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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코치 Mar 31. 2017

4. 독박 육아

엄마에겐 마음을 나눌 친구가 절실하다.

소위 말하는 ‘독박 육아’를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남편은 가정적인 편이었고, 우리는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이었으며, 귀하게 얻은 아기이기에 남편이 저절로 ‘딸바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의 그런 변화는 나의 헛된 상상이었을 뿐이었고, 더욱이 회사는 남편을 놓아주지 않았다.


남편의 출산휴가는 5일로 끝이었다. 그나마도 2012년부터 3일에서 5일로 늘어난 혜택이었다. 조리원에서도 줄곧 혼자였고, 퇴원하고 나선 친정엄마와 둘이었다. 친정엄마마저 내려가시고 나선 아이를 돌볼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모든 책임이 나의 것이었다. 아기띠로 맬 수 있게 된 100일 정도까진 거의 집 안에만 있었고, 그 뒤로도 아기띠 매고서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남편의 직급은 차장. 중간관리자 역할이었지만, 아래에 팀원들은 없었다. 성과는 성과대로 내야 하고, 그에 필요한 자잘한 업무들까지 혼자 도맡아서 해야 했다. 남편도 집에 와서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지만, 그렇다고 가족의 ‘밥벌이’를 등한시할 수는 없었다. 남편은 가장의 책임을 다하느라 가정에서의 책임은 소홀해야 했다. 세끼 밥을 밖에서 해결했고, 아이와 내가 잠든 다음이면 집에 들어왔다. 집에 머무는 내가 육아 외에 살림까지 도맡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주말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주말이면 그는 대체로 피곤해했다. 5일간의 격무로 그의  육아 스킬은 0으로 리셋되곤 했다. 집에선 천기저귀를 쓰곤 했는데, 돌 때까지도 순서를 잘 몰라서 천기저귀-> 바지 -> 기저귀커버 순으로 입히기도 했다. 여러 번 말해줘도, 여러 번 해봤어도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는 남편을 볼 때, ‘고의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눈을 흘기며 쳐다보는 나에게 그는 ‘해도 잔소리야’라는 눈으로 쳐다봤다.


가끔 EBS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스웨덴이나 덴마크의 ‘라테 파파’ (카페라테를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육아를 전담하는 젊은 아빠들을 일컫는 말)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아기 목욕은 아빠가 시켜줘야 아기의 사회성이 커진다는 뉴스 기사는 ‘남편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더욱 부채질했다. 교사 남편을 둬서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 부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직원들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 짜내는 대한민국 기업의 척박한 근무환경이 원망스러웠다. 그 문화가 바뀌기 전까지 이렇게 계속 ‘저녁이 없는 삶’, ‘아빠가 없는 가족’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답답했다.


육아와 살림에서의 물리적인 도움, 아기에게 일어난 소소한 이야기들에 대한 공감과 대화, 엄마로서의 고민에 대한 조언.. 이 모든 것을 남편에게 기댔으니, 그는 그대로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 기대를 채워주지 못해 미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가 부모님이  지방에 사시고, 형제들도 육아와 일로 바쁜데 나에게 기댈 곳이 어디 있었을까. 친구라도 만나고 싶지만 미혼이거나, 너무 멀리 살았다. 문화센터는 나 같은 내향적인 성격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일찍부터 발을 들이지 않았다. 세 집 건너 우리 아기와 개월 수가 비슷한 아기가 살았지만 그 집 아기를 보는 60대 도우미 이모님과 ‘친구’로 발전하긴 어려웠다.


가장 끔찍한 빈곤은 외로움과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 마더 테레사


많은 날을 아기 외에 그 누구와도 말 섞지 않고 지냈다. 찾는 이 ‘택배 아저씨’뿐이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우습지 않았다. 남편이 간혹 일찍 퇴근한다고 하면 그 시간만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아기를 안고 지하철역까지 마중 나가는 건 기본이었다. 그렇게 기다렸는데 갑자기 일 생겼다고 하면 어찌나 야속하던지. 남편이 일찍 퇴근하는 특별한 날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나는 아기를 재우고 적막한 집에서 미드를 보며 새우깡을 먹었다. 고민이 있거나 사야 할 게 있으면 그저 인터넷을 뒤졌고, 그것이 유일한 소통의 창구였다.


아기가 8개월 즈음되었을 때 남편은 경력개발을 위해 이직을 했다. 옮겨간 회사는 서울 반대쪽 끝이었다. 남편은 더 일찍 나가고 더 늦게 들어왔다. 얼굴 보기는 더 힘들어졌고, 내 감정은커녕,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그는 너무 피곤했다. 나는 더 외로워졌다. 


