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결코 스펙터클 하지 않다. 우리의 기억 속에만 스펙터클할 뿐.
기억이란 참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누구나 다 스토리텔러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특히 '첫사랑' 에 관한한. 그래서 플롯을 몰라도 누구든 첫사랑 플롯의 작가가 될 수 있고, 유능한 헐리우드 감독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영상미 뿜뿜의 장면을 만들어내고 편집하는 데 능하다.
사람이 태어나 가장 문학적으로 살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첫사랑'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성장소설과 같은 말이다. 굳이 '데미안' 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구든 가슴 속에 자기 자신의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친 성장소설 하나쯤은 기억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활자가 아닌, 생생한 내 경험이 들어간 '첫사랑'이란 제목의 성장소설은 인생에 가장 큰 한줄을 남긴다.
40대, 90년대 학번에게 '건축학 개론' 이 있다면, 30대, 00년대 학번에게는 '너의 결혼식' 이 앞으로 수없이 회자 될 것 같다. 이 영화가 건축학 개론과 다른 서사구조가 있다면, 끊임없이 '첫사랑' 의 키워드가 주인공을 따라다닌 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해도, 취업 준비를 해도, 생활 깊숙이 아주 미묘하게 인생 전반을 차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후반부 남자주인공이 신발에 들어간 아주 작은 돌멩이를 꺼내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면서도 모순되다.
나는 '첫사랑'이 가끔 혓바늘 같은 것이라 여긴다.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가다 한번씩 나는 혓바늘. 그리고 그 혓바늘이 났을 땐, 그것이 성가시고 아프지만 그것을 확인하려 앞니로 괜히 한번 툭툭 건드려 보는 것. 따끔거리지만 이내 사라지면 괜히 서운한 그것.
누가 그랬던가, 책 끝에 손가락을 베였을때, 그 고통이 아무리 미미할지라도, 그 사람에게만큼은 그것이 온 우주의 고통과 같다고. 우리가 '첫사랑'을 하던 바로 그때는 온 우주가 두근거렸고, 온 우주를 사랑했으며, 온 우주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우리는 다시 곧 일상을 찾는다. 끊임없이 나를 현실세계로 불러들이며, 우리는 이내 곧 그 곳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일상적인 삶은 느낌에서 사실로,
위험에서 안전으로의 끊임없는 이행이다.
예술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라면,
예술은 일상적인 삶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이성복 시인의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첫사랑' 이 성장소설이 되고, 예술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첫사랑'을 꺼낼수록, 우리의 일상은 느낌으로 채워지고, 안전했던 내 위치에 진도 3.0 정도의 가벼운 지진이 일어난다.
'첫사랑' 은 참 일상적이다.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하디 흔한 이야기지만, 저자명에 자신만의 이름이 떡하니 들어갈 때, 그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학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