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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브 Dec 25. 2020

집념으로 시작한 러닝, 스물셋

loveyoufivethousand

D-63.43K, 스물셋


운동이란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던 스물셋의 나는 그 해 2월 입소한 의정부 캠프 잭슨이 그렇게도 두려웠다. 소문은 익히 들었고, 일정 수준의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 그리고 달리기를 통과하지 못하면 주말 외박이 잘린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벌써부터 극도의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체력 검정은 늘 처참한 결과를 맞이했고, 배치받은 자대에서의 무기한 트레이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러너 라이프는 주말 외박을 나가겠다는 의지로 시작되었다. 미 오산공군기지의 체육관과 농구코트 2층 트랙을 매일 같이 달렸고, 주말이면 활주로 옆길을 달리며 이륙하는 비행기와 페이스를 맞춰보겠다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렸다. 업힐, 다운힐, 파틀렉, 인터벌 등 지금이야 러닝 용어로 익숙한 훈련들도 그 땐 뭣도 모른 채 미군 군가에 맞추며 죽기살기로 뛰었다.



당시 기준으로 러닝 합격 기준은 2마일을 16분 36초 안에 달리는 것이었다. 어림 잡으면 키로 당 페이스 5분 30초. 물론 지금이야 2마일을 여유있는 페이스로 가볍게 뛰지만 그 때는 그게 그렇게 죽을 맛이었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도대체 왜 거리는 도통 줄어들지 않는 것이며, 새벽 네시반의 공기는 무엇이길래 나를 그렇게 짓누르는 것 같은지 모든 게 뜻대로 달려지지 않았다. 업무가 끝나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 마냥 풀이 죽어 체육관 농구코트 2층 트랙으로 향했고 몇십바퀴를 뺑뺑이 돌면서 나를 제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세상 아련한 표정으로 쳐다보기를 몇 개월.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8년 전 어느 가을 새벽 네시반 나는 차고지의 입구에 서서 2마일 런의 호루라기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15분 언저리가 지난 후 마지막 200m, 나를 무던히도 괴롭히던 미군 상사놈의 응원을 끝으로 외박증을 쥐었다.


나이키 런클럽 앱을 처음 킨 건 그 후로 2년 여가 지난 어느 여름이었다. 즐기기 위한 러닝이 아닌 군생활에서 일말의 자유를 향한 집념(…)으로 시작한 러닝이라 그런지 썩 매력적이진 않았다. 분명히 그 날 아침도 러닝화를 단디 묶으며 생각했을 거다, 이러다 적당히 끝내겠지. 그 저억-다앙-함으로 흘려보낸 만 6년하고도 4개월. 오늘 날씨는 살을 막 에일 정도로 춥지는 않은 - 그저 그런 0도, 환석이와 강남부터 용산까지를 왕복했다.


설마 달성할까 싶었던 5,000K까지 63.43K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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