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기, 78세, 소목장 무형문화재
성함이랑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김순기. 나 78이요. 여기 들어오니까 나무 냄새가 많이 나죠? 우린 잘 몰라요.
작업실에 나오셔서 작업 많이 하세요?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놀 수 없으니까 뭐라도 해야지. 일 없으니까 놀기 심심해서 앉아서 만드는 거지. 만들어서 팔리는 재미가 있으면 좋겠는데 팔리질 않아. 자꾸 만들면 뭐할 거야.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시게 된 거예요?
14살 먹어서 초등학교 졸업하고 기술을 배우러 집에서 나온 거지. 집이 안성에 있는 시골이었어. 14살부터 23살 군인 갈 때까지 한 집에서 일을 배웠고, 23살에 입대해서 26살에 제대하고 나와서 5월 달에 공장을 냈지. 그때쯤 사업자등록증을 냈죠. 여기 개업 연월이 있죠? 2월 15일 중앙 공업사. 67년도부터 하면 50년이 넘은 거잖아.
오래 작업을 하셨는데,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쭉 이어올 수 있었던 자질이라면 자질이랄까요? 무엇이 중요할까요?
타고나야 돼. 성질. 성격. 그게 적성에 맞아야 돼. 내려치고 그만두면 안 돼. 고집이 있어야 돼. 고집이 중요해. 고집.
작업실 입구에 '무형문화재 김순기'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무형문화재가 되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22년이요. 92년도에 경복궁 들어가서 만들다가 95년도에 무형문화재 받은 거야. 내가 한 일을 일일이 말할 수가 없어요. 엄청나게 많으니까. 내가 가진 수첩에 다 적혀있는데 이 수첩이 한 권이면 보통 200군데가 돼요. 6개면 1200군 데지.
우와 이거 진짜 보물인데요. 구상 스케치도 많이 그려 놓으셨네요?
나만이 아는 거지. 아이디어 스케치 같은 것이나 일한 내용을 적어두는 거야.
수첩에 셀 수 없이 많이 기록해두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공사가 있다면?
최고의 정성을 들이고 마음에 간직한 게 수원이야. 왜냐하면 내가 뿌리를 박고 여기서 사니까 우리 자손이 여기서 몇 대나 살지 모른단 말이야. 몇 대 증손자, 손녀들한테 자랑하고 싶게끔 문짝이 고장 나지 말고 부서지지 말고 있어야 될 거 아니야. 가장 자신감을 가진 게 화성행궁이야.
우리나라에 소목장 무형문화재가 몇 분 계신 거예요?
현재 나까지 통틀어서 5명 남아 있는 거야. 소목장 무형문화재는 내가 처음으로 1995년도에 지정됐고, 나머지 무형문화재는 2000년대 넘어서 지정된 거야. 무형문화재 중에서도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무형문화재도 소목장 하고 대목장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집 짓고 큰 나무 다루는 게 대목장이고, 소목장은 가는 나무로 문 짜고, 소반 만들고 그런 사람들을 소목장이라고 해요.
우리 집에 왔으니까 내가 소개해줄 게 있어. 우리 집에서 가치 있는 게 이 물건이야. 꽃살 무늬라는 건데, 2010년도에 캐나다 동계올림픽 때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거야. 이게 7개월 만에 우리 집으로 온 거야. 꽃살 문짝은 아무 데나 다는 게 아니야. 방과 방 사이에 놓는 칸막이로 하는 거지. 문도 부엌문이면 부엌문, 안방이면 안방 문, 구색 있게 하는 거지. 아무거나 갖다 놓고 하는 게 아니야.
꽃살은 어떤 나무를 쓰세요?
홍송. 빨간 나무라고 해서 홍송. 이게 캐나다에서 왔기 때문에 캐나다 홍송이라고 하는 거야.
기계 없이 수작업으로 하시나요?
