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함을 견디는 것이 능력.

세바시 - 김찬호 교수

by NY

애매함을 견디지 못하고 명쾌하게 아군과 적군을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행동이다.

나도 그랬다.


5년 전 무렵이었을까.

내가 가깝게 지내던 동료가 '기회주의자'이며 동시에 '박쥐'라는 것을 알게된 해, 그 해에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문을 걸어잠궜다. 이 동료는 고민하지 않았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겠지.

자기가 살기 위해서 '기로에 선 애매함' 같은 것은 버려버렸다. 애매할 필요도 없었다.

답은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선택'으로 정해져있었으니까.

나는 저 사람을 이제는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나는 '애매함' 의 상황에서 항상 흔들려왔던 것 같다.

-내가 저 사람을 쌩까고, 이 쪽 편을 들어도 될까. (의리)

-내가 아무 편에 서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애매함은 '선택지'에 없다는 확신)

-나의 이 애매한 상황을 나는 어떻게 타개해나갈 것인가. (팀장의 편에도 팀원의 편에도 설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바꾸어 말하면 아무 편에도 서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나의 가치관이 이 애매함의 기로에 섰을 때, 나는 주로 이렇게 생각해서 판단했었다.

반대의 상황이라면 상대편이 어떻게 해주기를 나는 진정으로 바랄까.

하지만 이것은 너무도 바보같은 판단의 기준이었다.

나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게 최우선이란 말인가.


-내가 도울 수 없는 상황이라면, 도울 수 없는 쪽을 선택하라.

-내가 의견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저 가만히 있어라.

-내가 저쪽 편을 드는 것을 굳이 오픈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이라면, 그냥 오픈하지 말아라.

-불평을 듣는 것이 나에게 힘들다면, 들어주지 말아라.


나는 항상 '나'를 위한 선택을 하려고 한다.

그게 너무 늦었지만, 그게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늘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왔기 때문에, '나'를 위한 선택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할 지라도

습관적으로 그 양 쪽의 선택을 동시에 고려할 것이다.


지금은 훈련을 하는 중이다.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훈련. 아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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