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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기억을 꿰매는 일이다

by 아마토르

"30년이나 됐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

며칠 전 만난 친구에게 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옛날 기억이 필요한데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했더니 돌아온 말이다.

팩트 체크를 몇 가지 하는데, 그가 공부하다 스트레스받을 때, 내 자취방에서 룸메이트가 해 준 계란말이를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하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기억에 없었는데... 그 말에 갑자기 룸메이트가 뭐하는지 궁금해졌다. 어찌 보면 가까운 친구였는데 소식이 끊긴 친구 중 한 명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각자의 기억이 다르다니. 나는 당구장에서 맨날 지고 당구비 낸 기억이 더 생생한데, 자기는 나랑 당구 친 적이 몇 번 없다고 했다.
"이럴 땐 피해자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나?"
내가 아니라고 말하니, 수정한다.
"너한테 이겨서 OO에게 다 갖다 바쳤지."
우리는 이렇게 기억을 다시 조립하고 헤어졌다.


제일 꺼내기 힘들었던 어린 시절 얘기를 초고에 담았다. 집에 돌아와서 돌아보며 이것이 내 진짜 기억인지, 만들어낸 기억인지 궁금해졌다. 확인해 줄 사람은 부모님 뿐인데, 아버지는 어린 날 내 기억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또 한 명의 증인, 어머니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너무나 안타깝다. 왜 나는 어린 시절의 기록을 다 불태웠을까.

아내에게 책에 우리 연애 시절 이야기를 써도 되냐고 물으니 질색하며 반대한다. 장난치며 그대가 울며 불며 나 좋다고 따라다닌 것은 꼭 써야겠다고 하니, 자기는 그런 적 없고 그건 내가 그랬다며 책에 거짓말을 쓰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는 자기가 쓴다 해도 우리 연애 시절 이야기는 쓸 게 한 줄도 없다고, 다시 한번 절대 쓰지 말라고 한다. 자칫 소송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 이 부분은 집필을 보류해야겠다.

같은 시기를 보냈지만, 각자의 기억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어제 친구, 아내와 나눈 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을 쓰며, 퍼즐처럼 흩어진 오래된 기억을 하나씩 다시 맞추고 있다. 왜곡된 기억도 많은 것 같아 조심스럽다. 하지만 분명한 것들도 있다. 대개는 상처로 남은 시간이 그렇다.

글쓰기를 하면 치유가 된다는 말을 다시 한번 경험하고 있다. 당시 기억에 남은 해석을 수정하며 어루만지는 시간이 미래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 되는 듯하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한번 기억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그래서 기록한다. 친구와 헤어지며 했던 말.
"너한테 물린 당구비로 삼성전자 주식을 사뒀으면 지금 너랑 안 놀텐데..."


✍️ 후회도 기록이 있으면 때론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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