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코치 알버트가 보내는
이 글은 최근에 누군가 보내온 삶의 의미와 비전에 대한 질문글에 답변을 적은 것입니다.
알버트님께..
안녕하세요 알버트님
저는 힙노시티( 코치 알버트가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는 A군이라고 합니다.
알버트님을 알게 된 이후로 제 삶에 정말 큰 변화들을 많이 이루어냈습니다. 하루 하루를 나태하게 보내며 끊임없는 자기 혐오와 자기불구화의 하강나선을 그리던 고3이 6개월만에 목표했던 대학에 합격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 무서워 버스도 못 타던 제가 A2C강의를 듣고 40명 앞에서 발표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튜브에서 나누어주신 자기최면 기술을 통해 제 눈을 못뜨게 만들었을 때의 쾌감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정말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메일을 쓰게 된 건 이 감사 인사와 함께 1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저를 괴롭히는 큰 질문에 대해 알버트님께 여쭙기 위해서 입니다. 제가 삶의 의미, 비전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가졌던 이 거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도 정말 답이 없어보이고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내 삶의 의미, 비전은 무엇인가’라는 인생을 관통하는 거대한 질문을 생각하면 속이 꽉 막히고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들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느껴집니다.
알버트님, 제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내 분야에서 독보적인 가치 창조자가 되고 싶다는 추상적인 생각이 있을 뿐, 어떤 분야에서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싶은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카페에서 비전, 삶의의미를 검색해서 나오는 글들을 전부 읽어보았습니다. 알버트님이 쓰신 글들에서 나오는 비전, 한글자도 제게는 커다란 황금처럼 느껴집니다.
한 문장이라도 감사합니다. 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방법이든 계속 시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얻어진 것들을 힙노시티에 다시 나누겠습니다.
항상 제게 과분한 지식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는 알버트님께 다시 지혜를 나누어 달라는 이 글을 쓰는 지금 염치없고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동시에 어려운 질문이기도 합니다.
주신 편지를 읽고 이것에 대해서 답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보니, 한 5시간짜리 강의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는 그래야만 답할 수 있는 질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과 이메일이라는 매체의 한계로 인해 불행인가, 다행인가 읽는 데에 5시간 걸리지는 않을 정도로 축약해서 답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지금부터 하는 답은 보내주신 글을 제가 답하기 편하게 몇 가지 질문으로 재구성한 다음에 거기에 답하는 식으로 써보겠습니다. 물론 정리된 질문은 매우 심도 있는 질문이라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거대함으로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의 답을 드리니 저 말고도 다른 사람의 답도 참고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정리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의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2.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3. 나의 삶을 관통하는 비전을 정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
- 결론으로 바로 가면 '사실 인생의 의미 같은 거는 딱히 없는데 원한다면 하나 만들어도 된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왜 인가하면 '무언가의 본질적 의미, 목적성'이라는 것은 그것이 '의도적으로 설계/제작된 것'인 경우에만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자의 존재 의의는 앉기 위해서이고, 우산의 존재 의미는 사용자가 비를 안 맞게 하기 위함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경우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설계/제작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종' 수준에서 보면 살아남으려고 애쓰다 보니까 얻어걸려서 이렇게 진화를 한 것이고, 개인의 수준에서는 사회적 관습으로 결혼을 했으니 첫날밤을 치러야 하고 그래서 합방을 했는데 덜컥 생겼을 수도 있고, 남자가 자신의 컨트롤에 자신이 있어서 호기롭게 피임기구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어림도 없이 타이밍을 실수해서 아이가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은근히 많을 것입니다. 어쩌다 보니 실수로 생긴 자식 말이죠. 이런 경우 이 자식의 삶의 본질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만든 사람도 실수로 만들어버린, '낳음' 당한, 세상에 던져진 존재인데 말이지요.
