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이야기 EP9
대학교, 대학원, 연구실, 그리고 직장에서 10년 넘게 전기/전자 공학과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다. 대학교를 선택하고 전공을 선택하는 순간에도 사실 어떤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몰랐다. 인터넷에서 각 전공별로 무엇을 공부하는지 찾아서 읽어보았지만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결국 취업이 잘 된다는 공학을 선택했고, 정원을 제일 많이 뽑았던 전기/전자 공학과를 선택했다.
막상 공대에 입학했지만,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수업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알고 싶었다. 공학이 무엇이고, 무엇을 배워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스스로 알아내고 싶었다. 전자공학과 다양한 소프트 웨어와 하드웨어를 공부하는 동아리를 찾아갔다. 공부하는 내용도 어렵고, 선배들도 빡세게 시켰기 때문에 동아리의 신입생은 나를 포함해서 달랑 2명뿐이었다.
동아리 활동은 나의 대학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고등학교 기술 가정 시간에 잠깐 배웠던 납땜을 동아리에서는 일주일 내내 하고, 선배들의 다정한 강요로 어셈블리와 C언어를 배우고, 매일 핫식스를 마시면서 밤새도록 코딩하고 디버깅하고, 그렇게 욕먹고 고생하면서 결국에는 여러 대회에 나가서 함께 상도 받았다. 수업에서 배운 이론을 통해 직접 전자회로를 만들고, 밤새 코딩을 해서, LED 불도 켜보고, 바퀴도 움직여보고, 더 나아가 로봇도 움직여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이 너무 어렵고 힘들지만, 상상만 했던 광경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너무 짜릿하고 행복했다.
이처럼 나는 기술을 좋아한다. 새로운 모델의 핸드폰, 노트북, 자동차 등의 최신 기기를 모으는 취미는 없지만, 그 속에 어떤 기술들이 적용되고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배우고 알아가는 것이 더 재밌다. 최근에는 AI, Machine Learning, Blockchain 등의 다양한 기술들이 활용된 제품과 서비스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기술들의 이론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품과 서비스가 어떻게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러한 최신 기술들이 마침내 외국어 학습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물론 훨씬 더 오래전부터 시작했겠지만, 마침내 최근에서야 그러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내 방 안에서도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과 언어 교환을 할 수 있는 화상 통화 서비스, 특정한 알고리즘을 통해서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나에게 필요한 데이터를 찾아서 제공해 주는 인공지능 서비스, 다양한 언어의 소리를 분석하고 더 자연스럽게 교정해 주는 음성 인식 서비스. 수많은 최신 기술이 접목되어 이제는 오타가 없을 정도로 발전한 기계 번역 서비스.
사실 그냥 이렇게 듣고만 있으면 이해가 안 되는 단어가 있더라도 무엇인가 멋져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 멋짐이 실제로 나의 영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까? 이러한 기술들을 통해서 영어를 더 빠르게 배우고, 더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을까?
물론 학습 자료도 훨씬 더 많아지고, 학습하는 과정도 이전보다 훨씬 더 쉽고 편해졌다. 하지만, 기술을 통한 많은 학습 자료와 쉬운 학습 과정이 오히려 영어 학습에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함께 영어 공부하는 학생 중에 어떤 학생은 다양한 무료 영어 교육 서비스뿐만 아니라, 유튜브 프리미엄, 넷플릭스, 듀오링고, 스픽, 캠블리, 텔라 등의 유료 서비스까지 모두 활용하지만 생각보다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최신 기술의 다양한 서비스를 활용하는데 왜 영어가 늘지 않을까?
Grow bigger through experience than efficiency.
최신 기술로 만들어진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영어를 더 쉽고 빠르게 공부할 수 있다. 특히, 영어 공부를 이제 막 시작했다면 어떤 방향으로 좀 더 효율적으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지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어는 언어이다. 물론 영어를 읽고, 들으면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직접 입 밖으로 말해보고, 손 끝으로 써보면서 경험해야 정작 나의 영어가 된다.
해외여행을 계획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해 본다. 매일매일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도 보고, 영어 회화 책도 사서 읽고, 영어 회화 어플을 통해서 영어 말하기도 연습해 본다. 하지만, 정작 외국 공항에 도착해서 비자 수속을 밟을 때 머리가 하얘진다. 혼자 그렇게 많이 공부하고 연습했지만, 결국에 직접 말하는 영어 문장은 손에 꼽힌다.
하지만, 기죽지 마라! 절대 영어를 잘 못 공부한 게 아니다. 그동안 열심히 잘했다. 하지만, 약간의 경험이 필요한 것뿐이다. 실제로 여행을 시작하고 어느 가게에 들어가서 영어로 인사도 해보고, 레스토랑에서 영어로 음식도 주문해 보면서 조금씩 영어에 편해짐을 느낄 것이다. 포기하지 말고 이왕 어렵게 해외까지 여행 온 거 더 많이 말해보면서 경험해 보자!
