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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코치 Mar 31. 2017

9. 육아가 키워준 능력

엄마는 만들어진다.

육아는 네버엔딩 곡예다. 모우 슈유, 수면습관, 이유식, 식습관, 단유 등등 한고비 넘었다 싶으면 다른 고비가 금세 나타난다. 고개를 넘느라 허덕이곤 하지만, 일단 넘고 나면 한 뼘씩 자라나 있다. 그래서 육아를 育兒 (어린아이를 기름)이 아닌 育我 (나를 키움)이라고 하나보다.


성취감, 그런 건 커리어우먼이나 느끼는 고상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육아에서도 가능했다. 단적인 예로, 어느 날 문득 내 팔이 꽤 강해져 있는 걸 깨달았다. 워낙 팔 힘이 부족해서 어릴 적에 머리 묶는 것조차 중간에 잠시 쉬었다 해야 했던 나이기에 임신했을 당시 가장 걱정했던 게 아이를 제대로 안고 다닐 수 있을까였는데 (그땐 정말 뭘 몰랐지! 이런 건 고민의 축에 끼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아이의 몸무게는 점진적으로 느는지라 팔은 차츰차츰 적응을 해 나갔고, 어느덧 11킬로짜리 아이도 번쩍번쩍 들고 다닐 정도의 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16킬로인 지금은 솔직히 버겁지만). 고맙게도 늘어난 건 팔 힘만이 아니었다. 


우선 육아는 내게 멀티플레이(다중작업) 능력을 키워주었다. 원래 여성이 남성보다 멀티플레이어적인 경향이 있긴 하지만, 정신없이 분주한 육아를 통해 여성의 이 능력은 극대화된다. 한쪽 어깨에 전화기 끼고 친정엄마와 통화하면서, 오른손으로는 아이 이유식을 저어가며, 동시에 거실에서 노는 아이를 곁눈질해가며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 이 정도는 어떤 엄마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별 거다. 왜냐? 이걸 해낼 수 있는 남자는 드물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이유식 휘젓다가 전화가 오면, 전화받으러 가스레인지 앞을 떠나버린다. 그사이 이유식은 끓어 넘치거나 냄비 바닥에 눌어붙어 버리고, 아이는 순식간에 어딘가 부딪혀서 울고 있다. 이런 남편을 한심해하고 구박하는 엄마들이 많지만, 이건 남성들이 부성이 부족하거나 무능력한 게 아니라 여성이 월등히 탁월할 뿐인 것이다. 원래도 우수한 능력인데 육아를 하면서 더 강화되기까지 했으니, 이건 남자들이 백날 노력해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엄마들만의 강점일 것이다.


다중작업이란 꼭 동시에 여러 일을 해내는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며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사소한 것은 지나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짧은 순간 모드를 전환해, 성격이 전혀 다른 여러 가지의 일을 연달아 해내는 것도 다중작업에 해당된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저자 조앤 K. 롤링이 해리포터 첫 번째 시리즈를 쓴 것은 딸의 낮잠 시간 동안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돌아다니다가 아이가 잠들면 곧장 카페로 들어가 글을 쓴 것이다. 아이가 깨면 자연히 글쓰기는 중단되고, 다음 낮잠 시간까지 조앤은 아이에게 집중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유명한 책을 쓰지 않았을 뿐, 우리 엄마들도 그렇지 않은가? 청소기 밀다 기저귀 갈고, 설거지하다가 장갑 벗고 우는 아이 안아주고. 순식간의 모드 전환, 이건 대단한 능력이다. 


더불어 인내심도 늘어났다. 아이와의 동거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인내심을 시험한다. 기저귀 갈다가 전화가 울려서 전화기를 귀에 갖다 대는 그 짧은 순간에 아이는 이불 위에 오줌을 싼다. 공들여서 재워놓고 방을 빠져나와 스마트폰을 보며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기려는 찰나, 십 분도 안 되어 앵~하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빨리 마트 다녀와서 저녁밥 지어야 하는데, 아이는 아파트 화단에서 세월아 네월아 꽃구경 삼매경이다. 낮잠도 안 자놓고선 밤에 안 자려고 버티고, 이미 여러 번 읽은 책을 또 읽어달라고 들이민다. 턱받이 안 하겠다고, 안 흘릴 수 있다고 고집부리며 부스터에 앉기를 거부하다가 결국엔 국이며 밥알들을 온 사방에 흘려놓는다. 이런 과정을 수도 없이 겪으면서 나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들에 조금은 더 관대해졌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법과 현재를 사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한계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이의 저지레에 적응하게 되면서 남의 아이의 저지레도 눈감아 줄 수 있게 되고, 어른들의 작은 실수도 조금은 더 관대해지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웬만한 돌발상황에도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기는 내공이 생겼다고나 할까.


