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출근 준비를 한다. 집을 나서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 열차에 오른다. 지하철을 바꿔 타고 한강을 건넌다. 덜컹덜컹. 한강철교에 진입한 열차의 진동이 느껴진다. 차창 너머 보이던 빌딩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물길과 하늘이 새롭게 펼쳐지며 사위가 밝아진다. 한강은 확실히 땅에서와는 다른,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을 준다. 한강을 다 건널 때까지 그저 너른 물길을 바라본다. 다시 열차는 땅 위를 달리고 나는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둔다. 강을 건너는 잠깐 동안이지만 푸른 에너지가 마음에 충전되었다.
검룡소에서 서해바다까지
한강은 서울의 중심을 가르며 유유히 흐르지만 당연히 처음부터 이렇게 큰 물길인 것도, 그 시작이 서울인 것도 아니다.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에 금대봉이라는 봉우리가 있다. 이곳에 있는 한 샘에서 물이 퐁퐁 솟아오르는데 이것이 바로 한강의 시작이다. 검룡소라 불리는 이 샘에서 출발하는 물길은 골지천이라는 이름으로 흐르다 정선에서 송천과 만나 더욱 큰 물길인 강이 된다. 조양강이 된 물길은 다시 동남천과 만나 동강으로 이름을 바꾼다. 동강은 영월에서 서강을 만나는데 이때부터 한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큰 강 한강은 단양, 충주, 여주 등을 지나 경기도 양평군의 양수리에서 가장 큰 한강 지류인 북한강과 머리를 맞댄다. 이후 팔당호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미사리를 지나 서울로 들어선 한강은 유유히 흐르며 파주에서 마지막 지류인 임진강을 만나 김포를 거쳐 강화해협을 통해 서해로 흘러들어간다. 이렇게 한강은 검룡소에서 시작해 한반도 중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서해와 만나며 총 길이 514km의 긴 여정을 마친다.
한반도의 허리에 두른 띠
한강은 그 길이나 유량을 따져 봤을 때 큰 강임에 틀림이 없지만 한반도의 중심을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 지리적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이러한 한강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한강의 옛 이름이 있다. 중국 위나라와 진나라 때의 지리지에 한강을 ‘대수(臺水)’라고 표기한 흔적이 있다. 이때의 ‘대’는 큰 대(大)가 아니라 띠 대(臺)이다. 한반도의 허리에 두른 띠 같다고 하여 ‘띠 대(臺)’를 쓴 것인데, 큰 대(大)도 한강과 잘 어울리는 표현이긴 하지만, 한반도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그 지정학적 특성을 잘 나타낸 글자가 띠 대(臺)라 생각된다. 이러한 한강의 옛 이름을 보고 있자니 토끼가 허리에 푸른 띠를 두른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난다.
아울러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운 역사적 사실들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삼국시대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 나라가 패권을 다퉜고 결국 한강 유역을 차지한 나라가 전성기를 구가하며 세력을 떨쳤다는 것이다. 한강이 한반도의 중심을 흐르니 세력을 키운 국가가 자연스레 한강 유역으로 진출해 세력을 떨치게 되었을 것이다. 익히 알다시피 삼국시대에 백제, 고구려, 신라의 순으로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으며, 신라가 결국에는 삼국을 통일하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한강 유역이 수도는 아니었지만, 남쪽의 수도 ‘남경’으로 불리며 개경 못지않게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조선시대 때에는 수도로 자리잡게 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반도의 중심을 흐르며 검룡소에서 서해까지 긴 여행을 이어가는 한강. 한반도의 중심을 차지하기 위해 옛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였고 결국 승자가 되어 위세를 떨치기도 했지만 그 힘을 영원토록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강은 그 모든 순간들을 지켜봐 왔겠지만 그 자신도 한 곳에 머무름이 없이 검룡소에서 서해까지, 그리고 바다에서 다시 빗물이 되기까지 계속되는 변화와 순환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열차를 타고 한강을 건너가고 한강을 건너오고 있다. 변함없는 일상이지만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나는 나의 시간이 위를 향하는 직선이 아니었으면 한다. 오히려 아래로 흐르는 강물 같았으면 한다.
만약 나의 시간이 한강과 같다면 지금 나는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을까. 이제 막 솟아나는 검룡소의 샘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골짜기를 흐르는 골지천일까. 아니면 송천과 만나 강은 되었을까. 강이 되었다면 조양강일까, 동강일까, 아니면 한강이 되었을까. 사실 이 모든 것은 어쩌면 소용없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골지천이니, 조양강이니, 한강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임의로 물길에 붙인 이름일 뿐, 정작 물길을 흐르는 강물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일테니 말이다. 이제 막 샘물로 솟아난 물이나, 골지천을 흐르는 물이나, 강을 따라 흘러가는 물이나 어느 곳에서든지 물은 그저 자기자신으로 존재하며 묵묵히 여행을 이어갈 뿐이다. 여행 중에도 바다에 닿기 위해 조바심을 내지도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바다에 닿을 것임을 알고, 바다에 닿은 후에도 다시 빗물이 되어 어느 곳에서든지 다시 강물이 될 테니 말이다.
나의 시간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언제든 어느 곳에서든 나의 여정을, 현재의 나로 존재하며, 그렇게 흘러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