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혜코치 Mar 31. 2017

7. 초보 엄마의 일탈

누구나 딴짓이 필요하다. 엄마도 예외는 아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변화에 대한 갈망이 차오르고 있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나를 움직였다. 나는 2013년을 며칠 안 남겨두고 자연출산 카페에 충동적으로 글을 올렸다. 

                         

이제 2013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아이 키우다 보니 크리스마스도 남의 일, 연말도 남의 일..
송년회 때문에 남편이 늦을 때가 잦다는 것 빼곤
올해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 와 닿지가 않아요.
가끔 라디오 듣다가.. 올해가 며칠 안 남았는데 좀 돌아봐야 하는데.. 이런 생각 들다가도
아이 돌보고 집안일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훌쩍.
늘 다이어리를 쓰고 새해 다짐을 적던 저였는데,
아이 키우다 보니 이런 건 어느새 사치가 되어 버렸네요.
그러다가 오늘 문득 
혼자 하려니 자꾸 미뤄지고 이러다 내년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하여 저와 함께 2013년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축하하고,
발전된 새해를 계획하며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서로를 응원할 동지들을 찾습니다.



모임까지 3일밖에 안 남았고, 1년 동안 참가할 의지가 있는 사람만 신청 가능하다고 까다롭게 굴었지만 열명이 금세 찼다. 모두 돌 전후의 아기들을 키우는 초보 엄마들이었다. 생전 만나보지도 못한 엄마들을 위해 그것도 내 집까지 개방하며 무료로 진행되는 3시간짜리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나는 무척 설레었다. 성인 대상 워크숍만 해봤었기에, 아기들과 집에서 하는 워크숍이 어떻게 흘러갈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무슨 배짱이었는지 하나도 겁이 나질 않았다. 이 대신 잇몸이라고 프로젝터가 없으니 PPT 대신 벽에 전지를 붙였다. 당시 유행하던 ‘응답하라 1994’를 패러디해서 ‘Enjoy 2014 – 엔사’라고 이름도 붙였다. 


워크숍 날이 되었다. 나는 부지런히 쓸고 닦았다. 함께 먹을 귤과 고구마를 차려놓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아이는 엄마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지를 아는지 혼자서도 잘 놀았다. 한두 명씩 들어왔다. 어색함이 감돌았다. 그러나 엄마들이 누군가. ‘아기’ 이야기 하나로 금세 언니 동생 되는 ‘친화력’을갖춘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는 이내 이야기꽃을 피웠고, 준비한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한 해 잘한 것은 무엇인가?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 지난 해가 나에게 남긴 교훈은 무엇인가? 앞으로 바꾸고 싶은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새해에 집중할 역할은 무엇인가? 집중을 위해 무엇을 덜하고 안 할 것인가? 이 여섯 개의 질문을 순서대로 던졌다. ‘답은 내 안에 있다’는 코칭의 기본 명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엄마들은 질문에 답하면서 스스로 자기 안의 지혜를 꺼내었다. 그 지혜를 나누면서 우리의 시간은 따뜻해져 갔다.


기어 다니고 우는 아기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장난감이 굴러 다니고 중간중간 수유를 해야 했지만,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아이’ 말고 ‘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만인가? ‘육아용품’, ‘단유’, ‘이유식’ 같은 단어 말고, ‘내 삶’, ‘내 욕구’란 말을 입에 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다니, 얼마나 달콤한가! 워크숍을 마치고 나는 오래간만에 차오르는 충만감에 젖었다. ‘난임’과 ‘육아’로 중단했던 일을 오랜만에 다시 하니, 그렇게 신선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간 엄마들에게 과제를 내줬다. 새해 이루고 싶은 목표 제출하기. 엄마들은 무엇을 적었을까?


영어  동화책 500권 읽고, 새로운 단어 1,000개 외우기, 생활비에서  100만 원 저축하기, 사이버대학 수업 전공, 복수 전공 A 이상 받기, 영어로 말하기,  감정조절 능력 키우기, 정리정돈 습관 들이기, 평일 가족 하루 생활 리듬 만들고 기록하기, 우쿨렐레 레퍼토리 50곡  외우기, 매주 토요일에 부부가 함께 책 읽고 토론하기, 책 20권 독후감 쓰기, 남편과 하루 1시간 눈 맞추기, 텃밭 가꾸기,  명상하기, 요가와 댄스로 매일 운동하기, 건강한  엄마로 서기, 남편 세워주고 격려하기