더해서 인간처럼 자유의지와 그 의지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에게는 비록 자신을 만든 자가 어떠한 의도로 자신을 제작했건 그것은 그의 사정이고, 피제작품인 자신의 사정은 아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짐승이야 식용으로 설계되고 태어난 짐승은 대게 그러한 운명을 피할 수 없지만, 인간의 경우 부모가 이상한 사상을 가지고, 이 아이를 세계적 음악가로 만들어야지 하고 출산을 계획했다고 해도, 그것은 부모의 사정이지, 부모 곁을 떠나 살 수 있는 자식의 사정은 아닙니다. 즉 제작자가 무슨 의도를 가졌건 인간은 머리가 크고, 능력이 생기면서 굳이 그것을 따라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음악은 인간을 게으르게 만드는 것임으로 세상 모든 음악을 파괴하는 인간이 되겠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정리하자면 내가 '가축 또는 인간형 도구'가 되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나의 삶에 본질적 의미, 목적성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너의 인생의 의미는 이러한 것이라고 제시되는 모든 명제를 거부할 때 우리는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입니다. 내가 살아가는데 추구할 만한 '나의 선택과 의지에 선행하는 절대적이고 멋진 목적성'이 없다는 것은 인간을 방황하는 상태, 그저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 만들어줍니다. 이것은 자유로운 동시에 무척 불안한 상태로 만듭니다. 인생은 본질적으론 의미가 없다는 것. 정확히는 인생의 의미가 '공란'이라는 것. 그렇기에 우리가 자유롭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해나갈 것들의 기본 전제입니다.
-"따라야 할 삶의 의미와 목적성을 모르겠어서 불안하고 방황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 괴롭다. 그러므로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라고 하는 것은 인류사 전체를 관통해온 하나의 거대한 니즈입니다. 그리고 이 니즈를 해결하기 위해 정말로 여러 발명품이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종교/영성산업의 상품(좀 좋게 말해서 발명품)들은 방황과 불안을 끝내줄 수 있는 사상적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흠 없는 절대자가 이러이러해서 인간을 만들었으니 그것에 따라야 한다던가, 당신이 특정 계급으로 태어난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이니 그 계급에 충실해야 한다느니, 인간은 전생과 현생에 업을 지어서 고통을 받으니 이 업들을 다 청산해야 한다느니, 우리는 위대한 하나의 존재에서 나왔으니 다시 그 존재와 합일해야 한다느니,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느니 등등 굉장히 여러 가지 상품이 나와있습니다. 이것들 중 하나를 구매해서 추종하는 것이 삶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상품을 구매하는데 나름의 취향이 있어서 위에 있는 종류의 것들을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질문하신 분이 이것들을 구입해서 사용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주의했으면 하는 것은 저러한 영성산업에서도 역사 있는 대기업이 있는가 하면, 중소기업이 있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상품이 그렇듯 삶에 해가 되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곳들이 있습니다. 확률적으로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들이 그런 것을 많이 만들어냅니다. 그럼 피해야 할 상품을 걸러야 하는 하나의 기준을 적어보겠습니다.
바로 "지금 내가 사는 삶이 유일무이하게 존재하는 진짜 현실이고, 지금 이 삶을 사는 '지금의 나'가 최대한의 '진짜 나'라는 것을 부정한다." 입니다.
간혹 지금 살고있는 나의 삶과 내가 덜 중요한 존재이거나 가짜, 허상이며, 이곳이 아닌 더 멋진 곳과 지금의 내가 아니라 진짜 멋진 나를 위해서 수행을 해야한다라는 뉘앙스의 믿음을 파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은 둘 중 하나입니다. 배움이 부족하고, 머리가 나빠서 생각을 어설프게 하는 '반푼이' 또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믿음을 파는 '사기꾼' 둘 중 하나입니다. 참고로 사기꾼 보다는 반푼이가 많습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선한 의도로 이걸 팔거든요. 이러한 믿음들은 대부분 이미 예전에 논파되었거나, 검증할 수 없는 것을 우기는 경우들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이득이 되는 경우는 지금의 인생이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나아질 희망이 없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없는 경우 뿐입니다. 일종의 모르핀 마취제 또는 아편 같은 효과를 주기 때문에 나름의 효용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자유시장국가에서 살고 있는 만 55세 이하, 극심한 장애 없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믿음들에 빠지면 적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십년까지 인생을 시궁창에 허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궁창에서 멀쩡한 삶으로 복구하는데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 됩니다. 이러한 믿음에서 빠져나오는게 너무 늦으면 그 때 부터는 진짜 이러한 믿음 없이는 답이 없는 인생이 되는데 그것은 정말이지 피했으면 하는 길입니다. 마약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진짜 마약을 하는게 나랏님들이 혼내기라도 해서 나을 수 있습니다.
