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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코치 Mar 31. 2017

8. 미친 도전

애도 낳았는데 뭘 못하랴!

엔사 첫 모임에서 내가 새운 2014년 목표는 책 50권 읽기였다. 독서는 20대부터 새해마다 등장한 단골 목표였는데, 이걸 채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걸 갓 돌이 지난 아기를 키우면서 하겠다고? 지금 돌이켜 보면, 어쩜 그런 무모한 목표를 세웠나 싶다. 하여간 그때의 나는 등잔 밑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그동안 미드에 버린 시간을 생산적인 것에 쓰겠다는 열의에 불타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책을 집중해서 읽으려면 한두 시간이라도 연속된 시간을 낼 수 있어야 할 텐데, 하루 중 마땅한 시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아이 낮잠시간은 언제 중단될지 몰라 불안했고, 그나마도 바깥 일정이 있는 날도 들쭉날쭉해서 지속적인 시간 확보가 어려웠다. 밤 시간은? 그 시간은 책을 읽기엔 너무 지친 시간이었다. 십중팔구 한두 페이지 읽다가 잠들 게 뻔했다. 남은 시간은 새벽시간이었는데, 새벽에 일어나자면 약 2년간 굳어진 12시-8시 수면 습관을 통째로 바꿔야 했다.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1년간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은 새벽 외엔 없었다. 


나는 수월하게 습관을 바꿀 전략을 찾았다. 의지로 밀어붙이다간 작심삼일이 될 게 뻔했기에, 시스템과 환경을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전략은, 새벽 기상을 함께 할 동지들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운명처럼 나는 <단군의 후예>라는 프로그램을 마주치게 되었다. 칼 융이 말한 동시성이 이런 것이던가? 우연치고는 나에게 너무 적절했다. 단군의 후예는 새벽 기상과 새벽 활동의 습관화를 통해 꿈을 현실로 만들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100일씩 3단계에 걸쳐 진행되었다. 마침 1월 초에 시작될 예정이라니, 3단계까지 통과하면, 한 해를 꼬박 단군의 후예팀과 함께 새벽 기상 미션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프로그램 안내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함께 하면 멀리 가고, 매일 하면 오래간다.”


나는 당장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신청 동기는 이렇게 적었다. “새벽 기상은 7~8년 전부터 바라마지 않던 목표입니다. 시도는 여러 번 했으나 아직 습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출산과 육아를 지나면서 감히 꿈꾸지 못했는데요. 올해 세운 계획에 새벽 기상이 꼭 필요해서, 단군의 후예에 신청합니다. 아이도 낳았는데 뭘 못하랴!라는 마음으로 도전하겠습니다.” 신청메일에는 저녁에 진행되는 킥오프 모임에 ‘15개월 아기 동반이 가능한지’를 묻는 질문도 있었다.


킥오프 모임에서 지난 선배들의 새벽 기상 스토리들을 듣고 나니, 기상보다 취침이 중요하고, 취침시간을 지키려면 저녁 일정 간소화가 필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차피 저녁 일정이야 아이랑 밥 먹고 재우는 것밖에 없었기에, 나는 시간만 확실히 박았다. 9시 취침, 5시 반 기상. 스스로 정한 기상 시간에 출석체크를 해야 하고, 100일간 80일 이상 출석체크를 해야지만 2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에, 나는 꽤나 긴장했다.


처음 2주일 정도는 벌떡벌떡 일어나졌다. 잠이 부족할 텐데도 새벽에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일종의 각성상태였으리라. 그러나 아이는 갑자기 옆을 비우는 엄마를 찾느라 여러 차례 깼다. 방을 넘나들며 아이를 토닥이느라 책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 잠들었다 싶어 일어나면 다시 엥~ 우는 아기 옆에, 확실히 잠들 때까지 기다리느라 뜬 눈으로 이삼십분씩 버텼다. 일러진 나의 기상처럼 신기하게 아이가 일어나는 시간도 일러졌다. 5시쯤 새벽 수유를 하고 8시경에야 일어나던 아이가 4시 수유, 6시 기상하는 식이었다. 호시탐탐 거실로 나갈 기회만 엿보는 엄마가 불안했는지 실눈을 뜨고 나를 관찰하는 날도 있었다. 습관이 형성되는데 21일이 걸린다더니, 나 역시 정확히 21일째 되는 날 아홉 시 반쯤 잠들고 새벽 4시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그사이 명절이 있었지만, 시댁과 친정에서도 일찍 일어나 책을 읽었다. 그사이 아이의 취침도 규칙적으로 자리 잡았다.


