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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대학에 떨어졌다

아빠보단 나은 어른이 되길

by 이상현 변호사

포항에 사는 고향 친구가 얼마 전 제철이라며 과메기를 보내왔다. 지금은 낯선 단어가 된 상고(상업고등학교) 졸업장을 쥐고 바로 취업한 그 친구는 직장생활을 하며 야간 전문대학에 다녔다. 필자가 철부지 대학생이었을 때 그 친구는 벌써 어른이었다. 얼굴을 못 본 지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매년 늘 먼저 전화해서 안부를 물어 준다.


필자는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다. 1992년 12월로 예정된 학력고사를 준비하던 고3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년부터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이상한 시험이 생기니 이번에 꼭 붙어야 한다는(딱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부를 하셨다. 이후 30년간 관심도 없다가 이번에 수험생 부모로서 수능을 처음 접했다. 미대를 준비한 딸은 정시 전형으로 가, 나, 다군 이렇게 세 곳의 대학에 지원했다.

실기시험을 치르기 위해 우리 가족(필자와 아내, 딸)은 물감을 비롯해 그림 도구로 채워진 캐리어 가방을 끌고 3일 동안 대학 세 곳을 쫓아다녔다. 시험 종료를 기다리며 필자와 아내는 시험장 부근 카페에서 초조한 기분을 동지 의식으로 달래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다.


종료 시각이 임박하자 학부모들은 자식들을 맞이하러 시험장 앞으로 모여들었다. 모여든 학부모들은 비슷한 연배로 그 얼굴에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30년이란 시간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이제 우리가 수험생 부모가 되었네요’ 처음 보는 학부모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을 건네고 싶었다.

가, 나군 대학에 모두 떨어지고, 다군 대학입시 발표날 아침 딸과 함께 광화문으로 갔다. 유명하다는 미국 햄버거도 먹고(딸은 맛있다는데 필자는 꽤 짰다. 입맛도 중년이 되어 가나 보다),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딸에게 선물할 성경을 고르러 생명의 말씀사로 향했다. 가는 길에 새문안 교회에서 기도했다.


마지막 일정은 경복궁역에 인접한 별들의 집(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공간) 방문이었다. 희생자들의 사진이 쭉 걸려 있었다. 딸과 아들, 조카, 친구를 그리워하는 메모가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웠다. ‘딸아, 생일 축하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유가족으로 보이는 중년 어머님께서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찾아 주어서 고맙다며 차가 있으니 마시라고 권했다.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보라색 리본이 있어 가방 고리에 달았다.

집으로 오면서 딸은 휴대전화로 마지막 대학까지 떨어진 걸 확인했다. 슬퍼할 조카에게 치맥을 사주겠다며 찾아온 이모(필자의 처제)가 괜찮다며 얼굴을 어루만지자, 딸은 참았던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축하해, 이제 고졸이네’ 처제가 딸에게 건넨 말에 다들 웃었다. 다음 날 방 청소를 대차게 한 딸은 십여 일 후부터 아침에 가방을 싸서 집 부근 도서관으로 향했다.


돌이켜 보면 행선지가 시험장이었을 뿐, 이른 아침부터 온 가족이 의기투합하여 캐리어 가방을 끌고 다니며 가족 여행을 했다. 서로를 다독이며 아내와 카페에서 보낸 시간도 달콤했다. 자신의 눈물로 이웃의 아픔에 공감할 딸의 어른스러운 모습도 그려진다. 물론 딸이 삼수, 사수를 하면 이런 긍정도 바닥을 드러낼지 모르겠다.


아내가 들으면 펄쩍 뛸 말이지만, 대학에 안 가더라도 딸이 필자보단 나은 어른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멀리 사는 친구를 잊지 않고 매년 안부를 묻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이쯤 글을 쓰니 앞서 말한 그 친구를 보러 포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2월이 가기 전, 과메기의 철이 끝나기 전 그 친구를 보고 싶다. 일찌감치 어른스러웠던 그 친구의 이름은 서인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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