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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코치 Mar 31. 2017

10. 좋은 엄마의 요건

세상의 기준이 아닌, 자기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나는 아이를 적어도 세 돌까지는 기관에 보내지 않고 끼고 있으려고 했다. 지극히 일 중심적이던 내가 그렇게 ‘육아 모드’로 극적인 전환을 하게 된 데는 난임 외에도 몇 가지 배경이 있었다.


임신 전에 라이프코치로 일하면서 나는 변화를 원하는 이들을 도왔다. 내 열정, 그리고 고객들의 열정과 달리, 변화는 일시적이었다. 불붙었다가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고객들을 보는 것은 괴로웠다. 나는 변화를 스스로 일구는 사람들,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대체로 자존감이 높고, 실패도 그래서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좌절이 와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길을 걸었다. 탄탄한 자기 신뢰, 그것을 어른이 되어서 키우려니 얼마나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던가! 


개인적 배경도 있었다. 4형제 중 가운데였던 나는 어릴 적부터 늘 엄마의 사랑이 고팠다. “왜 나만 미워해”라는 말을 밥 먹듯이 뱉었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도 그럴 것이 네 아이 독박 육아하신 엄마에겐 늘 산더미 같은 빨래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었고, 자식들의 감정을 일일이 보살필 마음의 여유가 없으셨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을 기다렸던 나이기에, 내 아이에겐 충분한 사랑을 주자고 마음먹는 게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마침 아이를 기다리는 2년의 시간 동안 보았던 다큐멘터리와 육아서들은 하나같이 인생 초반의 애착형성과 자존감을 강조했다. 엄마의 자존감이 아이의 자존감에 대물림된다고 했고, 자존감은 아이 의사회 성과 리더십, 학습에서의 성취 모든 것을 가로지르는 ‘마법의 열쇠’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아이의 평생을 가늠할 첫 3년을 위해 내 시간, 내 일쯤 유예하는 건 ‘가치 있는 투자’라고 생각되었다.


귀하게 얻은 아이, 잘 키우고 말리라는 당찬 포부로 육아를 시작한 나에게, 세상이 말하는 ‘좋은 엄마’의 요건은 끝이 없었다. 자연분만, 모유수유, 애착육아부터 시작해서, 아이의 사회성이나 정서지능도 다 엄마 하기 나름이라고 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부모의 길을 선택했지만, 아이는 엄마 혼자 키우는 것 같았다. 남자의 역할, 사회의 협조 그 무엇도 엄마만큼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좋은 엄마’의 기준을 높이는 데 인터넷도 한몫했다. 인터넷 세상 속엔 대단한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끼를 집 밥으로 3찬, 5찬을 뚝딱뚝딱해내는 엄마, 아이한테 화려한 재료들로 다양한 미술놀이를 해주는 엄마, 아이에게 매일같이 그림책을 읽어주고 책을 이용한 활동을 해주는 엄마.. 끝이 없었다. 그런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작아지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나는 ‘좋은 엄마’의 세상적 기준을 맞추려고 나도 모르게 애썼다. 저 엄마가 저렇게 하면 나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고, 이 엄마가 이렇게 하면 나는 왜 이렇게 못하나 내가 한심했다. 그나마 인지학습 쪽은 내 철학과 맞지 않아 처음부터 제쳐 두었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아이에게 돌부터 한글 가리키고, 아기발달을 위해 어린이 체육관이나 문화센터를 일찍부터 보내는 엄마들로부터까지 자극을 받았다면, 내 육아 인생은 후회와 자기 비난으로 점철되었을지 모른다.