그 1년이 어찌 평탄했으랴. 아이가 아플 때가 제일 괴로웠다. 처음엔 아픈 아이를 재워놓고 어떻게든 내 방으로 와 새벽 활동을 이어나가 보려 했는데, 헛된 욕심이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만 커지고, 진도도 잘 나가질 않았다. 아이가 아플 땐 온통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 그것이 답이었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는 거의 한 달간 새벽 기상이 멈추었다. 새벽 기상이 웬 말인가. 새벽까지 온갖 기사들을 읽으며 우느라 정신을 못 차렸는 걸. 그때 나는 ‘자기계발’과 ‘사회참여’의 우선순위와 참여도에 대해서 진지하게 자문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한들, 사회변화 없이는 무용지물인 것일까? 내 일 아니니 눈과 귀 닫고 내 일상에 충실해야 하는 것일까? 개인과 사회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 두 축을 함께 가져가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년이라는 꽤 긴 시간 동안 나는 내 목표를 놓지 않았다. 끈기가 없다고 자평하던 내가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가장 큰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 덕이었다. 단군의 후예와 엔사. 두 그룹은, 나의 꿈과 계획을 기억하고 지지해주는 훌륭한 ‘후원 환경’이었다. 두 그룹 모두 매달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다녀올 때마다 나는 양껏 충전되어 돌아왔다. 그 에너지는 다음 한 달을 버티는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두 번째는 기록이었다. 나는 모임 때마다 깨달음과 다짐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단군 일지’라는 이름의 일기는, 하루 일과와 새벽 활동, 어려움과 극복 방법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일기를 쓰다 보니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를 찾기가 수월했다. 


1년간의 새벽 독서 끝에 내가 얻은 것은 애초의 계획 이상이었다. 나는 총 54권을 손에 쥐었고 그중 34권을 완독, 16권을 정리, 12권의 ‘인생 책’을 만났고, 97개의 글을 블로그에 올렸고, 7편의 칼럼을 썼다. 그중 한편의 글은 교육잡지에 실리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리고 읽은 책들을 강의로 엮어서 ‘엄친아 (엄마랑 친한 아이) 대화법교실’을 열었고, 엄마들의 요청에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법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목표한 것은 아니었지만, 새벽에 일어나 읽고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하루 2시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 써라. 나머지 22시간은 생업을, 가정을, 친구를, 이웃을 위해 사용하고 단 두 시간은 자신을 위해 쓰자. 그렇지 않으면 시간의 노예가 되리니". 국내의 대표적인 1인기업가이자 변화경영사 상가인 故 구본형 선생님의 말씀이다. 그가 했던 것처럼 새벽 2시간을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은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그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도 수 차례 했지만, 그 도전을 통과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독박 육아’의 한가운데서였다. 


나는 아이를 전적으로 사랑하지만, 그 못지않게 나의 삶도 사랑한다. 아이를 키우느라 나를 방치할 수 없었다. 아이가 크는 동안 나도 크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와의 시간엔 아이와, 아이가 자는 시간엔 나와  사랑을 나눈 것이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 그 말은 진실이다. 새벽의 충만함은 아이에 대한 정서적 몰입을 월등히 높여 주었다. 나는 이제 ‘애 키우느라 암 것도 못해’라는 변명을 벗어 던질 수 있었다.


by 지혜코치


단군일지, 기록은 기억과 성찰의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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