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려면 기버가 돼라.”
애덤 그랜트의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를 처음 접했을 때, 나도 그랬다. 억지로 기버인 척했던 적이 있다. 삶 전체를 ‘주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애썼다. 웃기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내 모습이 어설프고 조금은 불쌍하기까지 하다.
‘오늘은 기버로 살아보자!’ 다짐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작은 친절이나 배려에 스스로 뿌듯해하고.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그런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보통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니까. 다만 하나 꼭 짚어야 할 것이 있다면 정말 그 마음이 “온전히 주는 마음”이었을까이다.
이제 진심으로 자문해 볼 시간이다.
“나는 진짜 기버였는가, 아니면 그럴듯한 이득을 바라며 계산기를 두드렸는가?”
고백하건대, 나는 역시 아직 멀었다. ‘돌아오지 않은 것들’을 떠올리며 괜히 서운해지기도 하니까. 사실 나는 손익계산에 능숙한 사람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게 내 밥벌이 도구였으니 더 그랬다. 주고받는 것에 민감했고, 효율을 따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는 ‘진짜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갈망이 늘 있었다. 물론 '언젠가는'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이 문장을 함께 읽어 보고 싶다.
무언가를 받길 원한다면 줘야 한다! 미친 소리처럼 들리는가? 자신이 가진 것을 주면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얻게 된다. 농부는 많은 수확량을 바라며 더 많은 씨앗을 땅에 뿌린다. 미소를 받고 싶다면 먼저 미소 지어라.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해라. 사람들을 도우면 그들도 나를 돕는다. 한 대 맞고 싶다면? 누군가를 쥐어박아라. 사람들에게 돈을 받길 바란다면? 내가 가진 돈의 일부를 나누어라.
생각해 보자. 집착이 우리 삶으로 굴러 들어오는 복덩어리를 가로막는다면 집착의 반대말인 집착하지 않기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의 일부를 내주는 것이다. 베푼 것은 다시 되돌아온다.
사람들은 “평생을 베풀었지만 돌아오는 건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엔 그들은 베푼 게 아니라 계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산과 베풂은 엄연히 다르다.
- 앤드류 매튜스, <마음 가는 대로 해라>
사람들에게 미소를 받고 싶다면 먼저 웃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왜 이토록 어렵게 느껴왔을까?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해야 하고, 도움을 원한다면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치인데 말이다.
힘들었다. 진짜 기버가 되기 위해선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을 위한 베풂’이 아니라 ‘나를 위한 베풂’으로. 결론은 이렇다.
1. 베풂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의 시작이다. 무언가를 나눈다는 건, 내가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내 시간을, 내 마음을, 내 지식을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것은 곧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확신의 표현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 나를 소중히 여길수록 나와 닮은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2. 베풂은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한 시작이다. 타인을 도울 때 우리는 내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을 배우게 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이해하고, 내 안의 새로운 관점을 발견한다. 특히 내가 가진 것을 나눌 때, 그것이 작든 크든, 우리는 성숙해지고 더욱 성장한다. 진정한 기버는 타인의 삶을 도우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도 성장시킨다.
3. 베풂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시작이다. 한 사람의 선의는 결코 헛되지 않다. 작은 행동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고, 그 변화는 연쇄적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진다. 우리가 주는 것들은 되돌아온다. 꼭 같은 방식은 아니더라도, 예기치 못한 모습으로 말이다.
✍️ 기버의 관점을 바꾸면 삶이 가벼워진다.
이제 이런 생각을 해보자. 베풀되, ‘돌려받기를 기대하지 말자.’ 대신, 그것이 내게 어떤 성장을 주었는지를 바라보자. 상대가 아닌 ‘나’를 기준으로 삶을 바라볼 때, 마음이 훨씬 가볍다.
베풂은 일종의 투자다. 모든 투자가 반드시 이익을 내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반드시 자산이 자란다. 그 자산은 ‘나’다. 내 마음, 내 인간관계, 내 인생의 깊이와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주는 사람은 결국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받기 위한 주기’였다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