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지난 모습들을 복기해 본다.
낯선 모임에서, 혹은 비즈니스 미팅 자리에서 통성명을 하며 내뱉었던 첫마디가 뭐였지?
"그냥 회사 다녀요", "이것저것 준비하며 지냅니다"와 같은 말로 자신을 숨기기에 급급하지 않았는지 되짚어볼 일이다.
겸손은 미덕이라 배웠지만, 때로는 그 겸손이 독이 되어 돌아온다. 스스로를 낮추는 것을 넘어 아예 '대체 가능한 부품'이나 '목적지 없는 표류자'로 정의해버리면 세상은 기다렸다는 듯 그 정의에 맞춰 대우하기 시작한다.
"그냥 직장인입니다"라는 말 속에는 '나는 조직의 거대한 톱니바퀴일 뿐이며, 언제든 갈아 끼워질 수 있는 존재'라는 무의식이 깔려 있다. "이것저것 해보려고요"라는 모호한 대답은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불안을 투영한다.
스스로를 'B급'으로 라벨링하는 사람에게 A급의 기회가 찾아올 리 만무하다. 세상은 생각보다 냉정해서, 본인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먼저 나서서 가치를 알아봐 주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내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자신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교만이 아니라 책임감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인지 정의되지 않은 상태는 타인에게 나를 오해해도 좋다는 허락을 해주는 것과 같다.
한 번쯤 '나'라는 브랜드의 슬로건을 수정해 볼 필요가 있다. "라이프 코치입니다" 대신 "고객이 원하는 삶의 시나리오를 쓸 수 있도록 돕습니다"라고 말한다면 한 번 더 나를 쳐다보지 않을까? 수동적인 수용자에서 능동적인 설계자로 위치가 바뀌는 건 찰나다.
세상은 내가 그어놓은 선까지만 들어온다. 내가 스스로를 '어중간한 사람'의 영역에 가둬두면 세상도 딱 그만큼의 정보와 기회만 제공한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를 확신을 가진 전문가로, 명확한 꿈을 향해 정진하는 실행가로 정의하면 주변의 공기부터 달라진다.
자신을 소개하는 말 한마디는 정보 전달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으로부터 받고 싶은 대우를 결정하는 '선언문'이다. 지금은 과정 중에 있을지라도, 과정을 정성스럽게 이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오늘 누군가에게, 나 자신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문장으로 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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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종이 위에 '나를 정의하는 세 문장'을 적어보길 권한다. 그 문장에서 '그냥', '이것저것', '아무거나'라는 단어를 지워낼 때, 진짜 내 삶의 주도권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