는 기준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일상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내 마음을 가장 잘 돌 볼 수 있는 사람은 나다" 결국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으며, 그것이 일어난 것을 계속 탓하는 삶이 아닌 그것을 계기로 더 성장, 나의 스토리를 가질 수 있다고 믿어야 앞으로 잘 걸어 나갈 수 있다.
"인생은 속도전이 아니라 방향이다" 빨리 가는 사람 보고 비교하거나 조급하지 말자. 내가 그랬다. 인스타에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 보며 어떻게 이렇게 잘됬을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가치 없게 느껴졌다. 근데 생각해 보면 사람이란 건 다 때가 있다. 무명배우 10년을 견디다 빵 터진 연예인들, 힘들게 살다가 장사로 대박 터진 사람들처럼 나에게도 결국 그때라는 게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속도보다는 결국 내가 그 방향으로 잘만 가고 있다면 나는 잘 될 사람이니까라고 생각하자!
많이 살고 적게 살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30년을 살더라도 하루를 잘 보냈다면, 그리고 꽉꽉 내 삶의 행복으로 채운다면 70년 불평불만 하며 살다 간 사람보다 훨씬 잘 산삶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 오늘 행복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