엄마로서의 목표도 있었지만 삶의 다른 영역에서의 목표도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조화와 균형이 있었다. 그 만남은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세 시간씩 일 년간 이어졌다. 우리는 매달 만나 지난 한 달을 돌아보고 새로운 한 달을 그려보았다. 연초에 목표한 것 대비 현재 어느 정도인지를 따져 보았고, 현재의 고민과 해결책에 대해서도 나누었다. 미래의 꿈, 삶의 균형, 삶의 가치, 강점과 그림자도 다루었다. 나는 약간의 이론과 질문을 준비했을 뿐, 그 모임을 채워간 건 엄마들이었다. 누군가와 깊이 있게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 외롭고 지치는 현실 속에서도 다른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그녀들의 간절한 열망이 모임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매달 갖는 3시간짜리 모임은 시간이 늘 부족했다. 신데렐라가 구두를 흘리며 도망치듯, 졸려 떼쓰는 아이를 들고뛰는 아쉬운 작별이 이어졌다. 우리는 좀 길게 만나기로 작당을 했다. 1박 2일 근교로 워크숍을 떠난 것. 아이들을 풀어놓고 놀릴 수 있도록 국립휴양림을 예약했다. 먹고 마시고 노는 여행이 아니라, 적게 쓰고 적게 버리고 배우고 성장하는 여행이므로 음식을 조금씩 준비해오기로 했다.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도란도란 점심을 먹고, 풀밭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숲 속 평상에 앉아 우리는 ‘삶의 균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시간이 훌쩍 갔다. 숙소로 들어가 간단히 된장국을 끓이고 반찬들을 꺼냈다. 먹고 노닥거리다가 9시쯤 아이들을 재우러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잠든 순서대로 숙소 앞 벤치에 모였다. 달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테이블엔 시원한 맥주와 짭조름한 오징어, 그리고 질문 쪽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은 우리는 그 자유로움과 고즈넉함에 감탄했다. 아이들 없이 엄마들만 모인 게, 그것도 야밤에, 이게 얼마만이던가? 어머, 처음이다 처음!!! 우린 이 작은 자유에도 황홀해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내 인생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해 화가 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가 가끔 슬퍼지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쓰는 것은?
지금 내가 20살이고 돈이 있다면  ~을 해보고 싶다.
부모님으로부터 가장 받고 싶었지만 받지 못했던 것은?
내가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는?
완벽하게 할 필요가 없다면 ~을 하겠다.
용서하고 싶지만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간절한 꿈 한 가지는? 
그 꿈이 실현된다면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과거의 한 가지 장면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나는 무엇이 걱정일까?
타인과의 관계에서 겪는 반복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나의 책임은 무엇인가?
최근 나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적은?


각자 질문 종이를 한 장 골라 그 종이 안에 적힌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은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모기에 뜯겨 가면서, 전화가 울리면 숙소로 달려가면서도 우리의 이야기는 몇 시간이고 계속되었다. (아기가 깨면 정해둔 번호로 전화가 오는 어플이 있다. 고마운 어플이다. 전화가 울리면 그 숙소에 해당되는 엄마들이 모조리 100미터 달리기 선수들마냥 뛰어가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진풍경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함부로 조언하지도 위로하지도 않는다. 묻지 않는 이에게 조언하는 것은 폭력이고, 괜찮지 않은 이에게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위로하는 것은 무심한 위선이다. 대신 우리는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답을 얻었다. 마음속 흩어진 생각들이 입을 통해 나오면서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를 하는 행위 자체가 자각의 과정이다. 문제의 자각만으로도 답을 찾는 것의 반은 해결된 셈이다. 답은 모두 우리 안에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좋은 질문일 뿐이다. 


열두 시가 되어 몇 개 안 되는 가로등마저 꺼졌다. 이미 가을인양 공기도 차가워졌다. 그래도 우리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깊어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하늘 가득한 별들과 아름답게 울어대는 귀뚜라미들이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우리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체감을 느꼈다. 한 사람의 고백이 다른 사람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고, 그 깨달음이 그 옆 사람에게 또 반성을 안겨 주었다. 이건 참, 미리 기획하기도 어려운 일인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갔다. 결국 너무 어둡고 추워 숙소로 들어왔으나, 미련이 남아 다락방에서까지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우리는 새벽녘에야 아쉬워하며 잠들었다.


1박 2일의 황홀했던 여행 이후에도 몇 번의 워크숍이 더 이어졌다. 한 달 돌아보기를 할 때 ‘계획한 걸 거의 못했다’는 고백이 자주 이어졌다. 그래도 우리는 외적 성취보다 내적 성장을 중시하며 모임을 이어나갔고, 일 년이 흘렀을 때 우리의 노력의 합은 꽤 뿌듯했다. 어떤 엄마는 영어동화책을 수 백 권 읽었고, 어떤 엄마는 우쿨렐레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또 어떤 엄마는 요가와 명상으로 몸과 마음의 평화에 다가갔다. 영어회화를 꾸준히 공부하거나, 남편과의 갈등 속에서 버티는 힘을 얻었거나, 문득문득 느껴지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이겨낼 용기가 생긴 엄마도 있었다. 나는 이 모임의 진행자이자 최대 수혜자로서 새벽 고요한 시간의 독서를 통해 강의와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마지막 워크숍에선 연말엔 일 년간의 10대 뉴스 발표와 함께 자축하는 시간을 가졌다. 절로 나이를 먹는 생일이 아닌, 어제보다 더 나아지는 걸 축하한다는 호주 원주민 무탄트족처럼 우리는 조금 더 훌륭해지고, 조금 더 지혜로워진 것을 축하하는 촛불에 불을 밝혔다. 


by 지혜코치


1년간의 성장을 축하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6. 사라진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