아침 등굣길에 출근길에 영어 어플을 통해서 수 십 개, 수 천 개의 영어 단어를 말하고 외우는 것도 좋지만, 교실에 도착해서 같은 반 친구에게, 직장에 도착해서 직장 동료에게, How was your weekend?라고 영어 한 문장을 먼저 말하고 영어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영어가 머리와 입술에 더 오래 남는다.
Learn more from mistakes than accuracy.
음성 인식 기술을 탑재한 어플이 내 영어 발음을 통과시켜 준다. 인공지능 기술을 탑재한 서비스가 내가 푼 영어 시험지에 100점을 표시했다. 기분이 좋다. 하지만, 명심하자. 쉽게 배운 것은 쉽게 잊혀진다. 영어를 배우면서 틀리거나 실수를 하는 것은 사실 좋은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는 틀리고 실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배운 것은 훨씬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영어를 배우면서 틀리고 실수하는 것에 당당해져라! 사실 나도 처음에는 영어 발음이 원어민 같지 않아서, 영어 단어를 잘 못 말해서, 영어 문법을 틀려서 등의 수많은 실수를 할 때마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하지만, 영어를 계속 사용하고 원어민들과 함께 말하고 공부하면서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말을 이미 너무 잘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인데, 제2외국어인 영어를 배우면서 틀리고 실수하는 것은 당연하잖아! 영어 잘하는 원어민, 너는 영어밖에 못 하잖아! 나는 한국어와 영어 둘 다 할 줄 아는 Bilingual이라고! 까불지 마!"
외국인 신분으로 해외에서 살면 가끔 인종적, 언어적 차별을 종종 목격하거나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싸울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훌훌 잊어버리는 성격을 가졌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처럼 위의 주문을 외워보자. 턱은 당기고 허리는 피고, 자신 있게 당당하게 영어로 말하자. 틀리면 어떤가, 우리의 모국어는 한국어이고, 지금 나는 너를 위해 영어로 말하고 있지 않는가.
영어를 한창 배우고 말할 때는 가끔 일부러 틀리고 실수한 적이 있다. 물론 성격이 조금은 nerdy 한 면도 있지만, 내가 직접 틀리고 실수해 보면서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이게 훨씬 더 오래간다는 것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틀렸을 때, 실수했을 때 그 순간은 정말 어디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들어가고 싶지만, 이후에는 그 경험 덕분에 훨씬 더 멋지고 세련된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더 틀리고, 더 실수해 보자. 아무도 완벽하지 않다.
Improve more when learning slowly rather than quickly.
위에서 말한 학생처럼 최신 기술로 만들어진 다양하고 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서 영어를 언제 어디서나 열심히 공부할 수 있다. 컴퓨터, 노트북, 태블릿, 그리고 휴대폰에서 까지도 영어를 24/7 공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끊임없는 인풋에 대해서 영어 실력은 정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방법으로 공부하면 영어가 더 힘들고, 어렵고, 심지어 번아웃이 찾아올 수 있다.
이미 수 차례 들었겠지만, 영어는 매일 꾸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서두른다고 영어 실력이 더 빨리 느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을 공부하기 위해 서두를 필요가 없다. 조금씩이라도 천천히 매일 꾸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여기서 조금씩이라는 것은 새롭게 배우는 내용을 조금씩 설정하고, 나머지 내용으로 이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복습의 중요성을 몰랐다. 아니, 복습을 왜 해야 하는지 몰랐다. 한번 본 영화나 드라마는 절대 다시 보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정말 큰 실수였다. 복습을 통해서 처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도 보이고 오히려 새로운 관점에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영어 문법은 내용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보고 또 보면서 천천히 이해해야 비로소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다. 영어 단어 또는 영어 발음 같은 경우에도 보고 또 보고, 말하고 또 말해야 훨씬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매번 발전된 새로운 기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해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계속해오던 영어 공부 방법을 꾸준하게 유지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절대로 걱정할 필요 없다! 천천히 매일 조금씩 꾸준하게만 한다면 영어 실력은 무조건 는다. 이것저것 간 보면서 중심을 잃거나 거기에 시간, 돈,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더욱이 새로운 fancy 한 기술이 한방에 영어 실력을 높여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은 접어두자. 영어가 조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분명히 그만한 노력을 들일 가치는 있다.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새로운 기술을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너무 멋진 일이다! 하지만, 언어는 결국 사람 냄새나는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활용할 때 비로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A라는 인풋을 넣었을 때, B라는 아웃풋을 기대하는 디지털이 아닌, Hi?라고 말했을 때, How are you?라고 미소 지으면서 상대방의 안부를 물어보는 아날로그.
We learn to speak English to have a conversation with people, not machines.
우리는 기계가 아닌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서 영어를 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