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바뀌어야 엄마가 산다.
엄마가 되면 당연히 내 아이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 진다. 몸에 직접 닿는 거니 발진 안나는 순한 기저귀, 물고 빠는 것이니 유해물질 없는 안전한 장난감, 뼈와 살을 직접 구성하는 것이니 농약이나 성장호르몬 안 들어간 유기농 먹거리 등등, 뭐 하나 살래도 이리저리 살펴보고 알아본다. 처녀 때는 관심도 없던 유기농과 무기농의 차이도 알게 되고, 제품에 깨알같이 적힌 성분과 원산지도 꼼꼼히 살핀다.
그렇게 많이 알아보고 사는데도 가끔씩 터지는 유해한 어린이 제품 기사에 가슴이 철렁하다. 2013년 TV 프로그램 소비자고발에 놀이매트에 대해 방송이 되었을 때 엄마들 인터넷 카페엔 난리가 났다. 어느 제품이 문제가 있는지 회사명이 소개되지 않았기에 저마다 문제 제품이 어느 브랜드인지 알아맞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같은 해 코스트코에서 판매되는 세레스 주스는 무설탕, 무방부제, 100% 천연과즙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기준치의 4배에 해당되는 납성분이 검출되어 엄마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좋은 재료로 만들었다니 믿고 구입했는데, 엉뚱하게 납이라니. 엄마들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뒤이어 세레스 주스 수입업체인 에스코 인터내셔널에선 MBC의 방송보도가 잘못되었으며 세레스 주스가 국내 기준치는 물론 국제기준치를 준수하는 안전하고 건강한 주스라며 육아 커뮤니티에서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각기 다른 주장들 사이에서 엄마들은 진실을 가리기 어려웠고, 어디를 믿고 어떤 제품을 사야 할지 혼란만 커졌다.
정치에도 사회에도 별 관심 두지 않고 살아왔던 나였다. 하지만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동안 무관심해서 몰랐을 뿐, 이 사회에는 믿지 못할 일들이 수없이 많은 안전사고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세월호 사건부터 시작해서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 고양 버스터미널 화재사고, 장성 요양병원 화재사고, 22사단 GOP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고, 광주 헬기 추락사고 등이 일어났고 그다음 해엔 메르스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11년에 뉴스화 되어서 5년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사망했다고 확인된 수는 무려 239명이다. 대부분 영유아 혹은 임산부이다. 더 깨끗하게, 더 건강하게 살려고 구매한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폐가 굳어가고 급기야 피를 토하며 죽어가다니. 이런 일이 어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믿을 수 없는 일을 겪으며 나의 불안은 커져갔다. 유해성분을 잔뜩 넣어놓고 인체에 안전하다고 속여온 제조사를 어찌 믿을 수 있으며, 15마리의 쥐 중 13마리가 사망을 했는데도 별 문제가 없다고 연구자료를 위조한 연구기관을 어찌 믿을 수 있으며, 이 사건으로 피해자들이 1인 시위를 하고 정부를 고소하고 있는 와중에도 특별 할인가로 대량으로 유통시킨 대형마트들을 어찌 믿을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사건 발생 6년이 지나서아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제조사와 유통업체에 겨우 몇천만 원의 벌금을 부여한 정부를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눈앞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세 돌짜리 아이를 지켜봐야 하고, 그 후 1년 뒤 기적처럼 둘째 아이를 출산한 아내를 같은 질병으로 잃을 뻔하고, 생업을 포기하고 그 아내를 간병하지만 수술비만 1억 8천만 원, 매달 수백만 원의 병원비. 그러나 그 책임을 오로지 개인이 져야 하는 그런 상황. 이런 일이 그저 남의 일이 아니라 당장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데서 엄마들은 지금 발 딛고 있는 일상에서도 불안에 얽매이게 된다. 아직 모르고 있는 유해물질이 우리 집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아이를 잘 키워보자고 공들인 일이 오히려 아이를 아프거나 죽게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개인의 비극에 대해서 사회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불안. 우리는 이렇게 불안에 잠식당하고 있다.
어린이집도 예외가 아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어린이집 학대 사건은, 보기에 겁날 정도로 잔인하다. 선생님 손에 아이가 나가떨어지는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심장이 쿵쾅대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먼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이사로 어린이집을 알아볼 때 유일하게 한자리 있다는 어린이집이 몇 년 전 아이들에게 수면제를 먹여 낮잠을 재워 뉴스에 나온 곳이라는 걸 들었다. 원장만 바뀐 채로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니, 섬뜩하다.
배타 기도 불안하고, 지하철 타기도 불안하고, 버스 타기도 불안하고, 군대 보내기도 불안하고, 요양병원에 부모님 모시기도 불안하다. 방사능 걱정에 표고버섯이나 해산물 먹기도 불안하고, 미세 먼지와 황사 때문에 나들이 나가기도 불안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맞고 오지나 않는지도 불안하다. 온통 불안이다. 맘 놓고 아이를 키울 수가 없다. 도대체 불안해서 이런 나라에 어찌 살겠는가?
그런 엄마들에게 누군가는 뭘 그렇게 불안해하냐고, 엄마가 그렇게 불안해서야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겠냐고 한 마디씩 한다. 방사능이나 화학물질 무서워서 먹거리를 따지고 유기농을 고집하면, 뭘 그렇게 유난이냐고, ‘어차피 크면 다 먹게 된다’, ‘그런 거 먹어도 안 죽는다’고 혀를 끌끌 찬다. 엄마가 강해야 한다는 말, 엄마가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한다는 말, 유난 떠는 엄마들이 문제라는 말은 사회 안전망에 조금이라도 신경 쓴 다음에 하면 좋겠다. 세상이 요지경이 되었는데, 불안하지 않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불안을 애써 감추는 쪽과 불안한 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쪽, 우리는 어느 쪽을 가고 있는가?
by 지혜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