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철교, 한강대교 그리고 노들섬
가을과 겨울이 지나갔다. 두 계절이 지나는 동안 나는 무사히 직장에서 잘 버텼고, 출퇴근길 차창 너머로 바라본 한강의 풍경 사진들도 어느덧 100장 넘게 쌓이게 되었다. 이 사진들을 바라보며 (엄밀한 의미로서는 아닐지라도) 유형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였지만, 어쩌면 나에게는 사진 그 자체보다도 행위예술로서의 개념이 차라리 더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였다. 행위‘예술’이라는 개념이 너무 거창하다면 그냥 습관이거나 강박이거나 집착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저러하게 마음을 다치고 회복하였다.
봄에는 한 가지를 더 해보고자 한다. 차창 너머로 바라보던 한강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다. 쉬는 날 산책 삼아 한강의 물결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숨 쉬어 보는 것이다. 한나절이면 충분하리라.
지하철 1호선이 건너는 한강철교
지하철 1호선이 한강을 건너는 다리가 바로 한강철교이다. 노량진에서 용산으로, 용산에서 노량진으로 1호선 열차가 한강을 건넌다. 전철을 타고 한강철교를 건너다보면 전철뿐만 아니라 KTX도 함께 건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기차는 용산역이나 서울역으로 진입하는 것이거나 그곳에서 남쪽으로 떠나는 것일 테다.
한강철교는 한강에 최초로 세워진 다리이다. 1896년 경인철도 부설권을 취득한 미국인 모스가 1897년 착공하여 1900년에 준공하였다. 당시 재미있는 홍보문구가 눈에 띄는데 다리를 가리켜 ‘마치 길이 3000척의 긴 무지개가 하늘에 걸린 것 같다.’라며 선전하였다 한다. 지금도 다리의 전체 모습을 조망하면 무언가 새로운 느낌이 환기되곤 하는데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 한강철교는 얼마나 놀라웠을지 짐작이 된다.
한강철교와 나란한 한강대교, 그리고 노들섬
한강철교는 열차만이 건널 수 있는 다리이다. 한강철교보다 상류 쪽에 한강철교와 나란히 한강대교가 서 있는데 이 한강대교는 또 1917년 최초로 건설된, 사람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한강다리이다. ‘한나절, 한강’의 첫 번째 행선지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한강대교에 직접 가보려면 지하철 9호선을 타야 한다. 9호선 노들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바로 한강대교에 당도할 수 있다(북쪽에서 내려오려면 1호선 용산역이나 4호선 신용산역을 이용할 수도 있다). 사실 한강다리를 직접 걸어서 건너는 일은 많지 않은 듯하다. 대개 차량으로 건너거나 내가 출퇴근할 때처럼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건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한강대교를 걸어서 건너는데 사실 조금 무서웠다. 특히 버스나 큰 트럭이 지나갈 때 생기는 진동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사진을 찍고 싶어서 잠시 한눈을 팔았는데 순간 어찔할 정도였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걸음을 옮겼는데 다행히 다리의 절반만 걸으면 되었다. 한강대교는 특이하게도 중간에 노들섬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들섬에 도착하니 버스 정류장이 눈에 띈다. 돌아갈 때는 직접 다리를 건너지 않고 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돌아갈 때 확인하니 집으로 가는 직행 노선이 없어서 다시 한 번 다리를 건너야 했다.).
9호선 노들역에서 한강대교로 가는 길
한강대교를 건널 때 조금은 무서웠다.
한강대교에서 본 한강철교와 노들섬
노들섬에서 조망한 한강대교. 다리 위의 아치가 아름답다.
한강의 중앙에서 산책하기
노들섬은 크게 야외공간과 실내공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나에게는 한강을 마주할 수 있는 야외공간이 개인적으로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노들섬의 야외공간을 먼저 접하고 싶다면 노들섬에 도착해서 만나게 되는 계단을 오르시라고 권하고 싶다(그 전에 혹시 가지고 있는 짐이 많다면 계단 아래로 내려가 1층에 위치한 사물함에 먼저 들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계단을 내려가 바로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동전을 넣어야 작동되는 시스템이므로 500원 동전도 미리 챙기시길.).
계단을 오르면 노들스퀘어라 불리는 광장을 만날 수 있는데 여기서 노들섬의 상징인 N o d e u l Island 조형물을 이런저런 각도로 잠깐 조망해 보고 광장도 이리저리 잠깐 거닐어 본다. 이곳에서부터 뭔가 탁 트이는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노들섬 입구. 계단을 오르면 노들스퀘어를 만날 수 있다.
