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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코치 Mar 31. 2017

14. 작은 육아

당신이 지키고 싶은 육아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우리 집에 오면 놀라는 분들이 있다. “물건이 별로 없다”라고. 맞다. 우리 집엔 없는 게 많다. 침대, TV, 소파 등 결혼할 때 필수로 사는 가구들도 없고, 붙박이 장이 달려 있는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 전까진 장롱도 없었다. 차도 산지 얼마 안 되고 전기밥솥도 있지만 넣어두고 압력밥솥을 써왔다. 가습기, 비데, 공기청정기 없는 건 당연하고 에어컨은 거실에만 작은 게 하나 달려있다. 


요즘 선풍적인 인기인 미니멀 라이프를 의도적으로 지향했던 건 아니다. 지방에서 올라와 모은 돈 별로 없이 결혼했기에 인생 최대의 소비라는 결혼을 치를 때, 혼수 필수품들을 사지 않은 것뿐이다. 특히 TV 없다고 ‘독하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TV는 집에 들이는 순간, 우리 부부가 헤어 나오지 못할 걸 알았기에, 애초에 유혹을 눌렀다. (보고 싶은 건 그래도 스마트폰으로 다 본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소박하게 지내다가 아이가 태어났다. 출산용품 리스트, 육아용품 리스트들이 인터넷에 돌아다녔지만, 우리 부부는 적어도 3년간 외벌이로 살 예정이었기에, 긴축재정을 유지해야 했다. 늘어난 식구를 감당하기 위해 새로운 소비의 기준이 필요했다. 내가 세운 기준은 '우리 엄마가 나를 키울 땐 이게 필요했는가'였다. 세탁기도 청소기도 없이 직접 기저귀 빨아가며 걸레질해가며 서넛씩 키우신 우리의 엄마들, 그분들은 이걸 어떻게 해결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정말 꼭 필요해 보이는 물건들도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유모차와 아기띠마저 거부할 수는 없었지만 대체는 대체로 가능했다.


가습기 대신 수건 적셔서 널고 국민 기저귀함 대신 바퀴 달린 바구니 하나 사서 쓰다가 나중엔 장난감 정리함으로 썼다. 아기욕조 대신 큰 대야 하나 사서 목욕, 빨래 겸용으로 썼고 이유식 할 때도 집안에 있던 식기들 그대로 사용했다. 아이 책은 원래 있던 책장 중 하나를 뉘워서 꽂아줬고, 아이 옷장도 원래 있던 옷장 하나를 아이 것으로 변경했다. 아이 장난감과 옷은 새로 산 게 거의 없고, 물려받거나 벼룩시장에서 구입했다. 


날마다 새로운 육아용품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마트에 가면 물건이 넘쳐나고, 신용카드 한 장이면 원하는 것을 다 살 수 있다. 인터넷은 아이의 발달을 위해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다고 손짓한다. 육아카페엔 “9개월 아기, 장난감 뭐 사줘야 해요?” “4살 아이, 전집 뭐가 좋을까요”라는 글들이 올라온다. 엄마들은 내 소중한 아이가 예쁘게 보이고 부족함 없이 자라도록 아낌없이 쓴다. 소비로 나를 증명하라고 부추기는 지금 시대에, 소박한 육아를 하는 건 어떤 가치가 있었을까?


우선, 소비습관이 건강해졌다. 외벌이로 전환하면서 우리는 수입이 거의 반토막이 났지만, 그래도 대출이나 마이너스 통장 없이 늘어난 식구를 감당했고, 매달 수입의 30% 이상은 저축을 했다. 목돈이 들어가는 가전제품 하나 산 게 없고, 그러니 더 넓은 공간,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변액연금이나 연금저축, 펀드 등 재무설계사의 영업에 현혹되어 가입했던 허술한 상품들도 모두 예금으로 돌리면서 가정 경제의 내실을 다졌다. 지출 예산 범위 내에서 소비하는 습관, 소비를 계획하고 반성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 과정에서 진정 우리 가족이 원하는 것을 분별하는 힘이 생겼고, 소중한 것에 가치 있게 소비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낀 건 돈만이 아니었다. 하나의 물건을 사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던가? 인터넷에서 검색하는데 드는 시간. 수십 개, 수백 개의 제품들의 사용후기를 읽어보고 뭐가 제일 좋을지 궁리하는 시간, 주변에 물어보는 시간, 정했으면 어디가 제일 싼 지 가격 비교해 보는 시간.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필요가 사라질 물건들을 위해 낭비되는 시간, 그 시간들을 얻을 수 있다. 그 시간에 나는 잠을 잤고, 책을 읽었고, 아이를 쳐다봤다. 


적고 단순할수록 좋다.

-       킴 존 페인, <내 아이를 망치는 과잉육아>


페인은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느리고 조용하며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라고 조언한다. 바깥 세상엔 미디어, 정보, 스케줄, 먹거리, 놀거리 모두 지나치게 많으므로 가정에서야말로 덜어내고 줄이고 걸러내서 심심할 정도로 심플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방 하나를 가득 메운 장난감, 거실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책들은 아이의 필요보다는 부모의 불안에서 사들인 것이며, 아이들을 오히려 산만하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그가 제시하는 몇 가지 유용한 육아 가이드라인이다.


