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한 말

상처 없이 말하는 법은 없다?

by 아마토르

나는 오늘도 말한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회의 중이었다. 딱 봐도 사실과 다른 정보가 당당하게 돌아다니고 있었고, 분위기는 어딘가 이상하게 조용했다.

'나는 왜 침묵했을까?

‘괜히 나섰다가 민망해지면 어쩌지?’
‘상대방 기분이 상하면 어떡하지?’
돌이켜보면, 그 시절 많은 침묵이 더 큰 불편함을 만들었다. 중간만 가려고 침묵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침묵이 꼭 지혜는 아니고 가장 무책임한 회피가 됐다. 뭐 다 옛날 일이다. 있는 둥 없는 둥 살던 시절.


‘아닌 건 아니다’라는 말이 왜 이리 어렵지? 생각해 봤다. 또 고릿적 시절로 돌아간다. 나는 참 이상한 교육을 받았다.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하면 예의가 없는 사람 되고, 참아야 어른이고, 모른 척 넘어가는 게 배려라고 했다. 입 다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맞을 때도 있지만 입 다문 내 속은 무너지는 건 몰랐다. 침묵이 반복될수록 틀린 건 더 당당해지고, 맞는 건 점점 설자리를 잃었다. 말하지 않아서 생긴 오해, 침묵으로 키운 불신... 이렇게 하다가 망가진 거다.

아니다. 다시 보니 침묵이 문제가 아니다. 말투가 문제였다. 보통은 내용보다 방식이 사람을 상하게 만들었다. 팩트가 칼처럼 느껴질 땐, 대부분 '전달 방식'에 문제가 있다. 같은 말을 해도 깃털처럼 닿게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제가 보기엔 이 부분은 조금 다르게 해석할 여지도 있는 것 같아요.”
“혹시 시간이 있다면 이건 다시 확인해 보고 싶은데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제 경험은 좀 달랐어요.”

이건 지적이 아니라 제안이고, 반박이 아니라 관점의 나눔이다. 말로 사람을 누르지 않고, 함께 성장하는 공간을 여는 방식이다.

"상처 주지 않는 말이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과 먼저 잘 대화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

그래서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한 말을 매일 연습하고 있다. 나다움을 지킨다는 건 침묵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선택하는 거였다.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지금도 쉽진 않다. 말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여전히 몇 번은 삼키고 다듬는다.


혹시 지금,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있는 말이 있나요? ‘이건 아닌데’ 싶지만 꺼내기 어려운 말. 그 말을 꺼낼 수 있는 용기를 천천히라도 훈련해 보면 어떨까요?



오늘도 溫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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