꽃살은 수작업으로 해야 돼요. 접착제를 쓰거나 못 박는 것도 없어요. 기술로 끼울 수 있게 만드는 거야. 기술이 없으면 명함을 못 내미는 거야. 하루, 이틀 되는 게 아니라 몇십 년을 선생님한테 혼나면서 배워야 이런 작품이 되는 거지. 내가 목수 일을 20년 했소, 30년 했소 하더라도 못 만들어요. 만들기 가장 어려운 게 꽃살이에요. 꽃살 주문도 몇 년에 한 번 들어올까 말까예요. 만들기도 어렵고 가장 비싸서 주문이 잘 안 들어오지.
문 만드는 데는 얼마나 걸리나요?
문 한 짝만 만드는데도 7일 걸려요. 일당이랑 나무값도 안 나온다고.
문에 경첩이 달려있잖아요. 경첩은 어떤 것을 쓰세요?
수원에서는 만드는 데가 현재 한 군데밖에 없어. 옛날 장식을 만드는 기술자들이 다 없어져가요.
나무가 습도나 온도에 영향을 받잖아요. 꽃살 말고도 다른 것들을 만들 때, 어떤 나무를 골라서 만드시는지 궁금해요.
물나무라고 건조가 덜 된 나무로 만들면 변형이 생기는데, 보통 나무를 3년 이상 묵혀버리면 나무의 성격이 빠져버려요. 그 나무로 제작하면 변형이 없어요. 우리나라는 문 재료로 쓸 나무가 없어요. 나무를 재목으로 쓰려면 200년에서 300년은 커야 되는데, 그전에 다 베어 버리잖아요. 그래서 외재를 들여오기 시작한 건데 현재는 캐나다 홍송이 최고로 좋은 거지. 경복궁이나 문화재청에서 지정된 문화재는 외재를 쓸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나무로 만드는 거지만, 우리나라에는 나무가 많이 없고 비싸요.
만드신 작품들로 따로 전시회도 여시 나요?
일 년에 한 번씩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전시해야 돼요.
목수로 시작하셔서 무형문화재가 되셨는데 삶을 돌아보니 어떠신가요?
나는 목수 일을 참 잘 배웠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반 이상이 아니라 몽땅 다 바친 거예요. 난 시작을 이거로 해서 이거로 끝나는 거야.
바람이 있으시다면?
온 인생을 다 바쳐서 나는 후회는 없어요. 현재까지 행복하고 후회 없어요. 내가 이 일로 자식들 다 가르치고 일으켜 세워놓고 키워놨잖아요. 이 일을 했기 때문에 밥 먹고 굶지 않고 애들 가르치고 한 것 아니겠나. 부자는 아니지만 노후 대책을 만들어 놓아서 만족해요. 꿈도 욕망도 없어요.
늙음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따로 종교를 가지지 않았지만 거짓 되게 살지 않고 베푸는 삶을 살았으니까 떳떳하지. 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내가 지금 상태에서 아프지 말고 세상 떠나면 좋을 것 같아. 나이가 옛날과 비교한다고 해도 100세로 장수하는 게 좋은 게 아니에요. 내가 움직일 때가 좋은 거지. 자식 눈치 보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면 그건 좋은 게 아니야.
견고하고 신비로운 세계.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내가 불쑥 나타나서 이것저것 귀찮게 묻는 것 빼고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별다를 게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하루 일수도 있다. 공간, 습관적인 동선과 움직임, 자주 쓰는 얼굴 근육과 표정과 눈빛, 물건이 놓여있는 위치, 그 공간을 오가는 사람들. 어떤 순간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공간과 일상은 더 가까이서 관찰하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행성 같다. 그 소행성에 앨리스처럼 여행하러 들어갔다 나온 것 같다. 궁금해졌다. 나는 30, 40년 후에 어떤 소행성을 이루고 있을까.
영상 촬영/ 편집 현지윤
사진 촬영 박태식
제작 지원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과 수원문화재단의 제작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