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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장터 아이들 비유

by 이상현 변호사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눅7:3 새번역)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하신 일들을 전해 듣고, 자기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 이렇게 질문한다.


질문에 답하고, 요한의 제자들이 떠나갈 때, 예수께서 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눅7:31~35(새번역)

31 "그러니, 이 세대 사람을 무엇에 비길까?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그들은 마치 어린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서로 부르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하는 것과 같다. 33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니, 너희가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34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너희가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35 그러나 지혜의 자녀들이 결국 지혜가 옳다는 것을 드러냈다."


‘장터 아이들 비유’라고도 불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누가복음(7:31~35)마태복음(11:16~19)에 쌍둥이처럼 등장한다.


그런데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는 사도 바울의 권면이 강렬한 연상 작용을 일으킨 탓인지, 적지 않은 교인들이 위 본문에서 춤추지 않고, 울지 않은 이들을 ‘공감 능력이 없는’ 이 세대 사람으로 보곤 한다.

하지만 문맥과 단어 선택을 보면 피리를 분 아이들이 이 세대 사람이고, 불평(?)을 듣는 이들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라고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다.


이렇게 해석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영어 번역으로 보면 시장에 앉은 아이들, 즉 불평을 늘어놓는 아이들을 가리켜 예수께서 '그들'이라고 한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눅7:32 a

ESV They are like children sitting in the marketplace and calling to one another

CSB They are like children sitting in the marketplace and calling to each other

NASB They are like children who sit in the market place and call to one another

개역개정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새번역 그들은 마치 어린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새한글 그들은 장터에 앉아서 서로 외쳐 대는 아이들과 같습니다

가톨릭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반면 개역개정과 새번역에서는 '그들'이 누구인지 다소 불분명하다. 새한글성경과 가톨릭 번역은 이보단 분명하지만, 영어처럼 바로 ‘They are like children’(그들은 아이들과 같다)으로 시작하지 않고, 앞에 설명하는 수식 어구가 주렁주렁 붙어 있어 직관적으로 와닿지는 않는다. 굳이 사족을 붙인다면, 이는 선(先)명사, 후(後)관계대명사& 분사구문의 어순(語順)인 영어의 특성 때문이지 언어 상호 간의 우열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이러한 영어 번역에도 불구하고, 영미권 교인들 가운데도 본문에서 춤추지 않고, 울지 않은 이들을 이 세대 사람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둘째, ‘귀신이 들렸고, 죄인의 친구다’라고 비판하는 모습은 ‘춤추지 않고, 울지 않았다’라고 트집을 잡는 아이들의 모습과 궤를 같이한다.


셋째, 권세자가 된 것처럼 행세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특정 반응을 강제하는 모습은 지금도 낯설지 않은 세상의 모습이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이 와서’, ‘인자는 와서’라고 말씀하셨다. 장터의 풍경을 떠올려 보자. 장터에 먼저 온 아이들은 눌러앉아 자리를 잡는다. 이렇게 기득권 행세를 하는 아이들이 있는 장터에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상징하는 다른 아이들이 차례로 온다. 새로 온 아이들은 춤추거나 울 기분이 아니고, 유치한 놀이 따위에는 애초 관심이 없다. 그 사람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구령에 맞춰 기쁨과 슬픔조차 흉내 내길 강제한다면 이만한 폭력도 없을 성싶다.


넷째, 비유의 배경은 춤출 만한 기쁜 일도 울 만한 슬픈 일도 없고, 다만 아이들의 놀이(?)일 뿐이다. 놀이로 부는 피리나 곡 소리에 선뜻 호응하여 춤을 추거나 우는 아이가 있다고 치자. 그 아이에게는 이웃을 사랑하는 의미에서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연기력이 좋거나 눈치가 빠르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장터 아이들 비유는 예수님의 다음 말로 마무리된다.


눅7:35

개역개정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새번역 그러나 지혜의 자녀들이 결국 지혜가 옳다는 것을 드러냈다

공동번역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지혜를 받아들인 모든 사람에게서 드러난다

새한글 그러나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들에게 옳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가톨릭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KJV But wisdom is justified of all her children

ESV Yet wisdom is justified by all her children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지혜를 받아들인 모든 사람에게서 드러난다는데(눅7:35 공동번역) 과연 나는 그 지혜를 받아들인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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