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는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

두 요한이 증언한 예수

by 이상현 변호사

초대 교회에서 사도 요한의 위치는 범상치 않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면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와 게바(베드로)와 요한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했다’(갈2:9)고 밝힐 정도로 사도 요한은 권위가 있었다.


그럼에도 요한복음에는 정작 그 저자인 사도 요한이 나오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요한’은 죄다 ‘세례 요한’이고, 시몬 베드로의 아버지 요한이 ‘요한의 아들 시몬’으로 네 번 언급될 뿐이다. 또한 공관복음과 달리 요한복음에서 ‘세례 요한’은 ‘세례’자를 떼고 ‘요한’으로만 나온다.

‘사랑하시는 제자(19:26), 세베대의 아들(21:2)’ 요한복음에서 사도 요한은 스스로를 이렇게 부른다.


이렇듯 요한복음에서 사도 요한은 의도적으로 그 익명성을 고수한다. 사도 요한의 익명성 선호(選好)는 요한 1서부터 3서까지 그의 서신서로 이어진다. 긴 익명 끝에 요한계시록에 이르러서야 사도 요한은 ‘예수의 종 요한’이라고 자신을 밝힌다. 사도 요한의 익명성 선호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다음 날 (세례) 요한이 다시 자기 제자 두 사람과 같이 서 있다가’(요1:35)

많은 신학자들이 위 구절에서 세례 요한의 두 제자를 안드레와 사도 요한으로 본다.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은 스승과 자신의 이름이 비슷하게 거론되는 걸 원치 않은 것 같다.

요한복음 3장

26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보십시오.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곧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그분이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에게로 모여듭니다.” 27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너희야말로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한 말을 증언할 사람들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30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신랑 되신 예수님이 등장하였으므로 그는 흥해야 하고, 신랑의 친구 곧 나 세례 요한은 그만 못해져야 한다’ 세례 요한의 말은 일차적으로 이런 의미인 듯하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말대로 예수님은 흥했나? 세례받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들마저 도망간 채,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저주받은 자처럼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는 무슨 뜻일까?


요한복음 3:30

개역개정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새번역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새한글 그분 명성은 커져야만 하고, 나는 사그라들어야만 합니다.

공동번역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가톨릭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북한말성경 그분은 더욱더 위대해지셔야 하고, 나는 더욱더 작아져야 한다

KJV, ESV, NASB, CSB H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

CJB He must become more important, while I become less important


‘흥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αὐξάνειν(아욱사네인)의 어근 αὐξάνω(아욱사노)는 ‘자라다, 늘어나다, 커지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신약성경 용례(요한복음 포함 24회)는 다음과 같다.


마 6:28 눅 12:27 백합화가 자라다

마 13:32 눅 13:19 겨자씨가 자라다

막 4:8 싹이 자라다

눅 1:80 2:40 아기(예수)가 자라다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다

행 7:17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다

행 12:24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다

행 19: 20 주님의 말씀이 퍼져 나가다

고전 3:6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다

고후 9:10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다

고후 10:15 믿음이 자라다

엡 2:21 주님 안에서 자라다(그래서 성전이 되다)

엡 4:15 모든 면에서 자라다(그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한다)

골 1:6 복음이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다

골 1:10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다

골 2:19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다

벧전 2:2 먹고 자라다(그래서 구원에 이르러야 한다)

벧후 3:18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과 그의 은혜 안에서 자라다


‘쇠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ἐλαττοῦσθαι(엘랏토스타이)의 어근 ἐλαττόω(엘랏토오)는 ‘중요도가 감소하다, 줄이다, 열등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신약성경 용례(요한복음 포함 3회)는 다음과 같다.


히 2:7, 9 (천사들보다) 못하게 하다


이를 볼 때 ‘흥하고 쇠한다’라는 말이 '제자나 세례받는 사람들의 단순한 증감(增減)'과 동의어로 쓰인 것 같지는 않다. 영문 번역(H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을 보더라도 ‘늘어나고 줄어드는’ 주체는 사람들의 숫자가 아니라, 그(He)나(I)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역개정과 새번역도 좋지만,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가톨릭 번역(그리고 이를 닮은 공동번역)이 좀 더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의 말은 중의적(重義的) 의미를 갖곤 한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을 죽이는 데 앞장선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대제사장 가야바의 이 말을 두고 사도 요한은 가야바가 이 말을 스스로 한 게 아니라 그가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라고 기록했다(요11:50~52).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커지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예수님을 죽이는 데 앞장선 이의 말이 그러하다면 예수님의 도래(到來)를 알리는 데 앞장선 세례 요한의 말도 이렇게 중의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의 스승이었던 세례 요한의 이 말을 되새기며 사도 요한은 살아간 게 아닐까?

세례 요한의 말에 저런 뜻이 녹아 있다면 그 말은 바울의 신앙 고백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갈2:20)와 맞닿아 있을 듯하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사도 요한이 인정했다고(갈2:9) 밝힌 바울은 곧이어 위와 같이 고백한다.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0~21)고 말한 데서 볼 수 있듯 세월이 흐를수록 바울에게 예수님은 더 커졌고, 자신은 작아졌다.


한 성령으로 감동된 사람들의 삶과 말은 그 모양이 각기 달라도 동일한 목적을 향하리라는 생각으로 글을 써 봤다. 필자의 경우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거릴 때 복음서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삶과 증언을 떠올리면 믿음이 굳건해짐을 느낀다. 그의 말을 본받아 ‘주님, 제 안에 예수님은 자라나고, 저는 줄어들게 해 주세요’라고 종종 기도한다.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어쨌거나 합력하여 선을 이뤘네요’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세례 요한과 사도 요한을 만나면 그들에게 이런 얘길 들을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을 닮은 그들은 너그러이 봐주리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딸이 대학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