‘소중한 내 아이’를 위해 정성을 쥐어짜 내는 엄마들 틈바구니 속에서, 그리고 엄마의 희생과 헌신을 당연시하면서 그 노력과 수고에 대한 인정에는 인색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내가 선택한 엄마로서의 최선은 아이의 첫 3년을 지켜주는 것이었다. 안 벌고 덜 쓰더라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내 손으로 지은 밥 먹이고, 내 손으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러나, 1년간의 새벽 독서는 나에게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알고 보니 나는‘일’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이’만’ 보면서는 충분한 기쁨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나의 지식과 깨달음을 전하는 데서 힘을 얻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없다면 반쪽짜리 인생이었다. 그런 사람이 임신 준비 2년을 포함해 아이 두 돌이 지날 때까지 약 5년간을 아이만 생각하고 가족만 돌본 것은, 이미 그것으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나는 다시 일이 하고 싶어졌다. 사회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고, 돈을 벌고, 도전과 성취를 하고 싶어졌다. 나의 효용가치를 확인하고 싶었고, 단절된 경력을 다시 살리고 싶었다. 그 사이 훌쩍 성장한 동료와 후배들을 보니 가슴에서 뜨거운 열기 같은 것이 올라왔다. 지난 5년간 뒤쳐졌던 나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마침 겨울을 지나고 있었고 2달 정도 뒤면 새 학기인 3월이었다. 나는 3월 등원을 염두에 두고 주변 어린이집들을 알아보았다. 계획에 없던 일이라 주변에 어떤 어린이집이 있는지, 그중 우리 아이에게 맞는 곳은 어디인지 무지했던 나는 지역카페와 육아카페 등을 뒤져서 몇 군데를 추려내 전화를 돌렸다. 그런데 자리가 없었다. 한 군데 자리가 있다는 곳은 ‘낮잠 이후 시간에 아이들을 TV 앞에 방치한다’는 주변 엄마의 말이 있어서 패스했다. 


막상 보낼 용기를 냈는데, 자리가 없다니, 나는 난감했다.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어린이집 환경이나 프로그램 등을 선택한다는 것은 사치라는 걸. 마침 인천에서 어린이집 학대 사고가 터져서, CCTV 설치나 보육교사의 처우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지만, 일을 하는 엄마에겐 어디든 보낼 수만 있다면 감지덕지인 현실이었다.


그래도 어린이집 외에 대안이 없었던 나는 찾기를 멈추지 않았고, 다행히도 -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여파로 원생이 줄어서 - 집에서 가까운 민간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린이집 앞에 아이들이 뛰어 놀 곳도 없고, 나들이 한번 나가지 않고 종일 시설 안에서 생활하는 전형적인 ‘도시형’ 어린이집이었지만, 그걸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특별활동이나 체험학습을 안 할 경우 대안 프로그램이 없기에 선택의 여지없이 따라야 했지만, 그것 역시 다른 좋은 점을 생각하며 눈감고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 아이가 혼자 어린이집에 머물렀던 날이 떠오른다. 아이와 헤어지고 3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아이 없는 사이에 해둬야 할 일이 있어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은행에 다녀왔다. 30개월 동안 아이와 떨어져 본 적이 거의 없었던 나는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날아갈 것 같았다. 그리고 30분 만에 만난 아이가 그렇게 기특하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아이는 비교적 순조롭게 적응했다. 3주 차는 점심을 먹고 돌아왔고, 1달이 지났을 때 낮잠을 시도했다. 원래 한 학기 정도는 점심만 먹고 데려오려고 했는데, 다 낮잠 자는데 우리 아이만 안 자면 소속감을 갖기 어렵다는 선생님의 조언, 그리고 일을 하기에 3시간은 너무 짧다는 현실을 고려해서 3시 반 하원으로 마음을 옮겼다.


아이는 어린이집을 좋아했지만, 나는 3년이라는 시간을 채우지 못한 게 괜히 찔리고 미안했다. 그 미안함은,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졌다. 나는 10분을 1시간처럼 아껴 썼다. 빈 틈이라고는 없는 일상이 전개되었다. 친구를 만나거나, 커피 한잔의 여유, 노닥거리기, 나들이나 휴식 등 남의 일이었고, 동선과 중요도를 고려해서 일의 순서를 배치하는 게 일과가 되었다. 그 와중에 체력이 달리는 게 느껴져 체력을 키우려고 운동까지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일과 육아, 그리고 자기관리까지 3박자를 다 갖춘 엄마가 되어 가는 듯했다.


by 지혜코치


                                               다음의 경우에 좋은 엄마일까, 나쁜 엄마일까?


아이들이랑 신나게 놀아줬는데, 그만 다쳤다.


정성스레 고구마 말랭이를 만들어서 먹으라고 강요한다.


초콜렛은 유해하지만, 아이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한다.


한 겨울에 미끄럼틀에 누워 쉬는 아이를 가만 둔다.



                                           정답 없는 질문,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답이 달라질 질문. 

                                                                  그대의 답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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