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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 Jul 15. 2023

하고 싶은 일 앞에서 두려움이 올라온다면

셀프코칭 다이어리

코칭을 배우면서 코칭스쿨에서 코칭을 가르치는 일에 동경하는 마음을 품었다.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코칭을 잘하게 되어 누군가에게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 사람을 존재로서 바라보며, 깊은 연결감을 갖고, 변혁이 만들어지는 코칭의 현장에 있는 코치의 모습. 그리고 그 코칭을 배움의 열망이 가득한 후배 코치들에게 알려주는 모습들이 참 멋있다고 느껴졌던 것 같다. 


최근에 다른 코치님 한 분께 이런 질문을 받았다. 코칭을 가르치는 ‘리더’의 비전까지 가지고 있는 거냐고. 나는 이전에도 몇 번 그런 질문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얼버무렸다. 내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걸 하려면 이런 프로그램을 또 들어야 하고, 그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또 선택을 받아야 하니까, 내가 원한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논리였다. 질문을 했던 코치님들은 그저 내가 그 비전이 있는 것인지 물었던 것일 텐데, 지금 보니 이런저런 변명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내 모습이 보인다. 



내 안의 부정적인 목소리, 사보투어


그리고 얼마 전, 한국에서 코칭스쿨의 ‘슈퍼바이저’ 역할을 하는 코치진들을 뽑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듣기만 해도 설레는 일이었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더군다나 나는 요건 중 하나가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 물론 곧 자격요건은 충족될 예정이니 이렇게 저렇게 애를 써보면 응시조차 못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두려움에 대한 어떤 방패막으로, ‘아, 나는 아직 자격요건이 되지 않지.’라고 자기 위안을 하고 있었다.


 ‘그래, 나는 아직 코칭 경력이 그렇게 길지 않지.’
 ‘아, 역시 나보다 경험이 많고 유능한 사람을 위한 자리겠지.’


이와 함께 언어에 대한 두려움도 올라왔다. ‘영어의 유창성’은 항상 나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이미 영어로 코칭 교육을 받아 시험을 보고 자격을 취득했고, 코칭을 하고, 또 코칭을 받고 있으면서도. 올해를 시작하며 다짐한 것 중 하나가 ‘내 영어는 충분하지 않아’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자는 것이었다. 잘하고 있나 싶었지만 나는 또 핑계를 대며 ‘슈퍼바이저의 영어’라는 실체 없는 높은 벽을 만들어 놓고, 내 영어실력은 그 정도가 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는 중이었다.  



두려움을 직시하기 


 두려움은 자신이 결과를 모르고 뛰어나가는 걸 싫어한다. 경계심 없이 살고 너그럽게 수용하는 것을 질색한다. 두려움은 확실성에서 성장한다. 미래를 모르면 – 모르는 게 당연하지, 미래를 어떻게 알아 – 두려움은 최악을 상상한다.

 <자기발견의 힘>, p.136


내면의 두려움이 올라올 때, 가장 쉬운 반응은 회피하는 것이다. 미루고, 외면하고, 피한다. 생길 수도 있는- 그러나 생기지 않을 수도 있는 - 수많은 ‘만약’의 결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것이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된다. 두려움에 직면하기 꺼려하고, 싸우고 싶지 않아 도망가려는 모습이다. 이럴 때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못해’, ‘안 하는 게 나아’, ‘실패할 거야’라는 말 너머에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최악의 결과는 뭐야?


코칭을 받으며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최악의 결과가 뭔데?”


골똘히 생각해 보니 응시했다가 떨어지는 것, 과정을 들어갔다가 최종 선정이 되지 않는 것, 나의 부족함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는 것 정도가 있었다. 말하고 보니 이게 ‘최악’인가 싶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과정을 수료한 후에 나의 어떤 부분이 부족해 당장 선정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시도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더 큰 배움이 있을 것이다. 혹은 약한 부분을 보완해서 다시 시도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에게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도 잠깐 부끄럽기는 하겠지만 드러내지 않으면 성장은 없을 것이다. 



한 번 다른 관점을 가져와 본다면, Spark!


내 안의 부정적인 목소리는 크다. 시도 때도 없이 나와서 나를 주저하게 만든다. 고착화된 관점을 바꾸기 어렵다면 전혀 다른 것을 가져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도 있다. 그때 마침내 눈에 들어온 것은 벽면에 적혀 있던 ‘스파크(Spark)’라는 단어다. 


그저 가만히 그 단어를 느껴본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가정과 실패와 관련된 언어가 떠오를 때와는 다르게 가슴이 뛴다. 내 마음에 스파크가 있다면 흥분되고 신날 것 같다. 빛나는 무언가가 떠오른다. 신나는 일들이 상상된다. 가볍게 팔을 휘두르고 몸을 움직이고 싶다. 


스파크라고 하니 자연스레 좋아하는 영화 <SOUL>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음악이 곧 삶인 조와는 다르게 22는 아무리 유명한 멘토들을 만나도 마음속 스파크가 일지 않고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없어 지구행이 미뤄지고 있다. 조가 22에게 지구에 내려갈 준비가 되었냐고 묻는다. 22는 두렵다고 하며 자신이 스파크를 갖지 못해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조가 스파크는 목적이 아니라고 하며, 준비가 되면 마지막 상자가 채워질 거라고, 22는 ‘Jazzing’을 잘한다고 위로해 준다. 



두렵고 낙담하고 있는 22의 모습(오른쪽, 조와 몸이 바뀐 상태)


Joe: You ready?
22: Huh?
Joe: To come live.
22: I’m scared, Joe. I’m not good enough. Anyway, I never got my spark.
Joe: Yes, you did. Your spark isn’t your purpose. That last box fills in when you’re ready to come live. And the thing is, you’re pretty great at jazzing. 

- 영화 <SOUL>의 대사 중 



길거리에서 Jazzing 하고 있는 22


I am Jazzing! 


그렇다. 22는 길거리에서 소리를 내며 음악을 만들었다고, “I’m Jazzing!”이라고 외쳤다. 조가 보기에 그건 음악도 아니고 재즈도 아니지만, 심지어 ‘Jazzing’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지만 상관없다. 하늘을 보는 것, 걷는 것, 바람이 불어 손 위로 단풍나무 씨앗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 모든 순간 22의 마음에는 스파크가 일었다. 



내가 슈퍼바이저가 된다면?

코치로서 슈퍼바이저가 되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두근두근 설레는 일이다. 무엇이 좋고, 왜 좋은지 설명하기 전에 마음속에서 신남과 기대가 먼저 올라온다. 그다음에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좋아하는 코칭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학습하고, 더 나은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일이 주는 재미와 의미가 아닐까 싶다.


슈퍼바이저가 된다면 좋아하는 일을 해서 기쁠 것 같다. 그리고 뿌듯함을 느낄 것 같다. 그건 어떤 타이틀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일을 하기까지 시도하고, 좌절하고, 또다시 시도하는 그 여정에 대해 스스로에게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내 안의 두려움을 넘어서기

내 안에 자리하고 부정적인 목소리 대신 나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적어본다.



 You are ready!
 You are enough!
 You can do it!


나는 준비가 되었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고, 할 수 있다. 

지금 나와 같이 두려움이 올라와 실행을 주저하는 모든 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여러분은 이미 준비되었고, 지금 이대로 충분하며, 잘할 수 있다고. 




7월 14일, 슬로바키아에 계신 Viki 코치님께 해당 주제로 코칭을 받았고, 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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