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나의 출퇴근길 습관

by 배은빈

2023.10.24.


이번 여름, 이상하게도 너무 힘이 들었다. 계속해서 무더워지는 여름이니,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니 여름에 힘든 것은 당연했지만, 여름 탓만 하기에는 뭔가 심상치 않았다. 매장 에어컨 아래에 있어도 마음 안에 뭔가에 대한 불만이 그득했으며, 때문에 자그마한 자극 하나에도 마음 안의 가시들이 일제히 곤두서기 일쑤였다. 서점 손님이 서점 직원에게 책에 대해 질문하는 당연한 일에도 짜증이 확 솟구치며 ‘책 하나 못 찾아서 나한테 질문까지 하나’하는 어이없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가 나 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하루하루가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는 우울증이 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난생 처음 들었다. 무엇인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문제가 인식되었으니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원인을 진단해야 할 것이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일단 시기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번 여름은 내가 서점에서 일을 시작한지 1년을 지나 맞이하는 계절이었다. 작년 6월 일을 시작해 올해 5월 말 1년 치의 연차정산까지 마무리한 시점이었다. 확실히 ‘1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새로운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꼭 부정적인 느낌만을 동반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새로운’ 시작이라는 느낌도 있었고, 1년을 지나온 것에 대한 대견한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1년, 또 그다음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았는데, 이것이 일종의 번아웃 같은 증상으로 이어진 것일까.

사실 내가 의심하는 더 주된 문제의 원인은 바로 이것이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바로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정기후원을 시작한 일이다. 사실 여성문제는 여성으로서 나도 언젠가는 다루어야 할 문제이면서 사실은 사회의 많은 문제들의 본질이나 핵심으로서 작용하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늘 있어왔다. 그러던 차에 여성이나 남성 이전에 이러한 고정적인 관념도 적용할 수 없는 소수자들이 있고(생물학적 성을 여성이나 남성으로 딱 떨어지게 정체화할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성이나 성적 지향이 고정적인 관념으로 존재한다는 데 문제의식을 더욱 품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 정기후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일이 생각지 못한 부작용을 가져온 것 같기도 하다. ‘퀴어운동’을 지지하는 일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고, 이러한 일을 돈으로 ‘후원’하는 것이 자칫 돈으로 나의 사회적 책임이나 의무를 치환하게 될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어떠한 일이나 단체에 ‘후원’을 한다는 것은 그 일의 필요성이나 정당성에 동의하고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재원을 바탕으로 단체가 지향하는 중요하고 필요한 일들을 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후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뒤에서 지지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인 참여와 지향을 동반할 때 더욱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단순히 매달 꼬박꼬박 후원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사회적 혹은 도덕적 우월성을 획득한 것으로 착각하게 될 위험도 없지 않다. 사회에서 지배적으로 존재하는 성 규범성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내는 후원금이 나에게 안이함과 (그 안이함에서 오는) 불만을 동시에 가져다줬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마음이 가지는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여름에 가졌던 부정적인 감정들의 원인을 특정하기란 쉽지 않고, 그나마 내가 추정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만약 그것들이 정말 원인이라고 하면 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그렇다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까, 정기후원도 중단해야 할까.). 내 마음을 내가 알 수 없어서일까, 일종의 해결책도 엉뚱한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나는 한강 다리를 건널 때면 하던 일을 중단하고 강을 다 건널 때까지 한강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다. 한강은 주로 전철을 타고 건너게 되는데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다가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가도 한강을 건널 때는 눈을 번쩍 뜨고,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돌려 그저 한강을 바라본다. 한강을 건넌다는 것은 그 이전 역에 도착하면 의식적으로 알게 되기도 하지만, 갑자기 승차감이 달라지고(특히 1호선은 더욱 그렇다.) 사방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며 본능적으로 알게 되기도 한다. 유난히 힘들었던 올여름의 어느 퇴근길, 그날도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아마도 전철을 타고 한강을 규칙적으로 건너기 시작한 대학생 때가 아니었을까.) 습관이 자연스럽게 발동되었는데 언제나처럼 한강은 흐르고 있었고 언제나처럼 한강은 아름다웠다. 출퇴근하는 일도 한없이 힘들기만 했던 그즈음이었지만 직장생활을 해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바로 매일 한강을 볼 수 있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 나는 언제나 한강을 좋아했지만, 언제나 좋아해서 다리를 건널 때는 꼭 고개를 들어 바라보곤 했지만, 그날따라 한강이 더욱 좋았다. 아니, 더욱 좋았다기보다 한강이 아니었으면 서울살이를 견뎌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졸업 후 취업을 하고 첫 직장을 뛰쳐나왔지만 또 다른 직장생활을 하며 어찌되었건 서울에서 먹고 사는 분투를 하고 있는 것이 다 한강 덕분에 가능했다는, 한강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 서울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을 비유해 젖줄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고도 표현하지만, 그날따라 그 표현들이 그저 진부한 수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피부에 와닿았다. 한강은 예부터 한반도의 백성들을 먹여 살려 왔지만, 지금여기의 나도 정말로 먹여 살리고 있었다.

어느덧 여름이 가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가을이 되어 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나 더 만들었다. 계정이름은 ‘han.gang.s’이다. 읽으면 한강스인데, ‘한강’의 사진‘들’이라는 뜻도 되고, subway에서 본 한강이라는 뜻도 된다. 그렇다. 나는 요즘 출퇴근길 차창 너머로 바라본 한강의 풍경들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던 습관을 뛰어넘어 사진으로까지 남기는 새로운 습관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강을 건넌 후 사라져버리는 풍경과 함께 내 마음까지 잡아둘 수가 있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맑은 날, 흐린 날, 출근길, 퇴근길, 여의도의 빌딩들, 노들섬 등 같은 듯 다른 풍경의 한강들이 고스란히 남았다. 그 안에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려는 나의 발걸음이, 그리고 글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한강을 따라 흐르고 흘러가던 나의 마음들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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