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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안 Sep 02. 2021

내 영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외국인 펜팔 친구

나의 영어 이야기

수능 시험과 대학 입학 사이 거의 매일 밤을 새우면서 해외 드라마와 영화를 보았다. 열심히 해야만 했었던 영어 듣기 평가는 그렇게 하기 싫었는데, 해외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것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영어 듣기와 말하기 실력이 조금씩 늘면서 어느 순간 실제 외국인과 대화를 한번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전까지는 인사동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외국인만 멀찌감치 바라보기만 했을 뿐, 실제로 만나거나 직접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었다. 해외 드라마와 영화에서 나올 법한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충동은 걷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스마트폰이나 해외 영상 채팅 서비스 같은 것이 없었지만, 조금 오래된 방법을 찾았다. 바로 해외 펜팔 친구 사귀기였다!


다양한 웹사이트를 찾았지만, 딱히 신뢰가 가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사이버 외교 사절단, 민간단체 "반크"를 알게 되었다. 사실 당시에는 그곳이 국가 홍보와 관련된 중요한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는지는 몰랐다. 그저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온라인을 통해서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놀랍고 신기했다. 


반크 활동 참여 중에 하나인 친구 커뮤니티


그때 당시 정말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친구를 맺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신기하고 너무 재밌었다. 다행히 커뮤니티에 참여한 외국인들은 모두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고, 심지어 사랑한다고 말하기 까지도 했다.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는 못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 친근하게 영어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해외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 영어를 배우기만 했다면, 이메일을 교환하고 실제로 외국인과 영어를 활용해보면서 영어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뒤로 매일매일 새로운 친구들에게 친구 요청을 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이메일을 보냈다. 어떤 날은 너무 많이 보낸 이메일 때문에 이름을 헷갈려서 답장을 잘 못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영어로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처음에는 영어라는 외국어 장벽이 크게 느껴질 줄 알았지만, 사실 그 언어 장벽은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았다. 같은 영어지만 나라마다 지역마다 사람마다 모두 다른 억양과 말투 때문에 분명한 차이는 있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그들의 억양과 말투에 금방 익숙해졌다. 


 

반크 커뮤니티를 통해서 5년 넘게 이메일을 주고받은 펜팔 친구가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살고 있는 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생 로렌, 또 다른 한 명은 칠레 산티아고에 살고 있는 미술을 가리키는 초등학교 선생님 앤지였다. 


영어로 이메일을 한 줄, 한 줄 써내려 가면서 서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때로는 같은 반 제일 친한 친구와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그 순간이, 바로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나만의 것을 함께 이야기했던, 그것도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비로소 영어가 더 이상 영어가 아니라 한국말과 같은 그저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 하나의 언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 그때를 다시 기억해도 그 순간 덕분에 지금까지 영어를 즐기고 잘할 수 있었다. 이는 정말 친한 해외 친구가 있는 사람이나 외국인 커플 또는 부부인 사람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때로는 한국말 보다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논리적이고 효과적일 때가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사는 로렌과는 이메일로 시작해서, 편지지에 우표를 붙여 보내는 진짜 편지도 주고받았다. 구식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음에 드는 편지지와 우표를 직접 고르고 손으로 글씨를 쓰는 정성이 마음에 더 와닿아서 좋았다. 며칠 동안의 기다림과 마침내 편지를 받았을 때의 그 짜릿함, 그리고 편지 봉투를 여는 순간 느껴지는 편지지 향기와 상대방의 정성 어린 글씨체.


이후에 스카이프를 통해서 우리는 마침내 온라인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로렌과의 영상 통화 알람은 대학교 기숙사에서 밤새 공부하고 지쳐 잠들어 버린 내게 모닝콜이었다. 방금 잠에서 깨어나 퉁퉁 부은 얼굴로 "Good Morning, Lauren?"라고 말하면, 그녀는 언제나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Good evening, Chris!"라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로렌은 항상 내가 하는 모든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었다. 한 번도 내가 말하는 영어에 대해서 지적을 하거나 피드백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그녀와의 대화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더 오래 즐길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작은 부탁을 했다. 그녀는 오레오 과자를 좋아하는데, 어느 날 인터넷에서 오레오 시리얼을 보았다는 것이다. 주위의 여러 군데 슈퍼마켓을 가보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는데 한국에서는 쉽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레오 시리얼 3박스를 우체국 택배로 보내주었다.


로렌이 선물해준 주머니 공


칠레 산티아고에 사는 앤지는 처음으로 한국을 직접 방문했다. 그녀의 첫 한국 관광 투어 가이드 역할을 자청하면서 서울에서 반드시 가바야 할 유명한 장소들로 투어 리스트를 만들었다.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한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 어색하고 부끄러웠지만, 어느 한 전통 찻집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펜팔 친구로서의 우정을 금방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여행에서 모든 것이 신기했던 앤지와 마지막 날에도 처음 방문했던 인사동 전통 찻집을 방문했다. 비가 오는 날이 었는데, 우리 모두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해서 창문을 열고 차와 떡을 함께 즐겼다. 앤지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공부했고,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서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영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아무런 공통점이 없을 것 같지만, 이야기를 하면서 발견하는 공통점들이 있다. 비록 앤지도 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두 사람이 만나서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하지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면 오히려 더 재밌다. 영어를 넘어서 스페인어와 한국어도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영어를 배우기보다는, 영어를 직접 활용해 보기 위해서는 해외 펜팔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요즘에는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나 쉽게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다. 하지만, 펜팔 친구는 외국인 친구와 글을 나누면서 보다 천천히 알아갈 수 있다는 아날로그적인 장점이 있다.


물론 둘 다 장단점은 있다. 단순히 영어만 배우는 것이 아닌,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새롭게 알아가고, 그들과 보다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해외 펜팔 친구 하나 정도 만드는 것도 좋다. 만약 친한 친구 관계로 발전했다면 꼭 한번 직접 만나보자. 그 친구의 나라이든, 당신의 나라이든, 아니면 제3의 나라이든, 정말 평생 잊질 못할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Be a stranger who has kindness and compassion for people you've never met 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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