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 함 바흐트 쿠스헤!
이미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 말하는 사람들의 얘기에 얼마나 동의하나요?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자각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더 가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더 많은 돈, 더 좋은 직장, 더 넓은 집, 더 똑똑한 자녀. 행복을 미래로 유보한 채 현재를 저당 잡힌다. 과거의 내 모습이다.
지금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정작 중요한 건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제대로 자각’하는 일인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의 낯설게 보기.
일상의 사소한 것들 속에서
“이미 충분한 나”를 마주하기.
행복은 새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다시 보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느끼지 못했을 뿐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은 걸 가지고 있다. 문제는 부족함이 아니라 무감각이었다.
지금 이 순간, 삶과 사랑과 상처를 허하라
많은 시간을 내일을 걱정하며 오늘을 흘려보낸다. 어제의 상처를 끌어안은 채 오늘을 벌로 삼는다. 그리고 말한다.
“괜찮아지면 행복할 거야.”
과거의 내 모습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은 자유롭다. 지금을 사는 사람만이 자기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
괜찮아져야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행복할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괜찮아진 것이다.
지금 여기, 삶이 주는 선물은 바로 이 감정, 이 숨결, 이 불완전함 안에 있다. 우리는 완벽해서 사랑받는 게 아니라, 살아있기에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상처는 인생의 출석 도장이다. 살았기에 아팠고, 아팠기에 성장했다.
진짜 행복은 온전히 살아 있는 나를 마주하는 순간
행복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뜻밖의 순간에 뜬금없는 시간에 찾아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다가, 혼자 걷는 길에서 추억을 부르는 오래된 노래를 듣다가,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주는 소중한 이의 체온이 느껴지는 순간이 그렇다. 그 순간, 나는 확인한다. 아, 지금 나는 살아 있구나.
행복은 놀라움이다.
익숙함 속에서
나를 다시 발견하는 기쁨이다.
행복은 성취가 아니라 생존의 증명이다. 살아 있음 자체가 기적이기에 그것을 하루에 한 번쯤은 느껴야 한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행복은 나중이 아니라 지금에 있다. 행복은 숨어있는 보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각이다. 행복은 내가 찾는 게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생기는 것이다.
✍️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 살고 있다. 자, 오늘도 지체 없이 행복을 선택하겠다 약속하자. 누구에게? 자기에게.
"아즈 함 바흐트 쿠스헤!"
류시화 시인의 <지구별 여행자>에 나오는 말이다. Az Ham Bahut Kushe, '오늘 난 무척 행복하다'라는 뜻이다.
오늘도 溫데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