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그때는 매일매일 돈 버는 기계로 살아야 하는 하루하루가 불만족스러웠습니다. 분명 꿈이 있었는데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과 하루가 다르게 앞날이 불투명해지는 회사의 사정은 저를 더 불만족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34살, 직장생활 6년 차, 결혼 4년 차였습니다.
퇴사를 하다
2008년 5월, 결국 저는 5년 6개월간의 첫 직장 생활을 끝내고 어학연수를 떠났습니다.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외국계 회사로 이직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연봉도 그렇지만 더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영문 독해만 간신히 하던 제가 회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잠시 머문 곳은 필리핀의 일로일로(Iloilo)라는 도시였습니다. 물가도 마닐라보다는 쌌고 상담받은 어학원 자료에 카지노가 없는 교육도시라고 소개된 부분도 내심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이제 와 생각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인데 아마도 가성비 좋은 곳을 찾았지 싶습니다.
낯선 광경과 조우
도착 후 한 2주 정도 지났을까?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간 호텔 테라스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길가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 길가의 한편에서 지금도 잊지 못하는 낯선 광경을 맞이했습니다.
마주 보이는 건물 앞에 꽤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데, 도무지 줄지 않을 것만 같은 줄이었지만... 사람들이 음악까지 틀어놓고, 그 상황을 즐기는 듯한 모습은 언뜻 신기하기도 하고 제 사고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신 차리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튜터에게 오후에 본 광경을 말했고 그와 나눈 아주 짧은 대화는 저의 소중했던 꿈을 포기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저와는 한 살 차이로 늘 저를 bro라고 부르던 그 친구는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머금고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Lloyd: Bro~ 오늘 월급날이잖아, 가족들하고 맛있는 저녁 먹어야지.
나:......
망치로 뒤통수를 크게 한 방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의 내가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불만족한 삶을 선택했음을 순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날 그의 한 마디에 어찌 보면 다소 허무맹랑했던 꿈을 깨끗이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만족하는 삶
그래서 '당신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제는 돈을 맹목적으로 좇지 않고 거기에서 이전과는 다른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눈을 낮추고 주변을 돌아보면 그곳에는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행복이 있다.
Photo by Denise Jones on Unsplash
그리고 2021년에는 직장도 포기했습니다. 포기당했다가 맞는 표현일까요? 이번의 포기는 저에게 어떤 성취감으로 되돌아오게 될지 사뭇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