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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새벽 글쓰기

올해 첫 켐벨 포도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by NY

기도하는 마음이 솟아난다. 새벽에 아침을 시작하는 것은 그래서 좋다.

포항 호미곶, 일출.

하루를 시작할 때 기도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짜여진 쳇바퀴 안에 몸뚱이를 밀어넣고 열심히 굴리다가 문득, 그 안에서 빠져나와 잠시 모카라떼로 목을 축이는 것. 그렇게 인생의 달콤함을 잠시 맛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이 들고, 어떤 일이든 시작해볼 수 있다는 용기가 솟아나는 시간.

새벽 시간에는 그런 마음이 든다.


지난 봄, 친구의 제안으로 함께 해파랑길을 걸었다. 우리는 난생 처음 가본 포항 구룡포 호미곶 숙소에서 꽤 이른 시간 캄캄한 새벽공기를 느끼며 서둘렀는데 바로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네이버 일출시각을 확인해서 다섯시 반쯤 숙소를 나섰는데 캄캄한 하늘이 도무지 개일 생각을 하지 않아서 호미곶에 모인 여러 사람들과 함께 걱정반, 기대반으로 웅장하게 떠오를 태양을 기다렸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마침내 바다수평선에서 떠올랐을 때 우리는 함성을 질렀다. 나는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그 때 처음 보았는데 핸드폰 카메라로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그 순간의 감동을 잡아내기는 역부족일만큼 감동적이었다. 작고 강한 희망의 불씨가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것 같았다.


하루에 오만보씩 해파랑길을 걸으며 했던 생각은 '아, 여기 또 오고 싶다. 꼭 또 와야지.' 하는 생각이었고 바닷길을 왼쪽에 끼고 포항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우리를 낯선 이방인으로 생각한 개들이 정신없이 충실하게 짖어대서 잔잔하게 바다 풍경에 집중하기는 어려웠던 추억을 남겼다. 새파랗던 하늘과 더 파랗던 바다를 원없이 보며 하루에 대여섯 시간을 걸었고, 저녁에는 조그만 숙소에 몸을 누이고 얼얼해진 발바닥에서 뿜어져나오는 열기에 뭔지 모를 뿌듯함과 기분좋은 피로감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피곤해져서 노곤한 컨디션으로 친구와 캔맥주를 기울이며 시덥잖은 수다를 떠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었다.


오늘 새벽, 문득 해파랑길 여행이 떠오른 것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기도하는 마음'이 드는 하루의 시작에 꽤나 잘 어울리는 추억이 아니었나 싶다.


여기저기 휩쓸리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오랜 기간 함께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왜 나만큼 깊지 않은지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것 같았을 때, 친구는 해파랑길이나 걸으며 훌훌 털어버리자고 말해주었다. 그냥 그 말이 너무 좋아서 그래, 가자. 당장 가지 뭐. 나는 꽤나 절박했었고, 앞이 보이지 않는 듯 캄캄했었다. 그래서 가능한한 아주 많이 걷고 싶었다. 아무런 생각이 머리 속으로 들어오지 않을만큼 걷고 나면 왠지 말끔한 기분이 들 것도 같았다. 그리고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수없이 뒤엉켜버린 실타래를 한 움큼 웅켜쥐고 어차피 풀리지 않을 이런 것 따위는 버려버리자고 다짐했었는데, 그래도 며칠 원없이 하늘과 바다를 보며 걸었던 일은 지나고 보면 꽤나 유효한 일이었다.


이렇게 수개월이 지난 후에도 나는 그 때의 그 감정과 기억을 되살려 하루를 더 행복하게 살아낼 에너지를 얻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 모든 힘든 일은 기차가 기차역을 지나가듯 지나가게 마련이고, 눈 앞이 막다른 절벽인 듯 갈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훌쩍 떠나서 가슴 속에 바다의 일출장면을 간직한다던가 하는 일은 생각보다 묵직한 울림을 준다. 그리고 희망과 기도하는 마음, 삶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다시 불러오고야 마는 것이다.


주저 앉고 싶었을 때 아이러니하게 다시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신기하지 않은가. 신기하고 신기하다.


살면서 또 언제든 막막한 기분이 드는 날이 종종 찾아올 것이다.


나는 그 때 해파랑길을 같이 걷자고 제안한 친구에게 우리, 걸으러 다녀오자. 다 훌훌 털어버리고 오지 뭐. 라고 말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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