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다운 육아
그림책 <느끼는 대로>의 주인공 레이먼은 그리기를 아주 좋아하는 친구다.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든 그린다. 어느 날 그의 꽃병 그림을 보고 형 레온이 “도대체 뭘 그리는 거야”라며 비웃는다. 레이먼은 화가 나서 똑같이 그리려고 애쓴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화가 나서 종이를 집어던진다. 형이 비웃었던 꽃병 그림을 동생 마리솔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야. 꽃병 느낌이 나는 걸”이라고 말한다. 다시 가벼워진 레이몬은 그리기를 시작한다. 이젠 ‘느끼는 대로’ 그린다. 느낌에 따라 그림은 시로도 바뀌고,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햇살을 즐기는 자유로도 바뀐다.
좋은 그림책은 내 삶의 한 면을 보여 준다. 살면서 내 주변엔 레온이 더 많았다. 그 레온들의 꾸짖음에 잔뜩 위축되어 살아온 나는, 강한 척 나를 포장하거나, 내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내줘버리곤 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론 언제나 마리솔을 갈구했다. 모자라고 연약한 나를 믿어주고 내 재능을 알아봐 줄 은인이 짠하고 나타나길 얼마나 바랬던지. 마리솔이 나타나면 ‘내 느낌대로’,‘내 모습대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나 보다.
나는 마리솔 대신 코칭을 만났다. 코칭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답은 네 안에 있다.” 밖으로만 향하던 시선을 나에게로 돌린 건 그때부터였다. 고민이 생기면 나에게 물었다. 나만의 강점과 가치를 알게 되었고, 내 안의 못난 나와도 조금씩 화해를 했다. 인정받지 않아도 심지어 비난받아도, 나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알았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도 충분하다는 것을 나는 점차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니 육아를 하면서도 나는 당연히 답을 내 안에서 찾았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주변에서 다 하는 대로가 아니라, 가장 ‘나다운 육아’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기 아닌 모습’으로 사느라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아이의 자기다움을 지켜주고 싶었다.
아이는 지금 여섯 살, 나도 엄마로서 여섯 살이다. 엄마로 살아온 지난 5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의 자기다움을 위협하는 것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건 사야 돼’라며 소비를 부추기는 대형마트, 최고의 육아법을 제시하며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육아전문가와 육아서들, 엄마를 혼내고 무시하는 미디어, 그리고 남편을 붙잡아두는 회사, 엄마나 아내로서의 도리를 강요하는 어른들, 무엇보다 경쟁과 비교 속에서 바쁘게 흘러가는 대한민국 사회.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삶을 빚어나간다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지혜란, 우리 행동의 장단기 결과를 알고, 최대의 장기 이익을 얻는 길을 선택하는 자질이다. 갖가지 장애에도 불구하고, 가장 헌신하려는 일에 집중하고 자기 가치관을 고수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럴 때 장기적으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크리스토퍼 K. 거머, <나를 위한 기도, 셀프컴패션 中>
그럼에도 나는 이 길을 선택했다. 나는 우리 부부가 앞으로 더욱 자기답게 살기를 원한다. 내 아이도 자신의 고유한 모습으로 살길 바란다. 이 글은 한 여자가 엄마가 되어서도 자기답게 살기 위해 애써온 지난 5년간의 기록이다. 여기엔 그간의 시행착오와 고충, 그리고 배움이 담겨 있다. 이 기록이 자기를 잃고 사는 엄마들, 내가 좋은 엄마인가를 고민하는 엄마들, 세상이 말하는 완벽한 엄마의 기준에 맞추느라 너무 애쓰는 엄마들에게 작은 위로와 작은 통찰을 주면 좋겠다.
by 지혜코치
목차
0. 프롤로그
1. 난임의 추억
2. 뜻밖의 출산
3. 엄마 신고식
4. 독박육아
5. 불안한 사회
6. 사라진 '나'
7. 초보엄마의 일탈
8. 미친 도전
9. 육아가 키워준 능력들
10. 좋은 엄마의 요건
11. 몸의 반란
12. 몸과의 대화
13. 내 안의 아이
14. 작은 육아
15. 남의 편? 내 편?
16. 결혼단상
17. 엄마의 내향성
18. 무조건적 사랑
19. 엄마 폭발
20. 엄마의 셀프코칭
21. 아이의 기질
22. 유아사교육
23. 아이의 독립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