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명령이 아니라 질문을 던진다

운명의 노예에서 연인으로

by 코치 알버트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니 그냥 지금처럼 살라는 하늘의 뜻인가봐요." 이러한 말을 진심으로 하는 사람들은 운명으로부터 명령을 받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삶의 시련과 비극은 불행해지라는 운명의 명령이다.



운명은 우리에게 부조리한 고통을 준다. 아주 여러가지 형태로 시련을 준다. 그것은 가난하고 불우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일 수도 있고, 학창시절에 겪은 학폭일 수도 있고, 대학입시나, 공무원 시험같은 중요한 시험에서 연속적으로 좌절한 것일 수도, 잘 다니던 직장에서 짤리거나, 사업이 망하는 것일 수도,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거나, 병에 걸리는 것일 수도 있다.



운명에게 명령을 받는 자들은 이러한 시련을 마주할 때 마다 착실하게 명을 따른다. 순종적으로 불행해진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에 주어진 운명의 명령이 가진 절대성을 절망과 체념과 한탄으로 찬송한다. 기회가 생기면 복수심을 불태우며 자신이 받은 불행하라는 명령을 다른 사람에게도 안겨주고는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한가, 겁내지 않고, 화내지 않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눈을 잘 뜨고 바라보면 운명은 우리에게 결코 명령을 던지지 않는다. 그녀가, 또는 그가 던지는 것은 언제나 질문이다. 한 문장의 언어로 담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예/아니오'로 답할 수 없는 개방형 질문이다.



이 글을 쓰다가 키보드조작을 잘못해서 한 번 싹 날아갔다. 속으로, 가 아니라 입 밖으로 욕이 나왔다. 이렇게 운명은 불시에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다 써간 글이 허무하게 지워졌다. 심지어 너는 네가 무엇이라고 썼는지 기억도 못한다. '이제 너는 어쩔 것이냐'라고.



운명이 물으면, 인간은 답한다. 주어진 질문이 그러하듯, 우리의 답도 한 문장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 우리의 답은 짧게는 순간의 행동으로,길게는 몇 십년에 걸친 삶 속에서 쓰여진다. 그리고 어떤 답을 할 것인지는 개인의 자유이다.



부조리하기 그지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운명의 역할이자 권한이라고 하면, 그것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은, 무엇이 자신의 답인지 선택하는 것은 분명 개인의 역할이자, 누구도 빼았을 수 없는 권리일 것이다. 분명 처음부터 만족스러운 답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불만족스러운 답에 더해 운명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분명 깊게 생각해보고도 불만족스러운 답을 낸 자는 다음 질문에는 조금 더 나은 답을 낼 것이다.



그렇게 계속되는 문답 속에서 우리는 이전의 나를 넘어서게 된다., 자기초월의 경험은 시련에 대한 감사로 이어지게 되고, 이윽고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운명을 우리는 사랑하게 된다.



운명의 명령에 굴복한 불행한 자들이 운명의 노예라고 한다면, 운명의 시련에 몸서리치면서도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이것이다라며 자신의 의지를 담은 답가를 쓰는 자들은 분명 운명의 연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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