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의 힘
얼마 전의 일이다.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사람들을 만나던 중 한 사람이 내 쪽으로 굉장히 불쾌한 톤으로 말을 던졌다. 상황이 굉장히 애매했다. 그 말을 듣고 바로 다른 일로 주의가 가서 그 사람과 이야기를 계속하는 상황도 아니고, 정확히 나를 노려서 한 것인지, 자기 혼자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는. 어찌되었건 나에겐 어딘가 거슬리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일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잠깐, 그거 나한테 그런거지? 그지?'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는 무례한 인간을 싫어한다. 상당히 싫어한다. 그리고 나는 화와 짜증을 잘 낸다. 내 머릿속에선 이런 목소리가 생겨나기시작했다. "아니 이 새끼를 어떻게 해야하지?" 심장이 뛰고, 그 자식의 무례함에 대한 댓가를 어떻게 치루게 해야할까. 어떻게 그 놈의 인생에 고통과 비참함을 가져다 주어야 할까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몇 걸음 안걷는 새에 이미 그 자는 내 마음 속에서 나의 적이 되어있었다.
무의식은 이렇게 빠르다.
"이렇다,저렇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한니발 해야 한다."
라고 순식간에, 부족한 근거로 과한 확신이 있는 결정을 내린다.
무의식은 스토리를 채워넣는다. 저멀리 아프리카의 조상에서 지금의 우리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스토리를 만들어서 행동하게 하는 것은 우리를 망가트릴 수 있는 위험이 가득한 세계에서 살아남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빠르게 결정하는 것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빠른 결정은 불필요한 고통 속에 나를 집어넣기도 한다.
예를 들면 위에서 느낀 내 화가 그렇다. 이럴 때 의식이 할 수 있는 일은
"잠깐 친구, 기다려 봐, 속단하긴 일러, 우린 아직 몰라. 그리고 모르는 것은 괜찮아."
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과연 그 자는 나를 싫어한 것인가. 나에게 무례를 행한 것인가, 서로 존중을 가지고 대화를 할 여지는 없는가, 내가 무엇을 하건 태도가 바뀌지 않을 무뢰배인것인가, 그 사건이 내가 복수를 꾀할 정도의 일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내 무의식은 한 순간에 답을 정했지만, 사실을 보자면 나는 그 답을 모른다. 그리고 모르는 것은 괜찮다.
'어리석음이란 모르는 것 보다 속단하는 것에 가까운 것.'
일상의 여러 면이 편해지고 쓸데없이 마음고생을 안하기 위해서 떠올리면 좋을 만트라이다.
나에게 가끔 이렇게 이야기한다.
"화 내지 마라. 속단하지 마라. 있는 그대로 봐라. 모르면 지어내지 말고 모른다고 해라."
그러면 내 마음의 주도권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모른다의 상태로 돌아오면 우리는 실험을 할 수 있다.
며칠 후에 그가 포함된 프로젝트를 위한 미팅에 다시 참가했다. 그 사람을 보면서 웃으면서 인사를 건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나한테 악수를 청했다. 그렇게 화는 사라지고 서로를 존중하는 두 사람이 남았다.
하나. 화나 불안이 느껴지면 내가 속단함에 따라 그것들이 느껴짐을 알아차릴 것.
둘. 모른다의 상태로 돌아올 것
셋. 상황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실험을 해볼 것
이렇게 하면 불필요한 괴로움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일이 많이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