-
여기까지 삶의 의미를 찾고싶다는 니즈를 해소하기 위해서 기성품을 구매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약간 결이 다른 방향을 제시하겠습니다. 바로 '삶의 의미는 절대적인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취향과 손에 닿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라는 것은 그것이 기능적으로 하는 일을 살펴보면, 내가 인생을 살면서 마주할 여러 국면에서 참고삼아서 현실인식과 의사결정에 적용할 '가치관'의 모음집입니다. 뭐랑 비슷하냐면 내가 집에 가지고 있는 와인냉장고의 와인리스트(+갖고 싶은 와인 위시리스트)랑 비슷한 것입니다. 내가 와인리스트를 가지고 있으면, 배달음식을 시킬 때 내가 이런 와인을 가지고 있으니 이런 음식이 어울릴거야 하고, 그것을 시킬 것이고, 다른 경우 어떤 사람이 음식을 가지고 올 때 "저 음식은 내가 가진 좋은 와인의 향을 망치니까 거절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와인리스트 없이도 우리는 밥을 먹고 살 수 있고, 삶의 의미 없이도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생이란 계획을 세우는 동안 벌어지는 다른 일들' 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밥이라는게 배고프고, 먹을게 있으니까 먹는거지, 꼭 와인이 있어서 그것과 기가 막히는 궁합을 가진 음식을 먹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듯, 인생도 낳음 당해서 태어났으니 사는 거지 꼭 삶의 의미가 있어야지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다만 내가 와인 냉장고에 내 마음에 드는 와인들을 넣어두고 그것들과 어울리는 음식을 손에 넣어 같이 즐길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매우 거대 하듯 이러한 삶의 의미를 정해두고 그것과 하모니를 이루는 경험을 할 때 엄청나게 즐겁습니다. 내가 원하는 와인을 정해두고 그것을 사서 실제 자신의 저장고에 넣게되는 쾌감도 말로 할 수 없지요. 이렇게 삶의 의미란 음식을 먹는다는 경험을 매우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와인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삶의 의미/삶의 비전을 가진다는 것을 위해서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와인 리스트를 찾아서 나도 그 와인들을 소장해야지 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되고(이러면 대게 똥같은 걸 바가지 쓰고 사게 됩니다), 나에게 제일 잘 맞고,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와인 컬렉션과 위시리스트를 만들어가야지 라고 접근해야 합니다.
-두 가지에 대해서 잘 알면 알수록 좋은 비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나'에 대한 것이고, 두번째는 '세상'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는 삶의 비전이란 것은 내가 가진 가치관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단편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그 안에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와, 어떤 세상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가가 담겨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는 무엇을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할 때 그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고, 세상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평생 채식주의자로 살다가 간혹 스팸 몇 번 먹어본 사람에게 '당신의 삶에서 먹고자 하는 최고의 고기요리는 무엇인가?'라고 물어봐야 잘 모르겠다는 답이 나올 것입니다.
우선 세상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삶이 있는지를 많이 접해봐야 합니다.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일단 다양하게 접해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을 위해 약간 힌트를 드리면 '여러 문화'를 접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여기서 문화란 것은 꼭 한국 문화, 미국 문화처럼 나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세분하게 구분되는 문화입니다. 예를 들어 음악으로 치면 오페라 문화가 있을 것이고, 힙합문화가 있을 것입니다. 운동으로 치면 숨쉬기 운동만 하는 문화가 있을 것이고, 크로스핏 문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는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서 자신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잘해내기 위해서 축적해 놓은 것의 결정체입니다.
이렇게 문화를 여러개 접하면 우리는 세상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알게 됩니다. 꼭 전세계로 여행을 다녀야 견문이 넓혀지는 것이 아니라 요새 같이 인터넷이 발달된 시대에는 방에 앉아서 디지털 환경에서도 많은 문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 문화를 겪으면서 나 자신에게도 집중해야 합니다. 나는 어떠한 것을 좋아하는가,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나는 무엇이 중요하게 여겨지는가, 나는 무엇이 별로인가 이러한 신호들을 귀 기울이고, 주의깊게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취향에 대해서 점점 잘 이해하게 됩니다. 저에게 주신 메일에서 '내 분야에서 독보적인 가치 창조자가 되고 싶다' 라고 말했는데 그러한 것이 나에 대한 이해입니다. 아주 좋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 요인, 세상에 존재하는 문화와 내 안에 존재하는 취향과 능력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 그 둘이 교차하는 최적지점에 내가 추구하는, 내가 만들고자 하는 비전이 만들어지기가 쉬워집니다.