-       장난감, 책 등의 물건을 치워서 여유 공간 늘릴 것
-       스케줄을 줄여서 시간 여유 가질 것
-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고 불이 들어오는 장난감 없앨 것
-       실생활에서 쓰는 물건이나 단순한 장난감을 줄 것
-       소비적이거나 과시성의 독서보다 한 두 권 느리게 반복해서 읽을 것
-       비싸고 유명한 곳으로의 여행보다 가족끼리의 오붓한 식사, 산책 등 좋아하는 일상 반복할 것


실제로 화려한 장난감, 거실 책장을 가득 메운 전집들은 아이가 금방 질려한다. 가성비가 아무리 좋으면 뭐하나. 형편을 넘는 소비는 결국 과소비인 것을. 아이를 즐겁게 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키즈카페, 놀이동산, 해외여행, 대형 자동차 장난감, 숲유치원, 이 모든 것들이 주는 즐거움은 잠깐이다. 왔다 갔다 힘들고, 과한 돈만 들뿐 그 화려함은 점점 더 큰 자극을 요하게 되어 있다. 오히려 아이들은 엄마와의 눈맞춤, 이불에서 뒹굴대기, 집 근처 골목길 산책, 가까운 산으로 떠나는 소풍, 엄마의 간지럽힘, 길가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꽃들, 집 앞의 익숙한 놀이터, 이런 작은 것들에서 행복을 느낀다. 이는 돈이나 노력 많이 들이지 않고서도 일상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던가?


물론 세상엔 대단한 엄마들이 많다. 매일같이 미술놀이 해주는 엄마, 아이와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는 엄마, 천기저귀를 하고 유기농 먹거리를 먹이는 엄마, 매끼 서너 가지 반찬을 해 먹이는 엄마, 아이에게 맘껏 책을 사주고 아이가 읽어주라는 대로 한없이 책을 읽어주는 엄마, 엄마표 영어교육을 살뜰히 실천하는 엄마 등. 모두 아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엄마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엄마들을 쫓아갈 필요가 있을까? 아니 쫓아갈 수나 있을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밖을 두리번거리다 보면, 정작 내 아이를 볼 시간이 없다. 남들 쫓아가다 보면 숨 가쁘다. 과정도 결과도 불행하다. 00개월 필수품 사느라 지갑이 비는 육아, 체력도 능력도 안되면서 다리 가랑이 찢어지게 뛰는 육아가 아니라 자기 속도와 가치에 맞게, 자기 능력과 여건에 맞게 작게 육아하면 어떨까? 육아도 조금 더 즐겁고 수월하게, 자기답게 하면 어떨까? 


정신분석가이자 <대한민국 부모>의 저자인 이승욱 씨는 육아의 핵심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따뜻한 응시, 안정적인 수유, 엄마의 품’. 엄마가 애정을 담아 다정하고 따뜻하게 아이를 쳐다보는 시간을 가지고, 울 때마다 주건 시간 간격에 맞춰 주던 한 가지 방식으로 일관되게 수유를 하고, 같이 자면서 스킨십을 많이 하면 아이는 안정적인 정서와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쌓아나갈 수 있다고 한다. 20년 동안 만나온 수많은 내담자들이 사회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결핍되었던 것.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일하는 엄마도, 모유수유 안 되는 엄마도, 자존감 낮은 엄마도, 가난한 엄마도 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었다. 


나 역시 현란한 육아방식들 사이에서 방황할 때가 있었지만, 아프고 바쁠 때도 한 가지는 지켰다. 바로 아이와의 정서적 연결. 나는 무엇보다도 아이의 정서에 관심 가지고 말로 표현해주었다. 나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숲 놀이, 미술놀이, 풍성한 유기농 식단, 책 읽기 등 모두 탐나지만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와 나의 몸과 마음 컨디션에 따라 할 수 있으면 하고 여의치 않으면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아이는 숲에도 가다 말다 했고 미술놀이도 한두 번 해보고 말았다. 또 살림은, 청소도 일주일에 많아야 두 번, 요리도 한 그릇 식단일 때가 많다. 먹거리를 중시하지만 시간이 마땅치 않으면 집 근처 마트 식재료들로 해결했다. 


자신의 가치를 알면,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 선택이 쉬워진다. 그리고 선택해야만 한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된 자원이므로. 한 20년쯤 지나 지금을 돌아볼 때, 무엇이 가장 자랑스럽고 기억에 남겠는가? 엄마로서 가장 즐기고 가장 잘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이는 엄마의 무엇에 가장 고마워할 것인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 한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자. 그래서 엄마 역할에서 중요한 한두 가지를 뽑아내고 그 외에는 가지치기를 하자. 포장과 거품은 걷어내자. 다 챙길 수는 없다. 다 잘할 필요도 없다. 


by 지혜 코치


길가에 떨어진 사탕 봉지 하나도 신기한 녀석.


솔방울은 최고의 장난감.


대박행운. 장난감 득템.


휑한 집. 치울 것도 정리할 것도 없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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