노들스퀘어
그리고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노들스탠드라 불리는 나무의자로 만들어진 스탠드석들이 아래로 위치하고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잔디마당이 위치한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잔디마당도 가로지르자. 우리는 한강과 더 가까이 공원으로 더 내려갈 것이다. 나무계단을 따라 공원으로 내려가면 한강과 한강철교가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조망할 수 있는 여러 벤치들이 눈에 띌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노들섬의 핫스팟은 바로 여기이다(정확히는 흔들의자이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릴 수 있고 지붕이 있어 햇볕을 가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깐 발걸음을 멈추어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자. 핫스팟은 잠시 아껴두고 더 아래로 내려가 노들섬 둘레길을 거닐어 본다. 노들섬에서 한강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둘레길을 거닐며 달을 구현한 설치작품 ‘달빛노들’도 잠시 바라다보고, 아직 새싹이 돋지 않아 아쉬운 마음을 바람에 곱게 흔들리는 강가의 억새들로 달래보고, 저멀리 남산타워가 보여 반가워했다가, 뒤돌아 용산도 보이네 했다가, 이윽고 섬의 반대측면에 도착해 상류 방향으로 보이는 동작대교를 만나고, 강물에 떠 있는 검은 오리들을 발견해 제법 한참을 눈길을 주었다. 한강과 가장 가까이서 둘레둘레 섬을 따라 걸어보자. 한강의 중앙에서 경험할 수 있는, 노들섬이 주는 선물임이 분명하다.
노들스탠드와 잔디마당
한강과 한강철교를 조망할 수 있는 노들섬의 벤치들
노들섬의 둘레길
달빛노들. 아직 낮이어서 나무 뒤에 수줍게 숨어 있다.
봄을 기다리며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
강 건너 용산도 보인다.
상류 방향으로 보이는 동작대교
물 위에 떠 있는 검은 오리
노들섬의 실내공간
노들섬에 도착해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이곳이 1층이다.) 왼쪽 벽면으로 노들섬을 소개하는 구조물을 볼 수가 있다. 노들섬에서 소개하는 노들섬은 ‘사람을 잇는 섬’, 그리고 ‘음악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기지’이다. 사람, 자연, 문화를 키워드로 자연공간 뿐 아니라 문화공간, 업무공간, 상업공간 등이 함께 들어서 있다.
문화예술영역 중에서도 노들섬은 음악 분야에 좀 더 특화된 느낌으로 라이브하우스에서 여러 공연이 펼쳐진다. 하지만 노들갤러리, 노들서가 등 다양한 문화시설이 함께 갖추어져 있고, 여러 상업공간도 함께 존재한다.
둘레길에서 아직은 찬 기운이 조금 남아있는 3월의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였더니 조금 피곤한 느낌이 있었다. 이럴 때는 노들라운지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 노들라운지는 말 그대로 시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라운지와 같은 공간으로 내가 방문하였을 때도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이용하고 있었다. 아니면 노들서가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잠시 읽거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카페뿐만 아니라 여러 레스토랑, 펍, 편의점까지 들어서 있으니 배가 고파져도 아무런 걱정이 없다.
노들라운지
멀어져가는 강물 바라보기
노들섬의 실내공간까지 한 번 둘러보고 나서 아껴둔 핫스팟으로 다시 향했다. 한강과 한강철교가 바라다보이는 야외 벤치. 잔디 위에 자리 잡은 흔들의자에 앉아 발을 한 번 굴러 보았다. 입춘은 진즉에 지났고 어제부로 개구리도 잠에서 깨어난 날이었지만 아직은 바람에 찬 기운이 조금 남아있었다. 그래도 한겨울처럼 찬 기운에 몸이 움츠러들 정도는 아니었고 오후가 되자 차츰 태양의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노들‘섬’의 벤치에 앉아 있으니 한강의 중앙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앞으로 한 시간 정도는 멀어져가는 물길을 그저 바라만 보며 물멍을 할 예정이었다. 노들섬 공원의 벤치에 앉으면 한강 하류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상류 방향을 보고 싶다면 섬 반대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섬 반대편에는 헬기장이 있고 마련된 벤치는 정말로 달랑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물길을 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로 오는 물길을 보는 것 보다 멀어져 가는 물길을 바라보다 보면 왠지 내 안에 남겨져 있던 욕심들까지 떠나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내 욕심이다, 내 욕심이다, 되새김질하여도 끝내 떨쳐내지 못했던 욕심이라도 강물의 힘을 빌려 조금 더 덜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조금 더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쿠구구궁 열차가 한강철교를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날이 흐렸다. 그래도 흐르는 강물에 욕심을 흘려보내면 저 하늘처럼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흘러가는 강물
한강철교를 지나는 열차
강물에 욕심을 흘려보내면 하늘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