예를 들어 나는 요새 미술관과 갤러리를 둘러보는 취미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서양미술사에 대한 공부도 하고 있고, 주변에 있는 미술전공자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유명한 전시와 무명갤러리까지 다녀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미술이라고 하는 문화의 멋짐을 조금씩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를 살펴보면 나에게는 저런 그림을, 조각을 내 손으로 해낼 수 있는 재능이 없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나는 비평과 큐레이팅에는 왠지 모르게 끌립니다. 충분한 시간의 수련과 교육을 통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수단 상관없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것이 정말 멋진 일이고, 그런 사람을 돕는 것도 매우 멋진일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렇게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 나의 취향과 재능에 대해서 밝혀나가다보니, 점점 원하는게 생깁니다. 돈 많이 벌어서 미술관을 만들고 내가 쿨하다고 생각하는 작품과 작가들을 초빙해서 내가 큐레이팅한 기획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현대미술문화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록, 관련한 나의 취향이 좀 더 발달될 수록 단순히 내가 큐레이팅한 기획전을 하고 싶다에서 나아가 세밀한 비전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획전 하려고 미술관 차리고, 초빙하려고 하면 돈이 제법 필요하니까 나는 내 수입과 자산을 크게 늘릴 방법을 찾아야 할 겁니다. 이렇게 나에게 주어진 삶이란 시간을 투자하여 만들어볼만한 것의 비전이 생깁니다. 물론 나 처럼 하고 싶은게 돈이 50억 필요하니, 50억 벌 방법을 찾는다는 방향이 아니라, 내가 연봉이 1억이니 1억 안에서 해결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라고 비전을 구성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요지는 우선 세상과 나에 대한 지도를 넓혀나가야, 그 많은 곳 중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까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이러한 감수성이 발달되면 꼭 하나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일종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게 됩니다. 위에서 한 와인의 비유를 다시 가져오면 세상에 어떤 와인이 있고, 내가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사모으는 방향성이 생기겠지요?
하나 더, 인간은 살아있는 것만으로 문제과 고통을 끊임없이 겪습니다. 벌써 수천년 전에 붓다가 밝혔듯 삶은 그 자체로 고통을 불러옵니다. 삶의 의미와 비전이란 것은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궁극의 해독제가 결코 아닙니다. 삶의 고통을 없애고 싶으면 생을 마감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삶에서 비전을 만들겠다 할 때, 이 비전과 의미를 따르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고, 내 삶이 완전해지고, 내 찐따스러움이 전부 사라지는 그러한 것을 찾으려고 하면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위에도 말했듯 고통이 있고, 불완전하고, 찐따스럽게 사는 것이 삶의 기본전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 과정에서 찐따같고, 불완전하고, 고통도 겪고, 실수도 저지르고, 댓가도 치루면서도 이것을 해보고 싶다라는 것을 세상과 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 맞춤형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여러 경험을 쌓아가면서 시시각각 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괜찮은 일입니다.
위에서 제가 와인에 꽂혔다는 이야기와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 했지요? 덕분에 최근 몇 달 사이에 내가 원하는 삶의 비전에 이전에는 없던 미술작품들과 와인들이 추가 되었습니다. 아마 몇 년후에는 내가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다시 내 삶의 비전에 무언가가 추가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삶의 의미와 비전은 내가 여러 경험을 하면서 같이 바뀌어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부터 세상과 나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완벽하게 만들어놓고 시작하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그 비전만 따라서 사는 것은 인생낭비가 될 수 있고요.
마지막으로 팁을 드리자면, 내가 접하는 것과 느끼는 것에 대해서 글을 써보시기 바랍니다. 경험과 함께 나의 언어를 같이 발달시켜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언어의 양과 질에 비례합니다. 그런고로 내가 세상의 좋은 것과, 나의 열망을 더 나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계속 말하고, 쓰는 것으로 수련하다보면 원하는 삶의 의미와 비전을 잘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질문 있으시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