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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이란 감자는 늘 뜨겁다

언젠가 해야 할 개헌, 지금은 왜 늘 아닌가?

by 이상현 변호사

1987년 헌법을 개정하자는 얘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12.3 계엄과 이에 따른 탄핵심판, 내란 수사 과정에서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몸소 겪고 있는 탓이다. 역대 국회의장들도 언론을 통해 개헌에 대한 소신을 저마다 밝히고 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적어도 2000년대부터 모든 국회는 개헌을 하지 못한 원죄(原罪)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중진 의원들은 개헌에 대한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현행 헌법이 낡았다는 것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릴 만큼 과도한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이다. 1946년 이후 한 번도 개정된 적 없는 이웃 나라 일본 헌법(평화헌법)에 비하면 마흔도 안 된 1987년 헌법은 중년 축에 끼기도 민망하다.

1987년 당시 대통령 전두환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한 3개월 뒤에 이른바 4.13 호헌(護憲) 조치, 즉 '헌법을 바꾸지 않고 계속 유지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오히려 이로 인해 민주화 세력은 단합했으며 범국민적 개헌 열망은 '호헌철폐! 독재타도!'로 대변되는 6월 항쟁으로 분출했다. 그 결과물로 대통령 직선제를 규정한 현행 헌법이 탄생했지만, 대통령의 제왕적 위용은 줄어들지 않았다.


제헌헌법은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권'을 주었다. 일본제국 헌법(메이지 헌법)이 천황에게 주었던 계엄 '선고권'을 '선포권'으로 이름만 바꾼 것이다. 정작 일본국 헌법(평화헌법)은 2차 세계대전 후 '계엄'을 삭제했는데도 말이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우리 헌법 제84조는 일본제국 헌법 제53조 '양의원의 의원은 현행범죄 또는 내란외환에 관한 죄를 제외하고 회기 중 그 원의 허락 없이 체포되지 아니한다'는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일본 헌법에서 없어진 '내란, 외환'이란 말까지 그대로 답습한 우리 제헌헌법은 ‘체포’를 '소추'로 바꿔 대통령에게 공물(貢物)로 바쳤고, 1987년 헌법도 이를 따르고 있다.

겉모습만 보면, 일본도 국무대신은 재임 중 내각총리대신의 동의 없이 소추되지 않고(일본국 헌법 제75조), 내각총리대신 역시 이 규정의 해석으로 '불소추특권'을 누린다. 하지만 내각은 중의원에서 불신임 결의안이 가결되거나 신임 의결안이 부결된 때에는 10일 이내에 중의원이 해산되지 아니하는 한 총사직하여야 한다(일본국 헌법 제69조). 말하자면 의회와 내각의 권력 분립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내각총리대신(内閣総理大臣), 국무대신(國務大臣)'이란 명칭에서 볼 수 있듯 모든 내각 구성원은 천황의 신하이다. 요컨대 일본은 민주공화정이 아닌데도 권력 분립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비해 민주공화정인 우리나라 대통령의 위세는 현재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나아가 천황을 어느 면에서는 압도한다.

2022년 9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첫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 힘은 "민생의 블랙홀이 될 이재명식 개헌에 대해 어떤 국민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개헌을 논하기 전에 노동, 연금, 교육 개혁 등 직면한 과제 해결부터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 6년 전인 2016년 10월 24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통령 단임제로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면서 지속 가능한 국정과제의 추진과 결실이 어렵다"라면서 대통령 5년 단임제를 고치는 데 중점을 두고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자신도 그 9개월 전인 2016년 1월 13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경제가) 발목 잡히고 나라가 한 치 앞이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개헌을 말하는 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 상황이 (개헌이) 블랙홀같이 모든 것을 빨아들여도 상관없을 정도로 여유 있는 상황이냐. (중략) 청년들은 고용 절벽에 처해 하루가 급한 상황에서, 이러한 것을 풀면서 말을 해야지. 염치가 있는 것이냐"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상황을 돌이켜 볼 때 9개월 동안 경제가 나아져서 개헌이 블랙홀의 족쇄를 푼 것은 물론 아니다.


이렇듯 정치권에서 한동안 개헌 논의는 '경제 살리기'로 요약되는 당면 과제부터 해결하고 난 이후에 해야 하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그런데 이번 12.3 계엄사태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대통령의 기세를 등등하게 만든 1987년 헌법이 빌미가 되어 경제와 외교를 비롯해 대한민국은 추락했다.


'개헌이 곧 민생'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우는 중이다.

논의가 부족하다는 핑계도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충분한 논의'라는 기준점에 도달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을 수 있겠지만, 개헌 논의는 사실 많이 했다. 적어도 역대 국회에서 자문위원회와 각종 토론회를 통해 나눈 개헌 논의가 휴지 조각이 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오늘날 헌법학계에서 널리 수용된 통합론적 헌법관에 따르면 국가는 통합과정이고, 헌법은 통합과정의 수단으로서의 법질서이다. 그렇다면 개헌 역시 국민을 통합하는 수단이라야 한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는 이 땅에서 개헌에 민생 블랙홀이라는 딱지가 붙는 모습을 보고 있는가? 편 가르기 정치에 너무 익숙해져서, 개헌마저 정치적 카드로 활용하는 것을 당연시한 탓이다.

개헌을 향한 여정은 하지만 현재 우리 정치 수준으로 볼 때 가시밭길이 예정되어 있다. 적어도 현직 정치인이라면 누구라도 선뜻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호헌철폐! 독재타도!'로 터져 나온 국민적 개헌 열망이 다시금 그 험로(險路)를 뚜벅뚜벅 걸어갈 힘을 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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