감정조절 능력도 향상되었다. 코치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후로 수년간 가장 많이 매달린 것이 내면 작업이었고 덕분에 많이 향상되긴 했지만, 그래도 육아현장에서 날것으로 드러나는 내 감정을 마주하는 건 또 다른 도전이었다. 과거엔 감정을 그냥 묻어버리거나 혹은 폭발하거나 했던 사람이라도 엄마가 되고 나선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내 감정과 말 한마디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강렬하게 영향받는, 그러나 말도 안 통하고 내 맘대로 되지도 않는 한 생명체가 내 옆에 24시간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강렬한 감정이 휘몰아칠 때는 꼭 그 감정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머물러 보았다. 내가 왜 그러는지 나도 모를 때는 글로 써보거나 믿을 만한 사람에게 털어놓았다. 태어나서 내 말과 행동, 즉 나의 처신에 대해서 이토록 치열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던가? 그런 과정을 거치면, ‘아 내가 그래서 화가 났구나’ 이유를 알게 되고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라고 공감이 되었다. 자기공감을 거친 감정은 표현해도 안전하다. 상대를 할퀴지 않는다. 나는 더 놀고 싶다며 양치질을 거부하는 아이에게 “너 때문에 미치겠다. 혼나 볼래?”라며 씩씩대지 않고 “엄만 지금 쉬고 싶어. 1분만 기다릴게”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비단 이 세 가지 능력뿐이겠는가? 육아가 키워주는 능력은 수없이 많다. 말 못 하는 아이의 마음을 읽다 보니 사람의 마음을 비언어적으로 읽어 내는 능력이 키워지고, 나 아닌 타인의 안전과 생존 그리고 감정에 대한 책임감도 키워지고, 나의 욕구를 잠시 누르고 타인의 욕구를 보살피는 이타심도 키워진다. 말을 시작한 아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스토리텔링 능력이, 아이디어가 바닥나면 이야기를 만들어내다가 창의성과 상상력도 키워진다. JQ (잔머리 지수)는 또 어떤가? 야채를 먹이기 위한 전략들, 집안일하는 동안 혼자 놀게 하기 위한 방법들을 궁리하다 보면 JQ도 늘어난다. 능력은, 하다 보면 키워진다.


“모성은 여성의 뇌를 똑똑하게 만든다.”

-      캐서린 엘리슨, <엄마의 뇌>


애 낳고 나서 기억력이며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엄마들이 주변에 많지만, 캐서린 엘리슨, 그녀가 수집한 수많은 과학적 증거에 따르면 오히려 모성이 여성들의 지적능력을 개선하며 특히 통찰력, 효율성, 탄력성, 동기부여, 정서지능 이 다섯 가지 능력이 키워진다고 한다. 이러한 능력은 육아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차후 직장생활과 인간관계에까지 확장 적용된다고 하니, 그녀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엄마’에 대해서 너무도 많은 고정관념과 자기비하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이 능력들은 ‘타고난 모성'이 아니고, 아빠가 되었든 할머니가 되었던 입양부모가 되었든 양육자 역할을 하는 그 누구라도 키우게 되는 것이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엄마는 만들어진다.’


원래부터 내가 모성이 한없이 흘러넘치고, 인내심이 뛰어나고, 감정조절에 탁월하고, 훌륭한 멀티플레이어였다면, 이렇게 쩔쩔매지 않았을 것이다. 육아는 날마다 끊임없이 내 한계를 보여준다. 내가 얼마나 속이 좁은지, 얼마나 집안일에 서투른지, 얼마나 감정의 파도에 쉽게 휩쓸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계는 다른 말로 성장지점이다. 지금은 힘겹더라도 나중에 돌아보면, ‘아이 덕분에 내가 많이 배웠지’ 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 생각하며 지금의 나를 응원한다. 


by 지혜코치


주방놀이는 기본
집안일 조기교육 중
이 정도 난장판은 애교


 이 정도도 다 기본인 거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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