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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의결정족수

대통령과 그 권한대행 무엇이 다른가?

by 이상현 변호사

12월 27일 국회는 ‘국무총리(한덕수) 탄핵소추안’을 재적의원 300명 중 찬성 192표로 가결했다. 헌법 제65조 제3항과 국회법 제134조 제2항에 의하면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소추의결서가 본인에게 송달된 때부터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 한 권한대행이 소추의결서를 전달받으면서 이날 오후 5시 19분부터 직무가 정지됐다.


이로써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새 권한대행의 직함으로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쓴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대로 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대통령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만 해도 글자수가 18자로 광개토대왕의 시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12자보다 많다. 물론 1980년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겸 국군보안사령관 겸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말이다.

한 총리의 탄핵안 의결정족수를 두고 논란이 있다. 국민의 힘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같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을, 민주당은 ‘재적의원 과반수(151명)’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만일 국민의 힘 쪽 얘기가 맞다면 헌법재판소에선 탄핵심판청구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하여 이 사건을 ‘각하’할 수 있다. 어느 얘기가 맞는 걸까?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문을 참조하여 살펴본다.


첫째, ‘대통령 권한대행’은 탄핵의 대상이 되는 ‘공직’이 아니다.

법관(임성근) 탄핵 결정문(2021. 10. 28. 2021헌나1)의 다수의견에 따르면 헌재는 탄핵결정을 선고할 때 피청구인이 ‘해당 공직’에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이는 헌법 제65조 제4항 전문이 “탄핵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라고 규정하고,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도 “피청구인을 해당 공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한다”라고 규정함을 근거로 한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은 그 직무가 정지되어 있을 뿐 아직 대통령 신분이다. 반면 한 총리는 탄핵소추로 인해 더 이상 ‘대통령 권한대행’이 아니고, 다만 (국무총리로서의) 직무가 정지된 채 국무총리의 신분을 유지할 뿐이다. 요컨대 ‘대통령 권한대행’은 탄핵결정으로 파면되는 공직이 아니다. 우원식 국회의장 역시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은 직(職)의 파면을 요구하는 것이고, 이 안건의 탄핵소추 대상자는 대통령 권한을 대신하여 행사하는 국무총리”라고 밝혔다.


따라서 일부 언론에서 최상목 부총리를 가리켜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라 말하는 건 잘못됐다. 국무총리로서의 직무가 정지되는 순간 한 총리는 더이상 대통령 권한대행이 아니고, 최 부총리가 새로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기 때문이다. 최 부총리가 '국무위원 서열 3위'라고 하는 말도 잘못됐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국무회의 구성원이지 국무위원은 아니고, 최 부총리는 국무위원 중에서는 제일 선임이기 때문이다.

둘째, 대통령에게 부여된 민주적 정당성이 ‘대통령 권한대행’에겐 없다.

대통령(박근혜) 탄핵 결정문(2017. 3. 10. 2016헌나1)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은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에게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박탈하는 것으로서 국정 공백과 정치적 혼란 등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의기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박탈하여야 할 정도로 대통령이 법 위배행위를 통하여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헌법이 다른 공직과 달리 대통령에 대해서만 탄핵안 의결정족수를 ‘3분의 2 이상’으로 하는 이유도 대통령이란 직책의 민주적 정당성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이에 비해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므로 최소한의 민주적 정당성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의 그것과 견줄 수 없다. 그나마 동의도 얻지 않는 국무위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총리와 국무위원들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요컨대 민주적 정당성 면에서 대통령과 견줄 수 없는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대통령과 같은 탄핵 가결정족수를 요구하는 것은 헌법질서에 어긋난다.

“나와 법률 사이에는 두 개의 바다와 하나의 대륙이 가로놓여 있어.”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서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이렇게 말한다. 맥락은 작중 상황과 다르지만, 지금 우리 국민이 법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말이 있을까? 헌재가 두 개의 바다와 하나의 대륙을 걷어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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