조금이라도 회사와 가까워져야 했다. 나는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기를 안고 매고 한 시간을 지하철을 타고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길은 고됐지만, 남편 얼굴을 좀 더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고된 줄 몰랐다. 남편이 이 먼 길을 매일 다녔구나,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아기가 지하철에서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도 좋았다. 가끔 불쑥 아기를 만지거나 핀잔을 던지는 어른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예쁘다”, “고생한다” 덕담을 건넸다.


몇 군데의 부동산을 가보았고, 그 중 한 군데가 유난히 아기와 나에 대한 배려가 컸다. 먼길 혼자 아기 끌고 집 보러 온 것에 대해서 ‘장한 엄마’라고 치켜세우셨고, 아기 간식으로 고구마며 과일을 먹이는 것에 대해 ‘재래식’-건강한 먹거리라는 뜻일 게다-으로 잘 키운다고 칭찬하셨다. 아기가 몇 걸음 걷거나 미소라도 지으면 “예쁘다”며 환호성을 지르셨다. 칭찬과 애정 어린 관심만큼 사람 마음을 활짝 여는 게 또 있을까. 특히나 사람이 고팠던 나는 그분들의 친정엄마 같은 대접에 반해 그 부동산에 몇 시간씩 머물렀다. 매물 정보를 듣고, 중간중간 아기 기저귀를 갈고, 똥 묻은 엉덩이까지 닦아 주었고, 결국 빠른 시간 내에 계약까지 성공했다.


이사를 가고 독박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예상과 달리 남편은 회사가 가까워졌어도 집에 머무는 시간은 비슷했다. 출퇴근 시간이 줄어든 만큼, 일을 더 많이 한 것이다. 그저 아기가 아플 때,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10분 안에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독박 육아의 해결책이 ‘남편의 변신’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돌파구는 뜻밖에 ‘이웃’이었다. 이사 오기 전 아파트는 놀이터-모래놀이터였다-에 나가도 아무도 없었다. 서너 시쯤 아이들이 몇 명 나오긴 했지만, 비어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놀이터 뒤편에서 중학생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피우는 담배 냄새도 고역이었다. 놀이터가 아니고서야 이웃을 만들 기회는 잘 찾아오지 않았다.


이사 온 아파트는 비록 오래되었긴 하지만 세대가 컸고 (1500세대) 아이들이 많았다. 놀이터는 대체로 북적거렸고 거기서 또래 아이, 또래 엄마를 만날 기회가 자연스럽게 주어졌다. 형편도 비슷하니 서로 눈치 볼 것도 없었다. 몇 번 이야기를 나누다 잘 맞는다 싶으면 집으로 초대했다. 운 좋게 다시 초대를 받으면 서로의 집을 드나드는 사이로 발전했고, 아이들끼리 트러블이 있거나 육아관이 너무 다른 게 아니면 만남이 이어졌다.


남편과는 ‘내 아이’를 공유하는 사이지만, 또래 아기 엄마들과는 ‘육아 경험’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또 다른 공감지점이 있었다. ‘내 아이가 뭔가 이상한가’ 싶을 때 다른 아이도 똑같은 행동 양상을 보인다는 걸 알면 ‘아 그럴 때인가 보구나’ 싶어 위안이 되었다. 그때부터 다른 엄마들과의 어울림은 내 육아 인생에서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왕이면 비슷한 육아관을 가진 엄마들과 어울리면 어떨까 싶었다. 출산하고 나서 오래간만에 자연출산 카페를 찾았다. 그 카페에 종종 올라오는 ‘자연출산 성공했어요’라는 글들을 보기가 힘겨워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곳이었다. 그곳에는 자연육아와 애착육아를 지향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밖에서는 무통도 거부하는 독한 엄마, 천기저귀 쓰는 유별난 엄마로 보일지 모르지만, 난 그들의 소신이 좋았다.


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가 드세고, 경쟁이 과열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신만의 육아 철학’을 지켜나가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이제 갓 돌 지난 아기 엄마에게 철학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하다. 철학은 현실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검증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만의 지향점은 있었다. 그 지향점이 철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는 안전지대가 필수다. 그 카페 엄마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그런 안전지대 역할을 해주었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 그것은 외로운 엄마들에게 생존을 좌우할 수도 있는 필수조건이 아닐까?


by 지혜코치




이사오기 전 놀이터에서 혼자 노는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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